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유국 판타지' 노래하지만 국가경제에 불행 될수도

석유는 곧 돈이자 힘이다.

두바이가 신천지를 건설하는 것도 베네수엘라의 우고 차베스 대통령이 미국에 뻗대는 것도 석유라는 믿는 구석이 있기 때문이다.

저개발국가 국민들의 가슴 한켠에 자리잡고 있는 산유국이라는 '판타지'도 석유의 힘에서 유래한다.

우리나라 역시 1980년대 '제7광구'라는 가요가 전파를 탈 정도로 석유에 목말라했다.

정말 석유만 콸콸 쏟아지면 만사가 형통해지는 걸까.

지난 6월 아프리카 서부 기니만에 접한 작은 나라 가나가 산유국 대열에 합류하게 됐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영국계 석유회사인 털로 오일(Tullow Oil)이 가나 해안에서 6억배럴가량의 석유가 매장돼 있는 유전을 확인,개발에 들어간 것이다.

존 쿠푸오르 가나 대통령은 "가나 경제를 활성화시키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라며 환호했다.

지난 5월 초엔 중국 최대 석유회사인 석유천연가스집단공사(CNPC)가 톈진 앞바다의 보하이만(발해만)에서 추정 매장량 10억2000만t의 초대형 유전을 찾아냈다고 발표했다.

중국 신문들은 일제히 1면 머리기사로 "중국 유전 탐사 사상 40년 만의 경사"라고 흥분했다.

한국의 1년 원유 수입량(1억2000만t·2006년 기준)의 열 배에 달하는 규모이니 입이 벌어질 만도 했다.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기사가 또 외신을 탔다.

이번 주인공은 캄보디아.2년째 캄보디아 해안을 헤집고 다니던 미국의 거대 석유기업 셰브론이 엄청난 매장량의 유전을 캄보디아 남쪽 해안에서 발견했다는 소식이었다.

훈 센 캄보디아 총리의 들뜬 메시지도 곁들여졌다.

"2~3년 내에 오일 머니가 유입돼 경제 부흥에 이바지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뉴욕타임스 등 일부 외신은 이런 '석유 대박' 기사를 전하며 '석유의 저주(oil curse)'라는 문구를 조심스레 끼워넣었다.

산유국의 꿈에 젖어 있는 이들 나라의 국민들에겐 생뚱맞은 소리였다.

하지만 실제로 많은 나라에서 석유의 발견은 축복이 아니라 불행이었다.

나이지리아와 차드,카자흐스탄 등이 대표적이다. 산유국 중 일부이긴 하지만 이들 나라에서는 석유가 발견되고 난 뒤 가난의 골이 더욱 깊어졌고 빈부의 격차는 더욱 벌어졌다.

네덜란드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20세기 중반 이후 네덜란드 경제가 가장 힘들었던 시기는 아이로니컬하게도 네덜란드 인근 북해에서 막대한 천연가스가 발견됐던 1960년대였다.

경제학자들은 이런 현상에 '네덜란드 병(Dutch Disease)'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요즘 들어서는 천연자원이 풍부한 나라가 오히려 천연자원이 부족한 나라보다 못 사는 현상을 통칭할 때 이 말을 쓴다.

'네덜란드 병'과 '석유의 저주'는 경제학적으로 이렇게 설명된다.

석유와 같은 천연자원을 많이 수출하면 외화 유입이 크게 늘어 자국 통화가치가 올라가고,그렇게 되면 외국의 수입품 가격은 싸지고 국산품 가격은 상대적으로 비싸지면서 국내 산업이 몰락한다는 논리다.

그러나 이보다 더 핵심적인 원인은 지도층의 부패에 있다.

특히 캄보디아와 같은 저개발국은 상황이 심각하다.

정부 건물이 스리슬쩍 외국인 손에 넘어가고 앙코르와트 유적의 입장료 수입도 개인 주머니로 들어가는 나라가 캄보디아다.

이런 저개발국에서 오일 머니가 국민 후생을 위해 투입될 것이라고 장담하긴 힘들다.

훈 센 총리 등 캄보디아 지도층은 이런 지적에 펄쩍 뛰지만 아직도 정확한 석유 매장량과 오일 머니의 규모에 대해서는 자세한 정보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

"지도층이 변하지 않으면 기껏 얻은 석유가 캄보디아를 삼켜버릴지도 모른다." 캄보디아 지식층의 고민이다.

국제투명성기구(TI)에 따르면 캄보디아의 투명성지수는 조사대상 163개국 가운데 151위로 최하위권을 맴돌고 있다.

지도층의 부패 못지않게 국민들 사이에 잘 살아보려는 의지가 상실되는 것도 큰 문제다.

석유가 나오면 국민들이 열심히 일하지 않아 석유에서 막대한 돈을 벌어들임에도 불구하고 경제는 오히려 나빠진다는 것이다.

세계 각국에서 고액의 복권에 당첨된 사람들의 상당수가 10년을 못 버티고 모두 파산 상태에 이르거나 그들의 가족이 예전보다 더 불행해졌다는 조사 결과와 같은 맥락이다.

안재석 기자 yag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