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디자이너] 윤예령 특수분장사 "관객들이 속을때 가장 보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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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세월을 거쳐 괴물처럼 일그러진 얼굴로 현실세계에 나타난 황 장군(영화 '은행나무침대'),5.18 민주항쟁에서 군인에게 총을 맞아 피를 튀기면서 다리가 부러지는 어린 학생(영화 '화려한 휴가')…. 이들의 공통점은 특수 분장사 윤예령의 손을 거쳐 태어났다는 것이다. 윤예령 청강대학 교수(42)는 '자귀모''이재수의 난''퇴마록''천군''각설탕' 등 수많은 영화에서 특수 분장을 맡았다. 그는 국내 최초의 유학파 특수 분장사로 유명하다. 미국 할리우드에서 영화'스타트랙'으로 에미상을 3번 받은 길 모스코 선생과 영화 '엑소시스트''모차르트'를 연출한 딕 스미스 선생이 그의 스승이다.
그의 작업실은 입구부터 을씨년스런 분위기를 자아냈다. 사람의 얼굴과 똑같아 보이는 모형들이 여기저기에 놓여져 있는가 하면 한쪽 모서리에는 괴기스럽게 생긴 도깨비같은 마네킹들도 보인다. 윤씨의 손을 거치면 젊은 남자가 80세 먹은 노인이 되고,날씬한 여성도 비만한 뚱녀로 변신한다. 그는 "특수 분장은 회화,조각 등 다양한 미술 분야가 합쳐져 탄생하는 디자인"이라고 소개했다. 머릿속에 들어있는 상상의 캐릭터를 눈에 보이는 실제 모습으로 만들어 내는 작업이 늘 새롭고 흥미진진하다고 덧붙였다.
"영화 '자귀모'에서는 감독님이 귀신을 겁탈하는 색마귀신을 만들어야 한다면서 단순히 무서운 귀신보다는 징그럽게 보이는 귀신으로 만들어달라고 주문하셨어요." 이렇게 감독의 머릿속에만 들어있는 상상의 귀신은 윤 교수를 통해 비로소 실체를 드러냈다.
그는 "예전에는 모형들이 겉모습만 똑같으면 됐지만 기술이 발전하면서 지금은 리모컨으로 조작해 움직이는 모형들도 등장하고 있다"고 말한다. 실제 리모컨 조정으로 눈을 깜빡이고 표정을 짓는 사람의 얼굴도 보여줬다. 이를 애니매트로닉스(애니메이션과 메카트로닉스의 합성어)라고 부르는데 영화에 본격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한 지는 2~3년 정도 됐다고 한다. 로봇 제조업체와 카이스트 로봇공학 박사들이 기술적인 부분을 해결하면 특수분장사들은 외장을 완성한다. 이렇게 애니매트로닉스로 결합해 탄생한 대표적인 영화가 바로 '각설탕'. 주인공인 임수정이 경마하는 장면에 이러한 애니매트로닉스 말이 사용됐다.
그는 1985년 중앙대학교 연극영화과에 입학해 배우의 길을 걸었다. 영화 '구로아리랑'과 '우담바라' 주인공으로도 활약했다. 1989년 적성에 맞지 않는 배우생활을 접고 미국으로 건너가 연극공부를 시작했지만 언어의 벽에 가로막혀 특수 분장을 접하게 됐다. 그는 미국에서 특수분장으로 가장 역사가 깊은 LA의 '엘레강스 아카데미'에서 공부했다. 2년을 공부하고 1991년 한국에 돌아오니 반겨주는 사람이 있었다. 바로 강재규 감독. "제가 돌아왔을 당시에는 특수분장이 생소한 분야라 찾는 사람이 별로 없었어요. 강재규 감독님은 좋은 것을 공부하고 왔다면서 1996년에 영화 '은행나무 침대'의 특수분장을 맡겼어요."
당시 감독의 주문은 움직이는 심장을 똑같이 재현하는 것이었는데 기계장치만 2000만원이 들었다. 특수분장팀원 10명과 함께 며칠밤을 새워 가면서 심장을 만들고 풍선 두개를 모형심장 안에 넣어 공기를 주입하는 방식으로 심장이 뛰는 장면을 연출했다.
그는 "관객들이 실제 상황으로 착각하며 영화 속에 몰입하는 것을 볼 때 가장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는 '닥터K'다. 뇌수술하는 장면을 연출하기 위해 의사들이 수술하는 현장에 가보고,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가서 시체 해부하는 모습도 지켜 봤다고. 실제 수술 장면처럼 사람의 머리카락을 깎고 피부를 벗겨내 뼈를 드릴로 절단하고 뇌까지 그대로 재현해야 했다. 똑같은 재질을 찾는 게 가장 어려웠다.
그는 "판타지 영화는 상상력을 발휘해 없는 장면을 연출하는 것이지만 수술장면은 정답이 있기 때문에 가장 힘들었다"고 말했다. 실제와 똑같이 만들어낸 작품으로 가끔 웃지못할 일도 겪는다고. "영화 '이재수의 난'에 쓰려고 모형 시체를 옮기는 중 가방 속에서 한쪽 팔이 밖으로 나와있는 걸 지나가던 행인이 본 거예요. 우리가 연쇄 살인범인줄 알고 경찰에 신고해서 붙잡혀 가기도 했죠."
그는 공포영화처럼 잔인하거나 사실적으로 표현하는 건 우리나라도 수준급이지만 영화 '너티프로페서'처럼 한 사람이 7가지 캐릭터를 연출하거나 '가을의 전설'처럼 배우들의 나이 든 모습을 자연스럽게 표현하는 정교한 디자인 실력은 아직 부족하다고 말한다. 그렇지만 우리보다 10~100배까지 많은 제작비를 들이는 미국의 기술과는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CF촬영의 경우 그가 5일간 특수분장으로 받는 돈은 가면 1개당 500만~1000만원,특수분장비 6000만원이다. 그는 보통 영화를 연간 3~8개,CF는 한 달에 3~4개 작업한다. 윤씨는 늘 자신을 위해 투자한다. 특수분장과 관련한 해외 세미나가 열리면 장소를 가리지않고 달려갔다. "아마 강남 집 한 채 값도 넘게 썼을 거예요. 하지만 그런 투자가 결국 내 소프트웨어를 채워주고 감독들이 원하는 것들을 디자인해 낼 수 있는 원동력이 되지요."
안상미 기자 saramin@hankyung.com
허문찬 기자 sweat@hankyung.com
그의 작업실은 입구부터 을씨년스런 분위기를 자아냈다. 사람의 얼굴과 똑같아 보이는 모형들이 여기저기에 놓여져 있는가 하면 한쪽 모서리에는 괴기스럽게 생긴 도깨비같은 마네킹들도 보인다. 윤씨의 손을 거치면 젊은 남자가 80세 먹은 노인이 되고,날씬한 여성도 비만한 뚱녀로 변신한다. 그는 "특수 분장은 회화,조각 등 다양한 미술 분야가 합쳐져 탄생하는 디자인"이라고 소개했다. 머릿속에 들어있는 상상의 캐릭터를 눈에 보이는 실제 모습으로 만들어 내는 작업이 늘 새롭고 흥미진진하다고 덧붙였다.
"영화 '자귀모'에서는 감독님이 귀신을 겁탈하는 색마귀신을 만들어야 한다면서 단순히 무서운 귀신보다는 징그럽게 보이는 귀신으로 만들어달라고 주문하셨어요." 이렇게 감독의 머릿속에만 들어있는 상상의 귀신은 윤 교수를 통해 비로소 실체를 드러냈다.
그는 "예전에는 모형들이 겉모습만 똑같으면 됐지만 기술이 발전하면서 지금은 리모컨으로 조작해 움직이는 모형들도 등장하고 있다"고 말한다. 실제 리모컨 조정으로 눈을 깜빡이고 표정을 짓는 사람의 얼굴도 보여줬다. 이를 애니매트로닉스(애니메이션과 메카트로닉스의 합성어)라고 부르는데 영화에 본격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한 지는 2~3년 정도 됐다고 한다. 로봇 제조업체와 카이스트 로봇공학 박사들이 기술적인 부분을 해결하면 특수분장사들은 외장을 완성한다. 이렇게 애니매트로닉스로 결합해 탄생한 대표적인 영화가 바로 '각설탕'. 주인공인 임수정이 경마하는 장면에 이러한 애니매트로닉스 말이 사용됐다.
그는 1985년 중앙대학교 연극영화과에 입학해 배우의 길을 걸었다. 영화 '구로아리랑'과 '우담바라' 주인공으로도 활약했다. 1989년 적성에 맞지 않는 배우생활을 접고 미국으로 건너가 연극공부를 시작했지만 언어의 벽에 가로막혀 특수 분장을 접하게 됐다. 그는 미국에서 특수분장으로 가장 역사가 깊은 LA의 '엘레강스 아카데미'에서 공부했다. 2년을 공부하고 1991년 한국에 돌아오니 반겨주는 사람이 있었다. 바로 강재규 감독. "제가 돌아왔을 당시에는 특수분장이 생소한 분야라 찾는 사람이 별로 없었어요. 강재규 감독님은 좋은 것을 공부하고 왔다면서 1996년에 영화 '은행나무 침대'의 특수분장을 맡겼어요."
당시 감독의 주문은 움직이는 심장을 똑같이 재현하는 것이었는데 기계장치만 2000만원이 들었다. 특수분장팀원 10명과 함께 며칠밤을 새워 가면서 심장을 만들고 풍선 두개를 모형심장 안에 넣어 공기를 주입하는 방식으로 심장이 뛰는 장면을 연출했다.
그는 "관객들이 실제 상황으로 착각하며 영화 속에 몰입하는 것을 볼 때 가장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는 '닥터K'다. 뇌수술하는 장면을 연출하기 위해 의사들이 수술하는 현장에 가보고,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가서 시체 해부하는 모습도 지켜 봤다고. 실제 수술 장면처럼 사람의 머리카락을 깎고 피부를 벗겨내 뼈를 드릴로 절단하고 뇌까지 그대로 재현해야 했다. 똑같은 재질을 찾는 게 가장 어려웠다.
그는 "판타지 영화는 상상력을 발휘해 없는 장면을 연출하는 것이지만 수술장면은 정답이 있기 때문에 가장 힘들었다"고 말했다. 실제와 똑같이 만들어낸 작품으로 가끔 웃지못할 일도 겪는다고. "영화 '이재수의 난'에 쓰려고 모형 시체를 옮기는 중 가방 속에서 한쪽 팔이 밖으로 나와있는 걸 지나가던 행인이 본 거예요. 우리가 연쇄 살인범인줄 알고 경찰에 신고해서 붙잡혀 가기도 했죠."
그는 공포영화처럼 잔인하거나 사실적으로 표현하는 건 우리나라도 수준급이지만 영화 '너티프로페서'처럼 한 사람이 7가지 캐릭터를 연출하거나 '가을의 전설'처럼 배우들의 나이 든 모습을 자연스럽게 표현하는 정교한 디자인 실력은 아직 부족하다고 말한다. 그렇지만 우리보다 10~100배까지 많은 제작비를 들이는 미국의 기술과는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CF촬영의 경우 그가 5일간 특수분장으로 받는 돈은 가면 1개당 500만~1000만원,특수분장비 6000만원이다. 그는 보통 영화를 연간 3~8개,CF는 한 달에 3~4개 작업한다. 윤씨는 늘 자신을 위해 투자한다. 특수분장과 관련한 해외 세미나가 열리면 장소를 가리지않고 달려갔다. "아마 강남 집 한 채 값도 넘게 썼을 거예요. 하지만 그런 투자가 결국 내 소프트웨어를 채워주고 감독들이 원하는 것들을 디자인해 낼 수 있는 원동력이 되지요."
안상미 기자 saramin@hankyung.com
허문찬 기자 swea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