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가니스탄 주재 카불 한국대사관과 탈레반의 직접 소통채널이 본격적인 가동에 들어갔다.

한국인들을 납치한 무장세력이 아프간 정부와의 협상을 포기,한국 대사관에 전화를 걸어온 데 따른 것이다.

특히 탈레반이 "한국 정부와의 협상을 원한다"며 다소 유연한 입장을 보이고 있어 일단 최악의 국면은 벗어난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조기에 성과를 만들어낼지는 미지수다.

정부 당국자는 2일 탈레반 측과의 대화에 대해 "협상이 아니라 접촉"이라고 표현했다.

정부의 한계와 고민이 고스란히 담긴 말이다.

◆대사관 통해 직접 대화

한국 대사관과 납치 세력 간에 뚫린 대화 채널이 피랍 한국인 21명의 안전을 힘겹게 지탱하고 있다.

한국인들을 억류하고 있는 가즈니주 지역 무장단체는 아프간 정부가 인질 살해를 부추기고 있다면서 한국 대사관에 한국 정부와 직접 대화하고 싶다는 의사를 피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프간 정부가 자신들의 요구를 거부함으로써 협상 통로를 닫아버리고 자신들이 극한 상황에 몰렸다는 것이다.

실제 아프간 정부 협상단 대표가 사퇴하는 등 내분이 감지되고 있는 게 이를 뒷받침한다.

한국 대사관은 탈레반 죄수 석방 대신에 다른 해결책을 찾아보자고 회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궁색한 대책…장기화 각오

납치 세력은 아직 인질·죄수 맞교환이라는 요구조건을 철회할 기미가 없다.

정부는 사태가 장기화될 각오를 하고 일단 인질들의 안전이 보장되는 조건 하에 납치 단체와 대화채널을 유지하기로 방침을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관건은 피랍자들의 건강과 안전이다.

가장 빠른 해결책은 아프간 정부가 납치세력의 요구조건을 들어주는 것이지만 이 카드는 아프간 대통령궁이 납치세력의 요구조건이 무엇인지를 공개해버린 순간 효력을 상실했다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아프간 정부가 복권을 노리는 탈레반의 요구를 공개적으로 수용함으로써 정권 기반을 위험에 빠뜨릴 수는 없다는 이유에서다.

미국 측의 협조를 기대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정부 당국자는 "이번 사태가 전적으로 미국에 달렸다고 보는 것은 사실도 아니고 사태 해결에도 아무 도움이 안 된다"고 말했다.

◆외형상 유연해진 탈레반

탈레반은 일단 대화 쪽에 무게를 싣는 분위기다.

한국과의 협상을 통해 임박한 것으로 보이는 군사작전을 피하겠다는 의도도 없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대변인을 자처하는 카리 유수프 아마디는 한국 정부와의 직접대화를 촉구하면서 "인질 16명의 건강이 좋지 않으며,이 가운데 여성 2명은 병세가 위중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아마디는 이어 "현재 한국인 인질은 가즈니주에 없고 자불,칸다하르,헬만드주 등 아프간 내 여러 주에 나뉘어져 있으며 자세한 위치는 공개하지 못하겠다"고 주장했다.

가즈니주에 분산 억류돼 있다는 그간의 분석을 뒤집은 것이다.

정지영 기자 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