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간 피랍 15일째] 뉴스위크, 납치 당일 상황 재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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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피랍사태가 보름째로 접어든 2일.다시 떠올리기 싫은 납치 당시의 상황이 외신들에 의해 하나둘 짜맞춰지고 있다.
다음은 미 시사주간지 뉴스위크와 일본의 마이니치신문이 전한 납치 당일(7월19일)의 안타까운 모습.뉴스위크는 탈레반 고위 지휘관과의 인터뷰를 통해,마이니치신문은 아프가니스탄 가즈니주 경찰 간부의 발언을 인용해 당시 상황을 상세히 묘사했다.
7월19일 오후.한국인 일행은 대형 전세버스를 타고 카라바그 지역의 레오나이 시장을 찾았다.
이들은 차에서 내려 30분 정도 시장을 둘러본 뒤 다시 버스에 올랐다.
같은 시간 탈레반은 카불과 칸다하르를 잇는 도로를 순찰하며 인질로 삼을 외국인을 물색하고 있었다.
지난 6월 미군에 체포된 탈레반 사령관 다로 칸을 빼내오기 위해 맞교환할 외국인이 절실하게 필요했던 터다.
이때 한국인들이 타고 가던 흰색 버스가 탈레반의 눈에 들어왔다.
25명가량의 탈레반은 즉각 오토바이를 몰아 버스 옆에 붙이고 AK-47 소총과 수류탄을 운전사의 머리에 들이댔다.
겁에 질린 운전사는 길 한가운데 차를 세웠다.
비극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탈레반이 왜 하필 한국인이 탑승한 버스를 선택했을까에 대해서는 뉴스위크와 마이니치신문의 설명이 엇갈렸다.
뉴스위크는 이리저리 순찰 중이던 탈레반이 '운좋게' 한국인 탑승 버스와 맞닥뜨리게 됐다고 전했다.
반면 마이니치신문은 주민들의 제보를 받고 탈레반이 길목을 지키고 있었다고 보도했다.
한국인 일행이 피랍 직전 들른 카라바그 지역은 탈레반이 사실상 지배하는 곳으로 주민 대부분이 탈레반 지지자라는 것.마이니치신문은 현지 경찰 간부의 말을 인용,"한국인을 본 주민이 탈레반에 연락을 했을 개연성이 매우 높다"고 전했다.
이번 인질극을 주도한 인물은 탈레반 부사령관인 물라 압둘라.납치범들은 무전기와 휴대폰으로 압둘라에게 상황을 보고한 뒤 버스를 인근 마을로 끌고 갔다.
한국인들은 차에서 내리자마자 5개 그룹으로 나눠져 카라바그와 인근의 안다르,가즈니시 근처 다흐야크 등에 분산 수용됐다.
어처구니없는 인질극의 첫날은 그렇게 흘러갔다.
탈레반은 한국인 인질을 억류한 뒤 즉각 아프간 정부에 한국인 인질 23명을 석방하는 조건으로 탈레반 구금자 115명의 교환을 요구했다.
1 대 5의 비율을 적용한 셈이다.
그러나 아프간 정부의 태도는 미온적이었다.
몇 번의 협상이 소득 없이 지나갔다.
아프간 정부는 탈레반 구금자 일부가 바그람에 주둔해 있는 미군 기지에 있으며 미국 정부가 이들의 석방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얘기만 반복했다.
결국 탈레반은 석방 대상 탈레반 구금자 수를 23명으로 줄였고 그래도 별 진전이 없자,8명만 추려 아프간 정부에 명단을 넘겼다.
석방협상 과정에서 몸값이 잘못 전달됐을 가능성도 제기됐다.
탈레반 고위 지휘관은 "우리는 몸값을 요구한 적이 없다"면서 "한국 특사와 아프간 정부가 인질을 억류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가짜 탈레반과 협상을 벌여 몸값을 건넸을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이와 함께 아프간 정부와 탈레반 간 협상에 중재자로 나섰던 부족 원로들이 한국인 피랍 사실을 전해들은 초기부터 여성 인질 억류에 강하게 반대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뉴스위크의 인터뷰에 응한 탈레반 고위 지휘관은 "여성 인질 억류에 반대하는 부족 원로들로부터 압력을 받고 있으며 관습과 전통에 의한 압박도 가해지고 있다"며 "여성 인질의 운명을 급하게 결정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 최소한 여성 인질들만큼은 당분간 무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이것은 내 의견일 뿐 최종적인 것은 아니다"라고 단서를 달았다.
그는 이어 "아프가니스탄 군·경이 미군의 지원을 받아 한국인 인질들이 억류돼 있는 안다르 지역으로 밀고 들어오는 바람에 탈레반이 인질 3명을 끌고 파키스탄 국경 지역인 팍티카주로 피신했다"며 "탈레반이 인질 억류 지역의 대부분을 장악하고 있기 때문에 어떤 군사작전을 펴더라도 실패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안재석 기자 yagoo@hankyung.com
다음은 미 시사주간지 뉴스위크와 일본의 마이니치신문이 전한 납치 당일(7월19일)의 안타까운 모습.뉴스위크는 탈레반 고위 지휘관과의 인터뷰를 통해,마이니치신문은 아프가니스탄 가즈니주 경찰 간부의 발언을 인용해 당시 상황을 상세히 묘사했다.
7월19일 오후.한국인 일행은 대형 전세버스를 타고 카라바그 지역의 레오나이 시장을 찾았다.
이들은 차에서 내려 30분 정도 시장을 둘러본 뒤 다시 버스에 올랐다.
같은 시간 탈레반은 카불과 칸다하르를 잇는 도로를 순찰하며 인질로 삼을 외국인을 물색하고 있었다.
지난 6월 미군에 체포된 탈레반 사령관 다로 칸을 빼내오기 위해 맞교환할 외국인이 절실하게 필요했던 터다.
이때 한국인들이 타고 가던 흰색 버스가 탈레반의 눈에 들어왔다.
25명가량의 탈레반은 즉각 오토바이를 몰아 버스 옆에 붙이고 AK-47 소총과 수류탄을 운전사의 머리에 들이댔다.
겁에 질린 운전사는 길 한가운데 차를 세웠다.
비극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탈레반이 왜 하필 한국인이 탑승한 버스를 선택했을까에 대해서는 뉴스위크와 마이니치신문의 설명이 엇갈렸다.
뉴스위크는 이리저리 순찰 중이던 탈레반이 '운좋게' 한국인 탑승 버스와 맞닥뜨리게 됐다고 전했다.
반면 마이니치신문은 주민들의 제보를 받고 탈레반이 길목을 지키고 있었다고 보도했다.
한국인 일행이 피랍 직전 들른 카라바그 지역은 탈레반이 사실상 지배하는 곳으로 주민 대부분이 탈레반 지지자라는 것.마이니치신문은 현지 경찰 간부의 말을 인용,"한국인을 본 주민이 탈레반에 연락을 했을 개연성이 매우 높다"고 전했다.
이번 인질극을 주도한 인물은 탈레반 부사령관인 물라 압둘라.납치범들은 무전기와 휴대폰으로 압둘라에게 상황을 보고한 뒤 버스를 인근 마을로 끌고 갔다.
한국인들은 차에서 내리자마자 5개 그룹으로 나눠져 카라바그와 인근의 안다르,가즈니시 근처 다흐야크 등에 분산 수용됐다.
어처구니없는 인질극의 첫날은 그렇게 흘러갔다.
탈레반은 한국인 인질을 억류한 뒤 즉각 아프간 정부에 한국인 인질 23명을 석방하는 조건으로 탈레반 구금자 115명의 교환을 요구했다.
1 대 5의 비율을 적용한 셈이다.
그러나 아프간 정부의 태도는 미온적이었다.
몇 번의 협상이 소득 없이 지나갔다.
아프간 정부는 탈레반 구금자 일부가 바그람에 주둔해 있는 미군 기지에 있으며 미국 정부가 이들의 석방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얘기만 반복했다.
결국 탈레반은 석방 대상 탈레반 구금자 수를 23명으로 줄였고 그래도 별 진전이 없자,8명만 추려 아프간 정부에 명단을 넘겼다.
석방협상 과정에서 몸값이 잘못 전달됐을 가능성도 제기됐다.
탈레반 고위 지휘관은 "우리는 몸값을 요구한 적이 없다"면서 "한국 특사와 아프간 정부가 인질을 억류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가짜 탈레반과 협상을 벌여 몸값을 건넸을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이와 함께 아프간 정부와 탈레반 간 협상에 중재자로 나섰던 부족 원로들이 한국인 피랍 사실을 전해들은 초기부터 여성 인질 억류에 강하게 반대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뉴스위크의 인터뷰에 응한 탈레반 고위 지휘관은 "여성 인질 억류에 반대하는 부족 원로들로부터 압력을 받고 있으며 관습과 전통에 의한 압박도 가해지고 있다"며 "여성 인질의 운명을 급하게 결정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 최소한 여성 인질들만큼은 당분간 무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이것은 내 의견일 뿐 최종적인 것은 아니다"라고 단서를 달았다.
그는 이어 "아프가니스탄 군·경이 미군의 지원을 받아 한국인 인질들이 억류돼 있는 안다르 지역으로 밀고 들어오는 바람에 탈레반이 인질 3명을 끌고 파키스탄 국경 지역인 팍티카주로 피신했다"며 "탈레반이 인질 억류 지역의 대부분을 장악하고 있기 때문에 어떤 군사작전을 펴더라도 실패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안재석 기자 yag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