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가니스탄 주재 카불 한국대사관과 탈레반의 직접 소통 채널이 본격적인 가동에 들어갔다.

한국인들을 납치한 무장세력이 아프간 정부와의 협상을 포기하고 한국 대사관에 전화를 걸어온 데 따른 것이다.

정부 당국자는 2일 “협상이 아니라 접촉”이라고 표현했다.

정부의 한계와 고민이 고스란히 담긴 말이다.

납치세력은 동료 석방에 집착하고 아프간 정부는 완강하게 버티고 있어 정부로선 뾰족한 해결책이 없는 상황이다.

'테러 행위에 보상하지 않는다'는 불문율과한국인 21명의 안전이라는 급박함이 충돌하는 대치점에 서 있는 정부의 고민은 깊어만 간다.

○대사관 통해 직접 대화

한국 대사관과 납치세력 간에 뚫린 대화 채널이 피랍 한국인 21명의 안전을 힘겹게 지탱하고 있다.

한국인들을 억류하고 있는 가즈니주 지역 무장단체는 아프간 정부가 인질 살해를 부추기고 있다면서 한국 대사관에 한국 정부와 직접 대화하고 싶다는 의사를 피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프간 정부가 자신들의 요구를 공개적으로 거부함으로써 협상 통로를 닫아버리고 자신들이 극한 상황에 몰렸다는 것이다.

한국 대사관은 탈레반 죄수 석방은 한국 정부의 역량 밖이라는 점을 설득하는 한편 다른 해결책을 찾아보자고
회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궁색한 대책…장기화 각오

납치세력은 아직 인질·죄수 맞교환이라는 요구 조건을 철회할 기미가 없다.

정부는 사태가 장기화될 각오를 하고 일단 인질들의 안전이 보장되는 조건 하에 납치단체와의 대화 채널을 유지하기로 방침을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피랍자들의 건강이 관건이다.

군사작전 카드에 대해선 “현재로서는 전혀 고려하고 있지 않다”고 정부 당국자는 강조했다.

가장 빠른 해결책은 아프간 정부가 납치세력의 요구조건을 들어주는 것이지만 이 카드는 아프간 대통령궁이 납치세력의 요구조건이 무엇인지를 공개해버린 순간 효력을 상실했다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아프간 정부가 복권을 노리는 탈레반의 요구를 공개적으로 수용함으로써 정권 기반을 위험에 빠뜨릴 수는
없다는 이유에서다.

청와대가 납치세력의 요구사항을 공식 인정한 데 대해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상존한다.

○미국에 협조요청 대놓고 못해

정부 당국자는 “이번 사태가 전적으로 미국에 달렸다고 보는 것은 사실도 아니고 사태 해결에도 아무 도움이 안 된다”고 말했다.

외교부는 한국인 인질사태와 관련,지금까지 한번도 미국에 공개적으로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다.

한국이 미국에 압박을 가할수록 미국이 나서기는 더 어렵다는 판단 때문이다.

미국은 2006년 1월 이라크에서 여기자 질 캐럴을 납치한 단체가 여성 수감자와의 맞교환을 요구하자 이
에 굴복하는 모양새를 내지 않기 위해 419명의 수감자를 한꺼번에 사면하고 82일 만에 여기자를 구했다.

테러리스트와 협상했다는 비난을 들었지만 미국은 끝까지“납치범들의 요구는 알지도 못하고 들어준 적도 없다”고 우겼다.

정지영 기자 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