"협상을 조속히 타결하겠다는 유럽연합(EU) 측의 의지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열심히 하면 연말까지는 타결이 가능하다고 봅니다."

한·EU 자유무역협정(FTA) 2차 협상을 마친 김한수 한국 수석대표(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 FTA추진단장)는 EU가 한·미 FTA 타결에 자극을 받아 협상을 서두르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김 대표는 이번 2차 협상에서 마음고생을 많이 했다.

협상장에서는 우리 양허안의 개방 수준이 낮다는 EU의 공세에 시달려야 했고,협상장 밖에서는 협상단 내 갈등이 내분으로 번지면서 비난을 받아야 했다.

2차 협상이 종료된 지난 20일(현지시간) 벨기에 브뤼셀의 실켄벨라몽 호텔에서 그를 만났다.

-2차 협상이 끝났습니다. 한·미 FTA와 비교하면 진도는 어떻습니까.

"EU가 협상을 서두르고 있습니다. 때문에 한·EU FTA 협상 속도는 전반적으로 한·미 협상에 비해 빠르고 건설적입니다. EU는 자동차를 뺀 상품 대부분에 대해 3년 내 관세를 없애겠다는 상품 양허안(개방안)을 내놨습니다. 만약 '7년 철폐'로 분류한 자동차를 3년 내로 옮기면 98% 이상 품목의 관세가 즉시 혹은 3년 내 사라집니다. 한·미 FTA에서 각각 94% 품목의 관세를 3년 이내에 폐지하기로 한 것보다 더 높은 수준입니다."

-EU가 왜 협상을 서두른다고 보십니까.

"EU는 걸프협력기구(GCC) 메르코수르 등과의 협상을 10년 넘게 진행해오고 있습니다. 이번 협상에 적극적으로 나오는 것과는 대조적이지요. EU가 한국과의 협상에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은 무엇보다 한·미 FTA 타결에 자극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한·미 FTA가 발효될 경우 유럽 기업들이 규모가 큰 한국 시장에서 불이익을 당할 것이라는 것이지요. 또 FTA를 국가 정책으로 삼고 있는 한국과 열심히 해서 차후 FTA 모델을 만들겠다는 생각도 있는 것 같습니다. 지식재산권 분야에서 추급권(미술품 거래시 일정액을 저작권자가 받을 수 있는 권리) 등 무리한 요구도 하고 있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라고 생각됩니다."

-핵심 품목이 자동차인데 관세를 7년보다 더 빨리 없애야 하는 것 아닌가요.

"자동차에서만 우리는 연간 70억달러 이상의 흑자를 내고 있습니다. 그 때문에 EU가 이번에 자동차 관세를 7년 내 철폐로 결정하는 데 대해서도 유럽 업계가 반발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가장 많은 혜택을 볼 수 있는 품목인 만큼 당연히 강력한 요구를 해올 것입니다. 다만 EU에 자동차 관세 철폐를 앞당기라고 요구하려면 우리 양허안을 개선할 필요도 있습니다."

-구태여 우리 양허안을 개선할 필요가 있습니까.

"이번 협상이 한·미 FTA에 이어 열리다 보니 한·미 FTA가 가져온 부정적 영향이 있습니다. 각 부처들이 '벼랑 끝 전략'을 쓰자는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미국으로부터 배운 전략입니다. 우리가 이번에 공산품 관세 조기 철폐 수준을 63%로 낮게 설정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이지요. 하지만 제 생각엔 EU는 미국과는 달리 볼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힘으로 밀어붙이거나 논리적으로 모순이 있는 주장은 미국에 비해 적습니다. 예컨대 한국에서 비즈니스를 하고 있는 EU 기업인의 모임인 주한 유럽상공회의소(EUCCK)는 유럽산 위스키를 더 팔기 위해 '기업 접대비 상한선 제도가 위스키 판매에 비관세 장벽으로 작용한다'며 폐지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EU 협상단이 두 차례의 협상에서 그런 주장을 편 적은 없습니다."

-우리 양허안 개선을 놓고 외교통상부와 산업자원부의 분란을 겪었는데요.

"다 제 부덕의 소치입니다. 소속 부처에 충성심이 강한 젊은 관료가 오해한 것 같습니다. 협상을 보다 잘 하기 위한 과정으로 봐주십시오.산자부는 제가 통상교섭본부로 옮기기 전 20년 이상을 몸담았던 친정입니다."

-개방도 좋지만 우리 산업 보호도 중요하지 않습니까.

"FTA는 시장을 열어 무역을 확대함으로써 각자 이익을 키우기 위해 자발적으로 선택한 것입니다. 국내 산업 보호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진취적으로 해외 시장을 여는 것이 더 큰 부를 창출한다고 생각합니다."

-향후 협상 전망을 해주십시오.

"적극적으로 나서면 올해 말까지 끝낼 수 있을 것으로 봅니다. 현재로선 우리가 상품 양허안을 얼마나 개선할 수 있을지 여부가 협상 운명을 좌우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브뤼셀=김현석 기자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