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 증권가는 요즘 한여름 열기처럼 뜨겁다.

지난 주 '꿈의 주가 2000시대'를 연 주식 시장이 이틀연속 급락했지만 증시에 대한 관심은 과거 어느 때보다 높다.

증권업계는 특히 이달초 자본시장통합법(자통법)국회 통과로 새로운 발전전략을 짜느라 바삐 움직이고 있다.

황건호 증권업협회 회장은 "증시 활황과 획기적인 규제완화로 우리 자본시장이 르네상스 시대에 돌입했다"며 "자본시장 장기발전을 모색해야 할 절호의 기회"라고 말했다.

황 회장을 만나 주식시장 전망과 증권산업의 미래 등을 들어봤다.

-지수 2000시대가 열리자마자 큰 조정을 받았다.

앞으로 어떤 모습을 보일 것으로 예상하나.

"주가와 경제성장률 그래프를 같이 놓고 보면 경제보다 주식시장의 진폭이 크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주가는 상승기조만이 지속될 수는 없다.

하지만 최근 코스피지수는 거의 직선으로 상승하는 모습을 보였으며 단기급등에 따른 조정 우려 또한 적지 않았다.

따라서 조정이 온다고 해서 조급해할 필요가 없다.

이미 증시는 중장기 상승 추세로 이어지는 선순환구조에 들어섰다."

-선순환구조의 근거는 무엇인가.

"우선 수급구조가 좋아졌다.

적립식 펀드 가입과 같은 장기투자 문화가 자리잡아가면서 기관투자가의 투자여력이 확대되고 있다.

개인투자자도 과거 '꾼' 중심의 단기투자자가 많았지만 노후를 대비하는 30∼40대의 건전 투자자들이 늘면서 가계자산의 중심이 부동산과 은행예금에서 투자로 재편되고 있다.

한·미 FTA가 해결되고 한반도 핵 긴장이 완화되고 국가신용등급이 올라가면서 코리아 디스카운트도 해소 과정에 있다."

-지난 주말 외국인이 사상 최대 규모로 매물을 내놓았다.

외국인의 매도 공세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외국인의 최근 매도는 '셀 코리아'가 아니다.

국내 증시가 다른 중진국 이머징마켓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이 오른 만큼 포트폴리오 조정 차원이라는 판단이다.

더욱이 외국인의 절대적 영향력도 줄어들고 있다.

외국인의 우리 증시 보유비중이 2004년 44%까지 높아졌지만 지금은 34%로 내려왔다.

게다가 펀드 등 증시 주변자금이 올 들어서만 34조원 이상 늘어나 유동성이 풍부한 상태다.

외국인이 판다고 시장이 무너지지는 않을 것이다.

경기회복 조짐도 증시 활황을 받쳐주는 요인이다."

-빌린 돈으로 투자하는 신용융자가 너무 많아 조정장에 큰 피해가 우려된다는 지적도 있는데.

"문제는 속도다.

전체 거래대금 대비 신용거래 비중은 미국 15.5%.일본 13.6%보다 낮은 11.3%다.

다만 증가속도가 빠른 측면이 있다.

협회가 지난달 증권사 사장단 회의를 갖고 신용융자를 매일 점검하기로 한 것도 이 때문이다.

업계는 지나친 장밋빛 전망을 내놓는 것을 자제해야 한다.

투자자들도 쏠림현상을 경계하고 냉정해질 필요가 있다.

정부도 과거처럼 일회성 조치로 문제를 해결하려 하기보다는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정책을 내놓아야한다.

과다한 유동성을 조절하고 과감한 공기업 민영화로 우량주를 공급하는 것도 필요하다.

특히 경제주체들로선 과거와 달리 글로벌 증시와 동조화되고 있는 점을 감안해 해외증시 변수에도 대비해야 한다."

-자본시장 선진화를 위해 어떻게 해야 하나.

"자통법 통과는 자본시장은 물론 전체 금융산업과 국민경제 선진화의 기폭제가 될 것이다.

우리나라가 1인당 국내총생산(GDP) 3만달러 시대로 갈 수 있는 법적·제도적 기틀이 마련됐다는 의미가 있다.

하지만 자통법 시행 자체가 자본시장의 선진화를 보장하지는 않는다.

증권업계로선 대형화 특화 전문화 등 다양한 성장전략에 맞춰 수익원을 다변화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위탁매매라는 시황사업에 매달려서는 선진화의 타이밍을 놓치게 된다.

미국 증권사 수익의 22%를 차지하는 위탁매매가 국내 증권사에서는 56%에 이른다."

-자통법을 계기로 한국판 골드만삭스가 될 대형 투자은행이 나와야 한다는 목소리가 많다.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대형 투자은행은 몇 개가 나올 것으로 보는가.

"국내 증권사 총 자기자본은 20조1000억원으로 미국 골드만삭스 1개사의 35조원보다 적다.

리스크가 따르는 투자은행(IB) 업무를 하기에는 덩치가 크게 부족하다.

이 때문에 인수·합병(M&A)과 증자 등을 통한 자본규모 대형화가 필요하다.

국내 증권사들은 우선 5∼6개사 중심으로 재편되고 최종적으로는 3∼4개의 대형 투자은행이 탄생할 것이다.

나머지는 중형 투자은행과 특화 전문화 증권사의 길을 가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투자은행으로의 변신은 선언에만 그쳐서는 안 된다.

국내에 IB육성론은 많았지만 이를 실천하는 노력은 부족했다.

산업은행이 대우증권에 IB업무를 넘긴다고 했는데 하루빨리 가시화돼야 한다."

-일부 중소형 증권사는 자통법이 새로운 규제가 될 수 있다고 걱정한다.

자본금 규모에 따라 업무영역을 제한할 경우 시장 참가기회조차 얻지 못할 것으로 우려하는데.

"자통법의 기본취지는 자율 경쟁 개방이다.

하위 시행규정은 물론 금융감독관행 역시 이에 맞게 바뀌지 않으면 '반쪽 개혁'에 그칠 수 있다.

꼬리가 몸통을 흔들어서는 안 된다.

시장진입 규제도 자본금 규모에 따른 양적인 규제에서 실제 해당 업무를 할 수 있는지를 따져 허가를 내주는 질적인 규제로 바뀌어야 한다.

물론 허가받은 금융회사가 문제를 일으키면 공적인 규제로 단호하게 처벌하면 된다.

협회는 자통법 시행령 등 하위규정 제정을 체계적으로 돕기 위해 증권사 유관기관 학계 연구기관 관계자들로 자본시장선진화 추진단을 구성키로 한 상태다."

-금융산업 발전을 위해 필요한 인력이 절대 부족하다고 한다.

"금융서비스 산업의 핵심 성공요인은 돈 사람 인프라다.

돈과 인프라 문제는 풍부한 유동성과 자통법 통과로 어느 정도 해결됐다.

문제는 사람인데 없는 게 아니다.

CEO가 단기 업적주의에서 벗어나 길게 보고 전문가를 발탁해 업무를 맡기고 그 사람이 멘토가 돼 인재를 키우도록 해야 한다.

외국 금융회사에서 일하는 한국출신의 우수인력만 600여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렇게 흩어져 있는 우수 인재를 잘 활용하는 것이 CEO의 숙제다.

협회도 최근 증권사 리서치센터장들의 도움을 받아 애널리스트를 양성하는 교육 프로그램을 실시하는 등 우수인력 양성에 힘쓰고 있다.

증권연수원을 증권교육원으로 확대할 계획도 갖고 있다.

미국을 벤치마킹해 글로벌 수준의 자격증제도 도입을 위한 시장조사도 벌이고 있다."

-증권선물거래소가 상장을 추진하고 있는데 주주인 일부 증권사에서 거래소 상장과 관련한 공익기금 출연을 거부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거래소의 IPO는 업계가 적극 지원할 생각이다.

세계적인 추세인데다 자본시장 선진화에 기여할 수 있다.

하지만 거래소 IPO 추진과정에 이견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절차의 투명성이 아쉬웠다.

증권업계가 거래소 IPO의 발목을 잡는 일은 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거래소 역시 공익기금 용도의 투명성과 함께 장기적으로 지배구조 개선에 대해 깊은 고민을 해야 한다."

글=오광진/사진=강은구 기자 kjo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