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디자인 수준이 한 단계 업그레이드 하려면 엔지니어링 개념을 잘 아는 디자이너가 더 많이 배출돼야 합니다."

스기야마 가즈오 세계디자인학회 부회장(64·일본디자인학회장)은 최근 제주 신라호텔에서 한국경제신문과 인터뷰를 갖고 "앞으로 디자인은 단순한 외적 아름다움을 추구하기보다는 제품의 기능을 잘 살리는 방향으로 진화할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스기야마 부회장은 일본의 명물인 세토대교 등을 그린 일본 디자인계의 거장으로,인천 영종대교와 부산 광안대교도 그의 손을 거쳤다.

또 정국현 삼성전자 디자인총괄 부사장,김철호 LG전자 부사장 등을 제자로 두는 등 대표적인 지한파(知韓派) 디자이너로 통한다.

스기야마 부회장은 "예컨대 200개가 넘는 TV 채널 중 시청자들이 그때 그때 분위기에 따라 원하는 방송을 손쉽게 찾도록 TV를 설계하는 것도 디자이너의 몫"이라며 "디자이너가 공학을 잘 알아야 제대로 된 제품이 나온다"고 강조했다.

그는 특히 임직원들의 업무가 세분화된 대기업과 달리 중소기업에서 일하는 디자이너들은 마케팅 등 언뜻 디자인과는 무관해 보이는 업무도 익혀야 한다고 설명했다.

디자이너들이 제품의 특성과 판촉 방향 등을 사전에 제대로 파악해야 '예쁘면서도 편리한' 제품이 나온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한국 디자인 업계는 삼성전자 LG전자 현대자동차 등 이른바 '3인방'에 대한 의존도가 너무 높은 탓에 '중소기업용 디자이너' 육성이 미흡하다고 그는 진단했다.

스기야마 부회장은 "삼성 LG 현대차의 디자인 실력은 단기간에 일본 경쟁 업체 수준으로 올라섰다"며 "그러나 한국의 디자인 산업 전체가 이들 기업에 쏠린 탓에 부작용도 생기고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이어 "일본의 경우 지금은 대기업의 디자인 수요가 중소기업보다 다소 많지만 10년 뒤에는 반대로 중소기업의 수요가 대기업보다 2배 이상 많아질 것"이라며 "한국 역시 비슷한 모습으로 진행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는 "중국 레노버는 디자인 책임자를 미국 유명 대학 MBA(경영학 석사) 과정에 입학시킬 정도로 디자이너의 역할을 중시한다"며 "한국 기업과 대학들도 이제 디자이너에게 디자인이 아닌 다른 영역에 대해서도 교육시켜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오상헌 기자 ohyea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