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가다 며칠 묵게 된 집의 처자가 스님을 연모하며 죽기를 각오한 채 매달린다.

애욕을 초탈한 수행자로서 이를 거부할 것인가,사람부터 살려야 할 것인가.

스님은 결국 사람부터 살리는 길을 택했고,도반들은 그를 비웃으며 떠났다.

그러나 처자와 혼인한 스님은 아들,딸을 낳고서도 수행정진에 힘써 끝내 불도(佛道)를 이뤘다.

신라 진평왕 때 부설거사의 이야기다.

그렇다면 금욕과 깨달음 혹은 구원은 무관한 것일까.

각 종교는 금욕을 신앙생활이나 수행의 중요한 덕목으로 강조해왔고 불교나 천주교는 스님과 사제의 독신주의를 고수할 정도로 금욕을 중시한다.

하지만 부설거사 외에도 유마거사나 원효대사 등 금욕의 금기를 깨고도 수행자 본연의 길을 간 사례도 많다.

금욕이 깨달음의 전제조건이라면 결혼을 허용하는 태고종이나 일본 불교,성공회나 개신교 성직자는 깨달음이나 구원의 희망이 없는 것일까.

각 종교마다 주요 관심 주제인 '금욕'을 주제로 삼는 학술행사가 열린다.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국제한국학센터가 2~3일 '금욕과 깨달음·구원'을 주제로 고려대 100주년 기념관 국제원격회의실에서 개최하는 국제학술회의다.

이번 학술회의는 민족문화연구원 설립 50주년을 기념한 것으로 종교별로 논의돼온 금욕의 문제를 인문학적 비교연구의 차원에서 학술주제로 삼는 첫 시도다.

금욕과 지역전통·영적 전통·종교 등의 관계를 조명하는 이번 학술회의에는 대만국립대 야오밍 차이 교수를 비롯해 루이스 랭카스터(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 대학),시즈카 사사키(일본 하나조노대),아상가 틸라카라튼(스리랑카 켈라니야대),로버트 지멜로(하버드대),로버트 버스웰(UCLA) 교수와 윤원철(서울대),이도흠(한양대) 교수,미산 스님(중앙증가대 교수) 등 국내외 저명 종교학자 12명이 발표자로 참여한다.

루이스 랭카스터 교수는 '보살과 금욕-왕과 상인의 불교'라는 논문에서 "금욕은 영적 수행의 핵심적 부분이면서도 불교전통 발달사에서는 주변적 위치를 차지하는 양면성이 있다"면서 "금욕이 깨달음의 전제조건이냐는 물음에 대한 답을 찾기가 쉽지 않다"고 밝혔다.

그는 또 "금욕이 불교 전통의 보편적 수행법은 아니었으며 개인의 영적 삶을 금욕이라는 리트머스 시험지로 평가하는 것은 검증된 방법으로 보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로버트 버스웰 교수는 '금욕은 시대착오적인가-일제강점기 불교의 세속화에 관한 논의'라는 논문을 통해 만해 한용운의 '조선불교유신론'을 중심으로 승려의 결혼 허용 등을 포함한 불교개혁안에 대해 논의한다.

수행자의 성적 행위에 대한 초기계율,중국·한국의 불교전통에서 금욕과 깨달음,한국 근대불교에서의 금욕과 구원,북미 인디언의 일시적 금욕과 제례 참여,고대 인도불교의 금욕 등 다양한 주제들이 발표될 예정이다.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