鄭奎載 < 논설위원ㆍ경제교육연구소장 >

타이타닉호 사건은 배우 디카프리오가 열연했던 영화로도 잘 알려져 있다. 2208명이 승선해 1513명이 죽고 3분의 1만 살아남았다. 정장 차려입은 일반인들도 대양 유람에 나설 수 있었던 1912년의 대재난이다.

이 사건을 계기로 달라졌던 것이 해양 조난사고 대책이나 선박구조공학 만이 아니었다.

타이타닉 사건의 후폭풍이 몰아쳤던 분야는 전혀 엉뚱하게도 미국의 조세 개편이었다.

타이타닉호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남았던 사람의 대부분은 탈출이 쉬웠던 1등실에 탔던 부자였다.

아메리칸 드림을 이룬 사람들이 쏟아졌고 부동산 가격이 뉴욕의 마천루만큼이나 하늘을 찌르던 부(富)의 폭주 시대였다.

"떼죽음의 바다에서 부자들은 어떻게 살아왔나? 그들에게 세금을 매겨라!"는 요구가 빗발쳤다.

바로 다음 해인 1913년 미국 연방정부는 제16차 수정헌법을 통해 새로운 세금 제도를 만들어 냈다.

현대적 의미의 소득세는 그렇게 질시와 원망 속에서 탄생했다.

소득세는 그때까지만 해도 영국이 나폴레옹과 전쟁을 치를 때 전비 조달을 위해 매겼던 전쟁세처럼 간헐적으로 존속해왔을 뿐이었다.

2000년 전 중국의 왕망이 10% 소득세를 매긴 적이 있지만 곧바로 폐기되었다.

부호 록펠러가 저 유명한 록펠러 재단을 만든 것도 1913년이었다.

개인의 재산이 국부(國富)를 능가한다는 평가를 받았던 스탠더드오일의 록펠러는 날로 강력해지는 독점 금지법에도 아랑곳없이 역사적 부를 쌓아 올렸다.

뉴욕의 어두운 뒷골목에서는 "금융 부호 모건이여! 그대와 함께 죽으리.밤의 황제여…"운운하는 대중가요가 퍼져나가던 험악한 시절이기도 했다.

그만큼 부자들에 대한 적대감이 하늘을 찔렀다.

록펠러는 결국 그의 이름이 들어간 자선 재단을 만들어 물경 3억달러를 기부하는 것으로 명예를 지켰다.

철강왕 카네기도 자동차왕 포드도 자선재단을 만들면서 역시 명예를 지켰다.

최근의 일로는 워런 버핏이 30조원을 기부하는 것으로 역사적 부호의 반열에 자신을 올렸다.

세금을 많이 내고 자선을 베푸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다.

그러나 드러난 것이 전부인 것은 물론 아니다.

지상에는 천사도 악마도 살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자선과 기부는 언제나 다락같은 소득세와 상속세를 회피하기 위한 '합리적이고도 타협적인' 출구로서의 역할도 해왔다.

자선활동에서 한 계단을 내려서면 금전신탁의 영역이었다.

당시 새로운 금융상품으로 각광받았던 금전신탁은 자선재단과 함께 사유재산의 축적본능을 지켜내는 보루였다.

금융산업은 또 그렇게 커나갔다.

지상에서 지하로 내려서면 탈세와 재산 해외반출이 있을 것이었다.

미국의 재야 일각에서는 케네디 대통령의 부친이었던 조셉 케네디가 재산을 몽땅 남태평양 피지로 옮겨놓고 한푼의 증여세도 상속세도 내지 않았다고 지금도 비난하고 있다.

그의 아들 에드워드 케네디가 상속세 폐지 반대론을 폈던 것은 정말 아이러니다.

시장경제가 100% 소득세와 그것의 잔여물에 매겨지는 100% 상속세를 유지하면서도 성장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모르지만 그 경우에도 문명의 축적은 더이상 불가능해진다는 것을 우리는 또한 잘 알고 있다.

이제 겨우 50년 역사일 뿐인 한국의 자본주의는 노령화와 세대교체를 맞으면서 사회 전체가 지금 바로 그 질문에 봉착하고 있다.

지난주에는 국회에서 중소기업 상속 문제에 대한 공청회가 열기 속에 개최됐고 주말에는 변양균 청와대 정책실장이 "중소기업 가업승계를 위한 합리적인 대책을 만들어보겠노라"고 약속했다.

"공익법인에 대한 재산 출연을 막고있는 각종 규제를 풀겠다"고도 했다.

때늦은 방향 선회지만 다행스럽다. 좌파 정부가 부의 대물림을 막는다는 그럴싸한 구호로 창업기업가들의 열정을 고갈시킨 지난 10년이 안타까울 뿐이다.

기실 한국의 현행 제도 하에서는 록펠러도 카네기도 버핏도 불가능하다. 공익재단 출연조차도 무소유의 천사들 정도만이 접근할 수 있을 정도로 그 조건이 엄격했기에 기업상속과 가업전수를 위한 온갖 편법들이 동원되었던 것이다.

이제 그것을 바로잡아 합리적인 대안을 만들 때가 왔다.

jk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