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태준 < 시인 >

김남조 시인의 시 '산에게 나무에게'를 읽는다.

'산은 내게 올 수 없어/ 내가 산을 찾아가네/ 나무도 내게 올 수 없어/ 내가 나무 곁에 서 있네/ 산과 나무들과 내가/ 친해진 이야기// 산은 거기에 두고/ 내가 산을 내려왔네/ 내가 나무를 떠나왔네/ 그들은 주인 자리에/ 나는 바람 같은 몸/ 산과 나무들과 내가 이별한 이야기.'

다시 읽어도 이 시는 쉽고 깔끔하고 율동이 있고,시를 읽는 내 혼은 말끔해진다.

땡볕과 우레가 지나가고 바람이 서늘해지는 초가을부터는 이 시를 서울의 버스터미널에서도 읽을 수 있게 될 모양이다.

서울시에서 추진하고 있는 '詩가 흐르는 서울'사업 덕택이다.

서울시는 지하철 역사,택시와 버스 승강장,공원,도서관 등에 유명시 120편을 8월 말까지 우선 설치한다고 한다.

일정 기간이 만료되면 설치된 작품들을 다른 작품으로 교체해 총 1946편의 작품을 설치한다고 하니 수량으로도 가히 놀랄 지경이다.

잘하는 일이다.

외국시도 설치가 된다고 한다.

가령 중국의 시성(詩聖) 두보의 시 여야서회(旅夜書懷:나그네의 밤)'도 만날 수 있다고 한다.

'여야서회'는 두보가 54세에 쓴 시이다.

두보가 남의 막료 노릇을 하다가 그 일도 마땅치 않게 되자 살림을 배에 싣고 양자강을 내려오던 그 어느날 새벽에 쓴 것으로 알려져 있다.

두보는 이렇게 적고 있다.

'높고 위태한 돛대,닻 내리고 홀로 새는 밤/(중략)/늙으면 벼슬이야 물러나는 것/ 떠도는 이 신세 무엇과 같은가/ 하늘과 땅 사이 모래사장에 홀로 있는 갈매기 신세로고'.인간사에 대한 탄식과 비애가 시 전반에 흐르고 있다.

그런데 이 시를 서울 도심에서 읽을 수 있다고 한다.

빌딩숲과 아스팔트의 거리에서 이 시를 읽을 때 우리는 양자강의 강물과 한 척의 외로운 배와 모래사장에 내려앉은 한 마리 갈매기를 상상할 수 있게 될 것이니, 우리의 마음이 선물로 받게 될 이 새롭고 청량한 경험은 값을 매길 수 없는 귀중한 것임에 틀림없다.

통계자료를 보니 서울의 평균 연령은 36.1세라고 한다.

10년 전보다는 4.7세 높아졌다지만,여전히 서울은 젊은 심장의 도시이다.

젊게 일하다 보니 더없이 바쁠 수밖에 없다.

폭포 같은 활기가 넘치겠지만 영혼의 휴식을 챙기기에는 모자람이 있는 연령이다.

김수영 시인이 생전에 썼듯이 우리 시대는 '속도가 속도를 반성하지 않는' 시대요,'졸렬(拙劣)과 수치가 그들 자신을 반성하지 않는' 시대이다.

모두 다 '돈' '밥'을 위한 것이라 할 수도 있겠으나,어떤 이유에서건 망아(忘我) 후에 '돈'과 '밥'을 얻는다 한들 무슨 큰 소용이 있겠는가.

망아 이후의 '밥'은 허기를 키우는 '밥'이 될 것이요,갈증을 없애기 위해 소금물을 들이켜는 격에 다름 아니다.

암튼 서울시내 곳곳에 시(詩)를 설치하는 이 기획은 하나의 사건이 될 것 같다.

계단에 앉아서,혹은 낙엽이 뒹구는 공원에 서서 한 편의 시를 읽으며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을 당신을 상상해보라.문학계 내부에서는 문학이 위기라는 진단이 많지만,시를 설치하는 이런 계획들을 접하다 보면 시가 위기에 있지만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전국 곳곳에서 마치 유행처럼 개최되고 있는 시낭송회에 참석하다 보면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시낭송 전문가가 배출되고 있고,시낭송 음반이 출시되고 있고,시가 음악을 만나 노래로 불려지고 있고,시가 육체의 언어인 마임을 만나 무대에 올려지고 있다.

이런 추세라면 정녕코 시는 위기가 아닌 것이다.

위기가 아니라,시는 여러 예술장르와 상생적인 결합을 시도하고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듣자하니,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펼치고 있는 '시 배달' '문장 배달' 사업의 온라인 독자수가 무려 30만명을 훌쩍 넘어섰다고 한다.

이런 열풍은 세계적으로 드문 일이다.

시(詩)는 하나의 생각을 드러내는 아주 짧은 것이지만,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데에는 엄청난 힘을 발휘한다.

절망의 순간에도 희망을 노래하고,바람을 일으키는 부채처럼 열을 식혀주고,오늘을 참회하게 하고,무엇보다 사람을 사랑하게 한다.

서울시의 시(詩) 설치 계획을 주목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시(詩)가 흐를 9월이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