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가니스탄 피랍 한국인 석방 협상이 돌파구를 마련하지 못한 채 장기화 조짐을 보이고 있다.

아프간 정부와 납치세력은 서로 수용하기 힘든 요구를 내걸고 대치를 계속하고 있다.

정부 당국자는 "납치세력과 접촉을 계속하고 있다"고 말했으나 제대로 된 협상은 며칠째 제대로 열리지 못했다.

협상이 진전을 이루지 못하면서 아프간 협상대표단 일부가 철수했다는 보도도 나오고 있다.

특히 탈레반은 협상 시한을 이날 낮 12시(한국시간 오후 4시30분)에서 여덟 번째 연장하면서 "(탈레반) 죄수 석방을 시작하지 않는다면 인질들을 살해하기 시작할 것"이라고 압박했고,아프간 정부는 군사작전을 경고하면서 긴장은 더욱 고조되고 있다.

◆아프간 정부,"여자부터 풀어라"

아프간 정부는 "여자 16명부터 풀어라.그 전엔 협상은 없다"며 탈레반을 강하게 압박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아프간 정부는 탈레반 죄수 석방은 불가능하다고 배수진을 쳤다.

협상단에 포함됐던 의원 두 명은 29일 밤 아예 수도 카불로 철수해 버린 것으로 전해졌다.

알자지라 방송은 아프간 정부 협상단이 "죄수와 인질 맞교환은 전혀 고려의 대상이 아니다"는 강경한 입장이라고 보도했다.

아프간 정부는 탈레반의 요구 수준을 낮추기 위해 군사작전 카드를 전략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미군과 아프간 보안군은 납치범들이 은신한 카라바그 산악 지대를 완전히 포위했다.

아프간 정부는 납치범들에게 여성 인질들을 조건없이 석방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그 다음부터 납치세력의 퇴로를 놓고 협상을 시작하겠다는 강경한 입장이다.

◆탈레반,"전원 석방 못한다"

탈레반 무장세력은 여성 인질을 전원 석방하라는 요구를 거부했다.

여성 인질을 석방할 경우 군사작전이 시작될 가능성이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자칭 탈레반 대변인 유수프 아마디는 언론을 통해 인질을 세 차례에 나눠 석방하겠다고 주장했다.

수감자 8명이 석방되면 인질 8명과 교환할 것이며,여자와 남자를 섞어서 내보내겠다고 말했다.

요구 조건에 관해선 "죄수 석방과 한국군 철수,두 가지 요구에 변함이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아마디는 협상 시한 연장을 밝히면서도 "아프간 정부가 우리의 요구 사항을 무시했다.

한국인을 살해하겠다"고 위협했다.

납치세력은 인질들을 민가에 분산 은닉한 것으로 알려졌다.

민간인까지 볼모로 삼아 군사작전을 저지하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미국에 기댄 아프간 정부

아프간 정부가 강공으로 급선회한 데는 탈레반 죄수를 석방하기 어려운 속내가 반영됐을 가능성이 크다.

탈레반의 부활과 내전 격화로 인해 사상자가 급증하면서 37개 파병국들은 저마다 철군하라는 국내의 정치적 압박에 시달리고 있다.

독일(3000명),캐나다(2500명),이탈리아(2000명) 등 특히 유럽에선 야당의 철군 요구가 정치 쟁점이 된 상태다.

남부와 동남부 전역으로 무장투쟁이 확산되고 있어 하미드 카르자이 아프간 대통령에 대한 사임 압력도 커지고 있다.

외국 군대의 철수는 곧 카르자이 정권의 붕괴를 뜻한다.

카르자이 대통령이 다음 달 5,6일 방미해 조지 부시 대통령을 만나기로 한 것은 외국군 3만5500명의 절반을 책임지고 있는 미국과의 연대를 재확인하는 차원으로 보인다.

두 정상이 한국인 인질 사태 해결을 위한 탈레반 죄수 석방을 협의할 가능성은 낮다는 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정지영 기자 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