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悳煥 < 서강대 교수·과학커뮤니케이션 >

우리의 교육열은 정말 유별나다.

먼 타국으로 이민을 가더라도 우리 부모들의 별난 교육열은 달라지지 않는다.

그런 사실은 모스크바에서 개최되고 있는 국제화학올림피아드에서도 분명하게 확인된다.

미국 대표의 절반인 두 명이 한국계이고,캐나다 대표 중 한 명도 한국계 학생이다.

물론 미국과 캐나다에서 치열한 경쟁을 거쳐 선발된 대표들이다.

우리 대표까지 합치면 68개국의 대표 260명 중 7명이 한국계인 셈이다.

어떤 기준으로 보더라도 놀라운 규모임에 틀림이 없다.

국내에서도 뛰어난 수월성(秀越性)을 나타내는 학생들이 적지 않다.

그런 학생들이 국제과학올림피아드의 금메달을 휩쓸고 있다.

우리 학생들의 독주가 너무 심하다는 불평이 터져 나오는 정도다.

최근에는 우리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미국의 명문대학으로 진학하는 학생의 수도 급격하게 늘어나고 있다.

우리 학부모들의 높은 교육열이 만들어낸 긍정적인 결과다.

그런데 모든 것이 장밋빛은 아니다.

적분기호도 모르는 학생들이 공대로 진학하고,서울대 이공계 신입생 중 20%가 보충교육을 받아야만 정규 대학과정을 정상적으로 따라갈 수 있는 것이 우리 교육의 엄연한 현주소다.

전 세계 대학교육에 대한 특집을 마련하던 국제적인 과학저널인 '사이언스'의 눈에 비친 우리 교육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바로 그런 것이었다.

우리 공교육이 학생들에게 꼭 필요한 최소한의 교육도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우선 믿기 어렵겠지만 '사이언스'의 지적은 명백한 사실이다.

우리 학생들이 게으르거나,대학입시가 잘못되어서 그런 것도 아니다.

교육열이 높은 학부모는 모두 이민을 가버렸기 때문도 아니다.

선택중심의 제7차 교육과정이 가지고 있는 근원적인 한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나타나는 결과일 뿐이다.

제7차 교육과정은 고1까지의 '국민공통기본교육과정'과 고2·3의 '선택중심교육과정'으로 구분된다.

고1까지는 모든 학생이 10개로 나누어진 과목을 필수로 배운 후에 고2·3에서는 원하는 과목만 자유롭게 선택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던 '한 가지만 잘 해도 된다'는 교육철학이 반영된 것이다.

물론 현실은 크게 다르다.

우선 '수학1'과 '수학2'로 나누어 가르치던 내용을 무려 6과목으로 난도질을 해버렸다.

새로 더해진 내용이 있는 것도 아니다.

누구나 배워야 했던 미적분이 '미분과 적분'이라는 과목으로 선택 대상이 돼버렸다.

그런데 어떤 학생도 2년 동안 수학 6과목을 모두 선택할 수는 없다.

수학만 잘하는 학생은 살아남을 수가 없다는 뜻이다.

적분기호를 모르는 학생들이 쏟아져 나오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결과다.

수학만 그럴 것이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국어는 6과목으로 난도질이 됐고,사회도 무려 10과목으로 세분됐다.

역시 그렇게 세분된 국어와 사회를 모두 선택하는 것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독서'와 '화법'을 선택하고 '문법'을 외면해도 어쩔 수가 없다.

'세계사'와 '법과 사회'를 선택하고 '한국지리'와 '세계지리'를 무시해도 조금도 이상하지 않다.

우리의 말과 글이 마구 헝클어지고,6·25가 일본과의 전쟁이었다고 굳게 믿게 되는 것은 절대 학생들의 잘못이 아니다.

선택중심의 교육과정은 교사들에게도 심각한 문제가 된다.

학생들에게 선택받지 못한 과목의 교사 입장은 심각하다.

우선 과학 교사들이 일차적인 목표가 되고 있다.

전국적으로 과학 교사의 신규 채용은 크게 줄었고,심지어 자신의 전공을 포기하도록 강요받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

퇴출 위기에 놓인 교사들이 '과목이기주의'를 멀리해야 할 명분을 찾기는 정말 어렵다.

교사들의 입장은 절박하다.

꼭 가르쳐야 하지만 학생들이 싫어하는 내용을 포기해서라도 학생들이 흥미를 갖도록 만들 수밖에 없다.

학생들을 덜 가르쳐야 창의적이라는 해괴한 교육철학도 등장하고 있다.

결국 선택중심의 교육과정이 학생들을 아무 것도 할 수 없도록 만들고 있다.

불합리하고 과도한 선택중심의 교육철학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우리 교육은 개천에서 용은커녕 피라미도 키우지 못하고,교육 양극화는 더욱 악화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