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일 30도를 웃도는 찜통 더위,속세를 벗어난 산사라고 여름이 비껴갈 리는 없다.

마음공부를 하는 선방에서도 한여름엔 땀이 줄줄 흐르고,공부에 집중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어느 여름날 젊은 스님이 스승에게 물었다.

"스님,날씨가 너무나 덥습니다.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합니까?"

"더위와 추위가 없는 곳으로 가라."

"그런 곳이 어디 있습니까?"

"더울 때에는 네 자신이 더위가 되고 추울 때에는 네 자신이 추위가 돼라.그곳이 더위와 추위가 없는 곳이니라."

지난 3일 낮,충북 충주시 외곽의 산 속에 자리 잡은 석종사를 찾았을 때 이곳 선원장 혜국 스님(慧國·59)은 이 같은 선가의 일화를 들려주며 여름나기의 지혜를 선물했다.

나와 더위가 둘이 돼서 덥다,덥다 하면 더 덥지만 더위와 내가 하나가 되면 더 이상 덥지만은 않다는 것."자연이 그냥 덥나요? 더위 덕택에 곡식과 과실이 익으니 고마운 마음으로 더위에 합장하면 더위가 더 이상 밉거나 원망스럽지 않을 것"이라고 스님은 설명했다.

혜국 스님은 한국불교의 선 수행을 선도하고 있는 대표적인 선승이다.

젊은 시절 오른손 손가락 세 개를 태워 바치는 소지공양(燒指供養)으로 견성성불의 결연한 뜻을 다졌고,태백산 도솔암에서 2년7개월 동안 솔잎과 쌀로 생식을 하며 장좌불와(長坐不臥)하는 등 전국의 선방에서 수십 안거를 지냈다.

선방 스님들의 대표기구인 전국선원수좌회 공동대표도 맡고 있다.

제주도 남국선원,부산 홍제사에 이어 세 번째로 창건한 참선도량인 석종사에서 안거에 참여한 스님과 신자들을 지도하고 있는 혜국 스님을 만나 선의 세계와 삶의 지혜에 관해 들어봤다.

-아프가니스탄에서 탈레반이 한국인들을 인질로 잡고 있어 온 국민이 애를 태우고 있습니다.

"참 슬픈 일입니다.

무사히 돌아오기를 날마다 축원하고 있습니다만,자기만 옳고 남은 그르다는 생각이 가장 큰 문제예요.

이슬람은 원래 그렇지 않다고 하는데 근본주의자들이 저렇게 무장군인도 아닌 봉사자들을 인질로 붙잡고 있는 것은 종교를 떠나서라도 옳지 않은 일이지요."

-왜 이런 일이 일어난다고 보십니까.

"탈레반도 문제이지만 결국 모든 것은 나 자신으로 돌려서 봐야 합니다.

우리나라 안에는 그런(나만 옳다는) 생각이 없을까요? 우리나라 종교인구가 불교 개신교 천주교만 합쳐도 전체 인구의 절반을 넘습니다.

그렇다면 어딜가나 안정되고 화목해야 하는데 종교인들끼리 더 갈등하고 미워하는 소리가 난다면 정말 부끄러운 일이죠.우리부터 고쳐야 합니다.

모든 종교인들이 아집에서 벗어나는 참회와 기도의식을 거쳤으면 좋겠어요.

남과의 다름을 인정하지 않고 자기 것만 강요한다면 탈레반과 다름없지요."

-세상은 왜 편할 날 없이 어지러울까요.

"부처님 당시에 어떤 제자가 '세상이 너무 썩었으니 좀 바꿔 주십시오'라고 하자 부처님은 '이 세상은 썩은 적이 없이 항상 깨끗했다.

불안하고 썩은 것은 사람의 마음이니라'고 했습니다.

각자 자기한테 원인이 있음을 알고 스스로를 바꿔야 세상이 본래 자리로 돌아가게 됩니다.

사람이 사는 한 갈등이 있는 건 당연한 겁니다.

다만 사람이 다치지 않도록 갈등을 잘 활용하고 조정하는 지혜가 필요하지요.

절에서는 싸움이 나서 의견대립으로 인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땐 침묵의 시간을 줍니다.

서로 일체의 말을 끊고 상대가 왜 그랬을까 하고 그 입장에서 생각해 보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도 고집과 아집이 되면 옳은 자리를 잃어버립니다.

다만 옳다는 걸 보여줄 뿐 고집하지는 말아야지요."

-여름 휴가철을 맞아 많은 사람들이 산으로,바다로 떠나고 있습니다.

참된 휴식이란 어떤 것입니까.


"법문을 하러 나가다 보니 동해안으로 가는 길이 평소보다 몇 배는 붐비더군요.

차 안에서 온갖 스트레스를 겪고 짜증 내는 게 휴가인지 원….육신보다는 마음이 편안하게 안정되는 것이 참된 휴식입니다.

그러므로 휴가 갈 땐 내 몸만 쉬는 것인지,마음이 안정되는 휴가인지 목표를 잘 세워야지요.

대자연과 대화하고 하나 되어 오리라는 마음가짐이 필요합니다.

흙과 나무,냇물과 산,교회와 절,농촌 등 도시생활에 찌든 자신을 받아주는 대상들에 대한 고마움을 알아야 해요.

우리가 잠 잘 때 나무 한 그루,풀 한 포기는 잠도 자지 않고 산소를 만듭니다."

-남들이 누리는 휴식의 즐거움을 갖지 못하는 불행한 처지의 사람들도 적지 않습니다.

위로가 필요한 분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주십시오.

"아침에 해가 뜨면 저녁엔 지게 마련입니다.

모든 것은 돌고 도는 것,내가 오늘 절망하고 있으면 용기와 희망을 놓쳤으므로 영원한 절망에 그치고 맙니다.

그러나 희망과 용기를 놓치지 않으면 절반 이상은 성공을 위해 가고 있는 겁니다.

젊은 시절 영화 '빠삐용'을 보니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는 주인공이 '인생을 낭비한 죄가 가장 크다'는 말에 공감하는 장면이 나오더군요.

절망은 인생을 낭비하는 것입니다.

정말로 빛이 보이지 않을 땐 교회든 절이든 나와서 기도하는 시간이라도 갖는다면 반드시 일어설 수 있을 겁니다."

혜국 스님은 석종사 금봉선원에도 어려운 처지의 사람들이 여럿 와서 참선하고 있다고 했다.

금봉선원은 출가자(스님)와 재가자를 위한 선방이 따로 있는데,스님 30명과 재가불자 77명이 하안거에 참여하고 있다.

또 부산 홍제사와 제주도 남국선원에도 각각 70여명과 50여명의 재가 신자들이 참선 중이다.

-이렇게 더운 날에 많은 분들이 정진하는 걸 보니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참선을 하면 정말 지혜가 생깁니까.


"참선은 본질로 돌아가는 겁니다.

우리 몸이라는 그릇을 보면 생각이라는 물에 번뇌망상이라는 찌꺼기가 뒤섞여 있어요.

참선은 그 찌꺼기를 가라앉히는 데 그치지 않고 그릇마저 깨뜨리는 것입니다.

그러면 옳고 그름의 경계가 없어져서 비 오면 비가 와서 좋고 볕 나면 볕이 나서 좋습니다.

지혜란 그런 것입니다."

-올해는 대통령 선거가 있는 해입니다.

어떤 사람을 뽑아야 할까요.


"우선 정치와 종교는 엄격하게 분리해야 합니다.

나라를 이끌 능력을 보고 찍어야지 후보자의 종교를 봐서 대통령을 뽑아선 안 될 것입니다.

후보자들 또한 표를 의식해 종교를 이용해선 안 될 것이며 누가 되든 대통령 또한 임기 중에는 종교에 연연하지 말아야 합니다.

대통령은 국내에서는 현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서 총리와 장관 등 인재등용을 잘 해야 하고,대외적으로는 폭넓은 안목을 갖춘 분이면 좋겠습니다.

특히 교육과 경제를 살리는 일이 중요합니다."

한담(閑談)을 접으면서 행복을 위한 지혜의 말씀을 청하자 혜국 스님은 "행복하게만 살려고 하는 그 생각을 놓기 전에는 행복할 수 없다"고 했다.

밤과 낮,남과 여가 반반이듯이 행복과 불행은 섞여서 오게 마련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행복이 와도 웬만해선 성에 차지 않고 불행을 실제보다 크게 여기고 있으니 행(幸)과 불행을 보는 안목부터 바꾸라는 얘기다.

여름 감기로 연신 기침을 해대는 기자에게 던지는 선사의 말씀이 보약이다.

"병을 고마운 벗으로 삼으세요.

왜 나만 아프냐고 원망하지 말고 더 큰 병이 걸리기 전에 몸 조심하라는 신호로 여기면 더 빨리 낫습니다.

기왕 찾아온 손님이니 감기 바이러스한테 푹 쉬었다 가라고 하세요."

충주=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

◆ 약력

△1948년 제주도 출생
△1961년 해인사로 출가(은사 일타 스님)
△1970년 성불을 다짐하며 소지공양 이후 태백산 도솔암에서 2년7개월 간 장좌불와
△1973~1994년 해인사 송광사 봉암사 등 전국 선원에서 수십 차례 안거 참여.경봉·성철·구산 스님 등 문하에서 수행정진
△1994년 제주 남국선원 개원
△1997년 부산 홍제사 창건
△2004년 충주 석종사 창건
△현재 남국선원장,석종사 금봉선원장,전국선원수좌회 공동대표
△저서 '인연법과 마음공부''천수경 천수신앙'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