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피랍사태 11일째를 맞았지만 탈레반과의 인질석방 협상은 여전히 안개 속이다.

우리 정부는 '개발 원조(ODA)카드'를 이용해 아프간 정부를 설득하는 것으로 전해졌지만 협상의 키를 쥐고 있는 아프가니스탄 정부가 이를 수용할지는 불투명하다.

아프간 정부로선 미국 등 파병국의 입장을 우선 고려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협상이 진전을 이루지 못하면서 아프간 정부가 29일 처음으로 구체적인 군사 작전 계획을 언급했다.

미국 등 파병국에 대한 설득 등 외교노력의 성패 여하에 따라 상황이 중대국면을 맞을 수도 있다.


◆ODA로 아프간 정부 설득

대통령 특사로 파견된 백종천 청와대 안보실장이 아프간 정부 고위 당국자를 두루 접촉하고 있지만 아직까진 뚜렷한 성과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아프간에 연간 30억원 규모의 ODA를 주고 있고,이를 대폭 늘릴 수도 있다는 입장인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아프간 정부는 테러리스트 석방에 부정적인 미국과 유럽 파병국들 때문에 이를 선뜻 수용하기 어려운 처지다.

국제평화유지군 사령관인 댄 멕닐은 "납치세력과 협상하는 것은 나쁜 생각(독일 ARD 방송 인터뷰)"이라며 협상 자체에도 부정적이었다.

송민순 외교통상부 장관은 28일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부 장관과 전화통화를 가졌으나 내용은 알려지지 않았다.

외교부는 통화 사실 자체가 알려지는 게 부담스러운 눈치다.

정부 당국자는 "평화적인 해결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우방국들과의 관계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카르자이 아프간 대통령이 다음 달 5~6일 미국을 방문해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과 가질 정상회담과 관련,정부 당국자는 "두 정상이 만나 탈레반 죄수 석방을 논의할 것을 기대하기 어렵다"며 "원래 예정된 일정인데다 이(죄수 석방)는 국가의 원칙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군사작전 가능성 제기

아프간 정부 협상단 일원인 마흐무드 가일라니 의원은 알자지라 방송에 "죄수 석방은 없다는 정부 입장이 명확하다.

협상단은 죄수와 인질 교환에 응할 권한이 없다"고 말했다.

이 방송은 탈레반이 죄수석방을 고집하고 아프간 정부는 불가로 맞서 협상이 정체됐다고 보도했다.

아프간 정부 대책반을 이끌고 있는 내무차관 무니르 망갈은 전날 로이터 통신에 "우리는 대화를 믿고 있지만 만약 대화가 실패한다면 다른 수단에 의존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하고 '무력 동원을 뜻하냐'는 질문에는 "당연하다"고 답했다.

이날은 아프간 정부 당국자가 일본 NHK에 "인질구출 훈련을 전문적으로 받은 720명 규모의 특수부대 파병을 준비하고 있다"고 구체적인 계획까지 내놨다.

죄수 석방에 반대하는 입장을 우회적으로 분명히 하는 한편 탈레반을 압박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묘책 없는 정부·불어나는 협상단

아프간 정부와 탈레반은 군사 작전과 인질 살해로 상대를 위협하며 버티기에 들어갔다.

아프간 정부 측은 협상이 정체된 사이 카라바그 부족 원로들이 각자 마을로 돌아가 더 많은 원로들을 데려왔다고 CNN과 알자지라방송이 보도했다.

원로들은 "여자를 인질로 잡는 것은 이슬람 율법과 아프간 문화에 어긋난다"는 명분으로 납치세력을 설득할 예정인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도 지난 주말 이슬람 문화 전문가 황의갑 한국외대 연구교수와 국정홍보처의 인도홍보 전문가를 현지에 추가로 보냈다.

정부 당국자는 "탈레반이 무고한 자원봉사자들을 인질로 잡고있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을 아프간 내에서 적극적으로 홍보하려 한다.

주변국 한국 대사관 모두 지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지영 기자 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