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간 정부.무장세력 치열한 수싸움 전개될 듯
미국.아프간 정상회담 사태해결 분수령


아프가니스탄 탈레반 무장세력 측이 배형규 목사에 이어 31일(한국시간) 심성민(29)씨를 추가 살해함에 따라 피랍자 석방교섭이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고 있다.

무장세력 측은 한국인 피랍자 추가 살해 뒤에도 `탈레반 수감자-인질 맞교환'을 거듭 요구하면서 "우리 요구가 충족되지 않을 경우 더 많은 인질들의 생명이 위험에 빠질 것"이라고 위협했다.

특히 무장세력 측은 "협상이 잘 되지 않을 경우 남성 인질에 이어 여성 인질도 살해하겠다"는 `순차적 인질 살해'를 언급하면서 "살해 주기도 짧아질 것"이라는 초강경 협박도 서슴지 않고 있다.

그러나 아프간 정부와 무장세력은 현재 상호 불신으로 석방교섭은 커녕 접촉마저 갖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무장세력 측의 추가 살해 가능성이 우려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상황에서 아프간 정부 일각에서 제기된 무력동원을 통한 인질 구출작전 쪽으로 힘이 실리는 등 아프간 현지 상황은 한치 앞을 볼 수 없는 극한으로 몰리는 분위기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 아프간 정부-무장세력 `數싸움' = 아프간 정부와 무장세력 측 사이에 진행된 한국인 피랍자 석방교섭은 애초부터 `탈레반 수감자-인질 맞교환'이란 풀기 어려운 방정식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우선 피랍사태의 최대 관건인 수감자-인질 맞교환은 아프간 정부로서는 도저히 수용하기 어려운 카드이지만 무장세력 측으로서는 수감자 석방 요구를 관철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은 셈이기 때문이다.

실제 아프간 정부는 지난 3월 납치된 이탈리아 기자의 석방조건으로 인질-탈레반 수감자 교환안을 받아들였다가 국제사회의 거센 비판에 직면, `다시는 테러조직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다짐한 바 있다.

더욱이 실질적인 영향력을 갖고 있는 미국이 `테러단체와 불타협' 원칙을 고수하면서 수천명의 미군 희생을 감수하고 있는 데다 아프간 정부 역시 탈레반과의 전투에서 매일 수십명씩의 자국 군.경을 잃고 있는 상황에서 `백기'로 비쳐질 이 같은 수(數)를 둘 것으로 기대하기도 어려워 보인다.

이런 상황으로 인해 아프간 정부 측은 그동안 무장세력 측과의 석방교섭 과정에서 실질적인 진전을 전혀 보지 못했던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아프간 정부는 대신 석방교섭을 연장하는 `시간벌기'와 함께 `여성을 인질로 잡는 것은 이슬람 율법에 어긋난다'는 여론 형성, 무력동원을 통한 군사작전 가능성 등 3가지 카드로 무장세력 측을 압박해왔던 것으로 분석된다.

반면 무장세력 측도 수감자-인질 맞교환 요구를 성사시키기 위해 한국인 피랍자의 육성 인터뷰와 동영상 등을 잇따라 언론에 공개하면서 아프간 정부와 한국.미국 정부를 겨냥한 심리전의 수위를 높여왔다.

또 무장세력 측이 "미군 등 연합군도 탈레반 여전사를 감금하고 있다"면서 이슬람 율법에 `이에는 이'라는 구절이 있음을 강조한 것은 여성 인질을 붙잡고 있다는 부정적 여론을 해소하기 위한 `맞불 작전'으로 받아들여진다.

탈레반 대변인으로 자처하는 카리 유수프 아마디가 "우리는 여성이든 남성이든, 어린이든 억류하고 죽일 수 있다"고 언급한 데 이어 "한국인들은 아프간인을 기독교로 개종하려고 온 사람들"이라며 종교문제까지 거론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 향후 석방교섭 전망 = 탈레반 무장세력 측이 이날 `8월1일 오후 4시30분(한국시각)'으로 협상시한을 재설정하면서 지지부진해왔던 아프간 정부와 무장세력 간 석방교섭이 재개될 것으로 관측된다.

이처럼 협상시한이 연장되면서 한국인 피랍자 21명의 안전이 하루간 유예되기는 했지만 아프간 정부와 무장세력 간 석방교섭이 원활히 이뤄져 인질석방으로 이어질 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문제는 무장세력 측이 또 다시 석방교섭이 답보상태를 면치 못하면 아프간 정부측에 자신들의 요구를 관철시키기 위해 한국인 피랍자들을 순차적으로 살해할 가능성이 높다는 데 있다.

게다가 인질 협상과 처리 문제를 놓고 탈레반 강온파간에 의견대립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강경파들이 석방교섭을 주도하기 위해 초강수를 두는 복잡한 상황이 전개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더욱이 수감자-인질 맞교환 카드를 거부하고 있는 아프간 정부가 석방교섭에서 마땅한 해법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것도 교섭 전망을 어둡게 하고 있다.

한국인 피랍자 가운데 여성을 우선 석방하는 `先여성 석방안'이 한국과 아프간 정부, 석방교섭에 참여하고 있는 아프간 지방원로들 사이에 논의됐다가 무장세력 측이 거부한 것도 향후 석방교섭의 어려움을 예고하는 방증이다.

이에 따라 향후 석방교섭의 성패는 아프간 정부와 무장세력 간 수감자-인질 교환에 대해 어느 정도 의견을 조율할 수 있느냐에 달려있어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다음달 5∼6일 예정된 조지 부시 미 대통령과 카르자이 아프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 비상한 관심이 모아지고 있는 것은 이 회담에서 한국인 피랍자 문제가 주제가 될 것으로 관측되기 때문이다.

메릴랜드주 대통령 별장인 캠프 데이비드에서 개최될 양국 정상회담은 이번 인질사태 해결의 핵심인 탈레반 수감자 석방 요구에 대해 양 정상이 어떤 결정을 도출할 것인지가 최대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물론 미국은 `테러세력과는 타협없다'는 원칙을 고수하고 있어 공개적으로 아프간 정부에 수감자-인질 교환을 지지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원만한 사태해결을 원하는 동맹국인 우리 정부의 입장을 감안, 탈레반의 요구 수용에 묵시적인 지지를 보낼 수도 있지 않겠느냐는 희망섞인 관측도 나오고 있다.

만약 석방교섭이 파국으로 치닫고 무장세력에 의한 추가 인질 살해가 발생한다면 최악의 시나리오인 무력동원을 통한 `인질구출 작전' 카드가 본격적으로 검토될 가능성이 높아질 것으로 추정된다.

실제 현재도 탈레반 근거지 소탕과 더불어 피랍사태의 장기화를 막고 인질들의 추가 살해를 저지하기 위해 군사작전이 불가피하다는 견해가 실제 아프간 정부 내에서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군사작전은 고원 산악지대인 가즈니주 카라바그 지역의 지형적 특수성과 한국인 인질 수가 많고 무장세력 측이 군사작전을 피하기 위해 인질들을 분산 수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성공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정부 외교총력전 속 장기화 대비 = 정부는 노무현 대통령 특사로 파견된 백종천 청와대 안보실장을 2∼3일 현지에 더 머물게 하면서 아프간 정부 관계자와 미군, 현지 국제안보지원군(ISAF) 등을 대상으로 `고공 외교'를 펼치도록 하는 방안을 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백 특사는 한국인 피랍자 석방을 위한 아프간 정부의 후속 대책과 무장세력 측의 반응 등을 지켜본 뒤 필요할 경우 카르자이 대통령을 포함, 아프간 정부 당국자와 추가 협의를 벌일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와 함께 조중표 외교부 제1차관 등 현지 대책반은 무장세력과 여러 경로를 통한 직.간접 접촉을 벌이도록 하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정부는 이와 함께 미국과의 공조가 이번 사태 해결의 관건이라고 보고 최고위 인사를 포함한 외교채널을 총동원하는 방안도 병행할 방침이다.

그러나 향후 아프간 정부와 무장세력 측 사이의 교섭협상이 뚜렷한 진전을 보지 못할 것에 대비, 추가 인질 살해나 사태 장기화를 염두에 둔 대응책도 마련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김종우 기자 jongwoo@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