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 相 鐵 < 산업기술대 교수·산업정책 >

산업계와 학계의 협력관계는 지속적인 기술혁신을 창출하면서 우리 인류의 기계문명 발전에 지대한 역할을 수행해 왔다.

특히 산학(産學) 협력의 시초는 산업혁명을 나중에 시작한 독일,스웨덴 등 후발주자들이 산업혁명의 선발주자인 영국,프랑스 등을 따라잡기 위한 전략으로 시작한 것이 매우 인상적이다.

실례로 19세기 말 세계 최고의 선진국인 영국의 1인당 생산능력은 독일의 3배,스웨덴의 5배에 이르러 당시 산업 후진국과는 많은 차이를 보이고 있었다.

산업발달의 차이가 삶의 질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잘 나타내는 유명한 일화(逸話)가 있다.

훗날 독일 총리가 된 비스마르크는 19세기 중엽 영국에서 유학 생활을 했는데 당시 영국 시민들이 평일 점심식사로 스테이크를 일반적으로 즐기는 것에 관해서 매우 놀라워했다는 것이다.

최고 선진국인 영국과 독일의 경제적 차이가 매우 크게 나고 있었음을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스웨덴의 경우도 비슷한 과정을 겪었다.

스웨덴은 농업 중심의 산업구조에서 산업국가로 전환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영국에 산업시찰단을 파견했는데 이들은 당시 영국의 높은 생산성을 목격하고 커다란 충격을 안고 귀국하게 된다.

이들의 결론은 영국과 같은 높은 생산성을 보유한 선진 공업국가가 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국가가 필요로 하는 인재를 양성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를 토대로 인재들로 하여금 생산성을 향상시키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게 해 기술선진 국가를 추격해야 한다는 구체적인 전략을 채택하게 됐다.

이러한 배경을 안고 독일에서는 베를린공과대학,뮌헨공과대학 등이 잇따라 설립되고 스웨덴에서도 왕립공과대학,샬머시공과대학 등이 생겨났다.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유럽의 종합대학들과 비교할 때 북유럽의 공과대학 역사가 상대적으로 짧은 이유는 이들의 탄생 배경이 자국(自國)의 후진적 산업구조를 선진화시키는 데 견인차 역할을 수행하는 시대적·역사적 사명과 밀접한 관련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산학 협력은 20세기 초 독일이 영국을 제치고 유럽 최대의 경제대국으로 재탄생하는 데 초석(礎石)이 되었으며 스웨덴 또한 이를 토대로 유럽 내에서 가장 가난한 지역에서 신흥 산업국가로 거듭나는 데 성공했다.

이러한 현상은 동양에서 산학 협력을 수행하여 농업국가에서 유일한 산업국가로 진입하는 데 성공한 일본의 경우에도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다.

산학 협력은 후발국가에서 선진 국가를 추월하거나 따라잡기 위한 전략적 효율성이 역사적으로 증명된 것일 뿐만 아니라 시대를 거듭하면서 진화적으로 21세기인 현재까지 지속적으로 발전하고 있다.

즉 산학 협력의 패턴이 단순히 기업이 필요로 하는 연구개발을 대학이 수행해 기술혁신 창출이나 기술 이전(移轉) 및 기술지도 제공 등만을 수행하는 기능에서 연구개발의 결과를 최단기간 내에 상업화로 연결할 수 있는 구조적 틀을 구축하는 데 전력투구(全力投球)하는 쪽으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이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기업과 대학이 단순한 협력관계를 위한 대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공동의 목표를 지향하는 파트너십을 바탕으로 재편성돼야 한다.

이러한 새로운 구도가 바로 산학 협력 이후의 산학 융합 및 복합의 시대를 열게 되는 원동력이며 국가 및 지역 경쟁력 향상의 핵심 요인이다.

대표적인 예로서 스웨덴 및 핀란드에서는 대학이 연구개발 활동뿐만 아니라 혁신클러스터 경영에 핵심주체 중 하나로 직접 참여하고 있으며 미국 휴스턴 앤더슨 암센터에서는 연구개발 활동,의료서비스 제공뿐만 아니라 기술이전 사업을 직접 수행하고 있다.

즉 대학과 기업이 분리되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융합(融合)해 존재하면서 사업의 복합화를 창출하는 것이다.

21세기는 산업의 융합 및 복합 시대다.

이러한 새로운 흐름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고 있는 선진국의 '산학 융합 및 복합화'에 우리의 대학과 기업은 얼마나 준비가 되어 있는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