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강들의 각축장이자 전쟁터죠."

현대자동차 미국판매법인(HMA) 법인장인 고옥석 부사장의 미국 시장 상황 설명이다.

그는 "환율과 생산의 유연성 문제에서 현대차와 도요타가 정반대의 상황에 처해있다"고 지적했다.

도요타는 엔저(低)로 가격경쟁력이 높아진 데다 현대차와는 달리 노조의 협조 아래 생산라인을 탄력적으로 조절해 시장수요에 효율적으로 대처한다는 것.이로 인해 도요타는 미국에서 승승장구하는 반면 현대차는 환율에 치이고 노조에 발목이 잡혀 판매가 사실상 정체돼 있다.

중대형차는 브랜드 이미지가 상대적으로 약하고,중소형차는 환율급락에 따른 가격경쟁력 저하와 물량 부족으로 판매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뛰는 도요타,기는 현대차

로버트 프라드진스키 HMA 판매담당 이사는 자신의 방에 걸린 칠판 맨 위에 서투른 한글로 '하면된(돼+ㄴ)다'고 써놓았다.

맞춤법은 틀렸지만 최근의 판매경쟁이 얼마나 치열한지 엿볼 수 있다.

그는 "환율하락과 도요타의 견제,엑센트와 엘란트라 등 중소형차의 공급량 부족 등으로 매우 어렵다"며 "쏘나타는 도요타 캠리와 가격차이가 거의 없어졌고 도요타의 딜러 수는 우리의 2배"라고 고충을 털어놓았다.

현대차는 상반기 실적이 부진한 데다 경쟁은 날로 심화되고 있어 미국시장의 올 연간 판매 목표를 하향조정키로 했다.

당초 잡은 55만5000대 달성은 힘들졌다고 보고 48만5000대로 줄인다는 방침이다.

기아차도 미국 판매 목표치를 당초 36만여대에서 32만여대로 '현실화'시켰다.

HMA의 올 상반기 판매량은 23만6595대.작년 상반기에 비해 1.1% 늘어나는 데 그쳐 사실상 제자리 걸음을 했다.

이에 비해 도요타는 상반기에 117만여대를 팔아 전년 동기보다 판매량을 9.1% 늘렸다.

도요타의 럭셔리 브랜드인 렉서스 판매량(16만대)도 6.3% 증가했다.

혼다와 닛산도 각각 4.7%,3.9% 늘었다.

평균 6.9%의 판매 감소율을 나타낸 미국 '빅3'(GM·포드·크라이슬러)를 제외하면 7개 주요 외국차업체 가운데 현대차의 판매 증가율 순위는 폭스바겐(-1.0%)에 이어 꼴찌에서 두번째다.

여기에 가격경쟁까지 불붙고 있어 전망이 어둡다.

가격을 할인하지 않기로 유명한 혼다마저 2007년형 어코드를 최근 2000달러씩 깎아주고 있다.

오는 10월 2008년형 모델 출시를 앞두고 재고를 소진하기 위한 방편이다.

포드도 중형 세단 퓨전을 2100달러가량 싸게 판다.

이 때문에 쏘나타와 가격이 비슷해지거나 딜러에 따라서는 더 싸게 파는 경우도 생겨나고 있다.

산업자원부에 따르면 환율하락 여파로 배기량 2000cc급 승용차의 미국 판매가격은 2005년 한국산이 1만6358달러,일본산이 1만8500달러였으나 작년에는 한국산이 1만8795달러로 일본산(1만8500달러)보다 높아졌다.

◆품질은 되는데 브랜드 파워가 문제

미국 로스앤젤레스 국제공항(LAX) 근처 잉글우드시에서 현대차 대리점(LAX 현대) 부사장으로 일하는 자크 모스비씨는 최근 현대차의 성능과 품질에 새삼 놀란다.

BMW의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인 X5를 몰던 친구가 베라크루즈를 한번 타보더니 "너무 맘에 든다"며 차를 곧바로 바꿔버린 것.닛산의 럭셔리 브랜드인 인피니티 FX를 몰던 고객이 싼타페의 뛰어난 성능과 연비에 반해 교체한 사례도 지켜봤다.

여기까지는 좋은데 문제는 다음이다.

그는 "품질은 환상적(fantastic)인데 고객들은 현대차에 그런 차가 있는지 잘 모른다"고 말한다.

오랫동안 중저가 브랜드로만 인식돼 온 탓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부자들이 많이 사는 캘리포니아지역의 경우 현대차가 우수 딜러를 구하기 힘들 정도다.

조 바버라 HMA 캘리포니아 담당 부장은 "도요타 렉서스 혼다 벤츠 BMW 등 프리미엄 브랜드 외에는 딜러들이 수익을 남기기 힘들다"며 "캘리포니아 딜러들에는 다른 곳에 비해 더 커다란 지역을 맡도록 해 수익을 보장해 주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LA=이건호 기자 leek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