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가 있는 갤러리] '도원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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뻘에 다녀온 며느리가 밥상을 내온다
아무리 부채질을 해도 가시지 않던 더위
막 끓여낸 조갯국 냄새가 시원하게 식혀낸다
툇마루로 나앉은 노인이 숟가락을 든다
남은 밥과 숭늉을 국그릇에 담은 노인이
주춤주춤 마루를 내려선다 그 그릇을 들고
신발의 반도 안되는 보폭으로 걸음을 뗀다
화단에 닿은 노인이 손자에게 밥을 먹이듯
밥 한 숟갈씩 떠서 나무들에게 먹인다
느릿느릿 빨간 함지 쪽으로 향하던 노인이
파란 바가지 찰랑이게 물을 떠다가
식사 끝낸 나무들에게 기울여준다
손으로 땅의 등을 가볍게 토닥여주는 노인,
부축하고 온 지팡이가 앞장을 선다
어슬렁어슬렁 기어온
고양이 한 마리가 나무 밑동으로 스며든다
툇마루로 돌아앉은 노인이 예끼,웃는다
-박성우 '桃園境(도원경)'전문
며느리와 노인과 나무와 고양이가 등장하는 무채색의 여름 풍경이다.
이곳엔 별다른 희망이나 열정,욕심 같은 것이 없다.
그저 '생존'이 있을 뿐이다.
시시하고 지루하다.
대신 평온하고 정겨워 보인다.
서로가 서로에게 위안이 되고 의미가 되기 때문이다.
어슬렁거리는 고양이는 물론이고 화단에서 크는 나무까지도 엄연한 식구다.
사람과 동물과 식물이 함께 주인공인 셈이다.
시인은 이를 '도원경'이라고 했다.
이정환 문화부장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