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기술(IT)분야 대기업 홍보실장인 A씨는 모르는 이에게 걸려온 전화는 받지 않는다.

돈 달라고 조르는 '사이비 인터넷 미디어'의 전화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A씨는 연초부터 '연간 광고계약을 맺자'고 졸라대는 '사이비 미디어'에 시달리고 있다.

요구를 거절했다가 근거 없는 비판 기사로 얻어맞기도 했다.

중소기업 홍보팀장 B씨는 결국 백기를 들었다.

신생 웹진(인터넷 매거진)의 성화를 견디다 못해 1억원이 넘는 연간 광고계약을 맺었다.

기껏 100억원대 매출을 올리는 이 기업으로서는 감당하기 힘든 거액이다.

웬만하면 버티려 했는데 불쑥불쑥 사장실로 들이닥치고 주차장에서 차를 가로막는 통에 손을 들고 말았다.

엔터테인먼트 기업 홍보팀장인 C씨는 인터뷰 초청 미디어를 선정할 때마다 골치를 썩힌다.

인터넷 포털에 기사를 공급하는 미디어 위주로 초청대상을 선정하는데 말썽이 생기기 일쑤다.

초청받지 못한 '인터넷 사업자'(C씨는 이렇게 지칭했다)들이 "무슨 기준으로 우리를 뺐느냐"고 따지는 통에 시달림을 각오해야 한다.

요즘 기업 홍보 담당자들을 만나면 이런 하소연을 많이 한다.

자발적으로 입을 열진 않지만 몇 가지 사례를 들면서 "당신네 회사는 괜찮냐"고 물으면 "왜 괜찮겠냐","그 얘기 시작하면 밥 맛 떨어지는데…"라는 식으로 입을 뗀다.

인터넷 미디어는 최근 수년 새 급속히 활성화됐다.

한국은 인터넷 보급률에서 세계 최고 수준이다.

젊은이들은 실시간으로 뉴스를 올리는 인터넷 미디어에 친숙해져 있다.

정부도 인터넷 미디어에 관대한 편이다.

청와대에서는 인터넷 미디어만 따로 초청하기도 한다.

인터넷 미디어의 긍정적 측면은 충분히 알려졌다.

그러나 '사이비' 미디어의 폐해에 대해선 알려진 게 많지 않다.

피해자들이 보복이 두려워 입을 열지 않기 때문이다.

문제는 기업의 부담이 감당하기 힘들 만큼 커지고 누구든 피해를 당할 수 있다는 점이다.

기업 홍보 담당자들은 주요 인터넷 포털에 뉴스를 공급하느냐 여부로 '인터넷 미디어'와 '사이비 인터넷 미디어'를 구분한다.

그러다 보니 신생 미디어는 초기에는 포털을 뚫기 위해 총력을 쏟는다.

온갖 '힘'을 동원해 포털 측에 압력을 가한다.

네이버의 경우 뉴스를 올려달라고 조르는 신생 미디어가 70개가 넘는다.

일단 포털을 뚫고 나면 '돈줄'인 기업의 팔을 비틀기 시작한다.

연간 단위로 광고계약을 맺자고 조르는 것이 일례다.

특정 기업 상품에 관한 '긍정적 기사'를 정기적으로 써줄 테니 수천만원을 내라고 요구하기도 한다.

요청을 거부하면 보복을 당한다.

요즘 IT분야 기자들 사이에선 "기자 그만두면 웹진 만들겠다"란 말이 우스갯소리로 통한다.

"전관예우해주지 않으면 혼내주겠다"고 덧붙이면 홍보 담당자들은 기겁을 한다.

실제로 어느 업종에서는 '구악'으로 알려진 모 기자가 회사를 그만두고 웹진 창간을 준비 중이라고 알려지면서 홍보 담당자들이 긴장하고 있다.

인터넷 미디어가 나쁘다는 얘기는 결코 아니다.

경쟁력을 갖추지 못한 일부 미디어가 사회에 해악을 끼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려는 것이다.

기자가 사장,편집국장까지 겸하는 '사이비 미디어'가 활개치는 사회는 바람직하지 않다.

각 대선후보 진영에서는 여러 정책을 검토하고 있을 줄 안다.

이 문제도 포함시켜주길 바란다.

김광현 IT부장 kh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