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1일(현지시간) 오후 5시 미국 로스앤젤레스(LA)에 있는 홈디포센터 축구 구장.입구부터가 자동차로 만원이다.

줄지어 선 자동차 사이로 암표상들이 극성이다.

미국에서 좀처럼 볼 수 없는 축구 열기는 경기장 안으로 들어서니 더욱 후끈 달아오른다.

이날 경기는 삼성전자가 후원하는 '월드 시리즈 오브 풋볼 2007 대회'의 영국 프리미어리그 첼시와 미국 LA갤럭시전.갤럭시로 옮긴 축구 스타 데이비드 베컴의 미국 무대 데뷔전이 기대됐던 터라 2만7000장의 입장권은 이미 동이 났다.

그런데 얼핏 보니 선수들의 유니폼에 소속 구단 이름이 없다.

첼시 특유의 파란색 유니폼 앞면에 'SAMSUNG mobile'이란 글자만 큼지막하다.

갤럭시 역시 하얀색 바탕에 'HerbaLife'란 글씨만 덩그마니 적혀 있다.

다름아닌 후원사 로고다.

경기는 후반 33분 베컴이 교체 멤버로 투입되면서 절정에 달했다.

관중들은 그의 일거수 일투족에 환호했다.

이날 경기의 주인공은 명실상부하게 베컴이었다.

그렇지만 보이지 않는 주인공은 다름아닌 삼성전자.이번 대회를 후원한 삼성전자 로고는 말 그대로 경기장을 수놓았다.

첼시 유니폼부터 전광판과 전자식 광고판까지.이날 경기를 생중계한 스포츠 전문채널 ESPN을 타고 전국 안방에 수시로 클로즈업되기도 했다.

스포츠 마케팅은 기업 마케팅의 주류다.

월드컵과 올림픽 등 대형 스포츠대회는 물론 세계적인 인기 스포츠의 경우 기업들이 천문학적인 돈을 들여 후원사를 맡기 위해 혈안이다.

최근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영국 프리미어리그는 세계적인 기업들의 각축장이다.

박지성이 뛰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후원사는 AIG다.

삼성도 2005년부터 첼시를 후원하고 있다.

LG전자도 다음 시즌부터 풀럼의 후원사를 맡기로 했다.

'축구가 아내보다 좋다'는 영국 사람을 비롯한 유럽 시장과 프리미어 리그에 열광하는 아시아 시장을 겨냥한 포석이다.

스포츠 마케팅의 한계는 그 효과를 당장 계량화하기 힘들고 들어가는 돈이 만만치 않다는 데 있다.

삼성의 경우 첼시를 후원하는 데 연간 2000만달러를 투자한다.

적지 않은 돈이다.

그렇지만 광고 효과는 2005년 650억원,작년 900억원에 달했다고 한다.

직접적인 광고효과 이상이라는 얘기다.

지난 주말 끝난 미국 LPGA투어 HSBC 매치플레이 챔피언십에서 우승한 이선화의 모자엔 'CJ'란 글씨가 선명했다.

이를 본 미국 친구가 "도대체 CJ가 무슨 뜻이냐"고 물어 왔다.

LPGA투어에서 맹활약 중인 김미현은 'KTF',이지영과 신지애는 '하이마트'란 로고를 달고 나온다.

비록 미국인들은 무슨 기업인지 잘 모르겠지만,이들이 TV 화면에 클로즈업될수록 후원사의 이미지도 덩달아 각인되는 건 분명하다.

얼마 전 미국 컨설팅업체가 1000명의 미 대학생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는 일본 기업,LG전자는 미국 기업이라고 답한 학생이 가장 많았다.

그만큼 이들 회사가 국가 브랜드를 뛰어넘어 글로벌화돼 있다는 의미다.

이런 기업들이 이제 글로벌 스포츠 마케팅에도 본격 나서는 걸 보면서 왠지 국가가 이들에게 빚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적어도 브랜드 이미지 제고에선 그렇다는 말이다.

뉴욕=하영춘 특파원 ha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