洪起澤 < 중앙대 정경대학장·경제학 >

지난 주 윤증현 금융감독위원장이 임기 3년을 마치고 퇴임했다.

1998년 금감위 출범 이후 최초로 임기를 다 채운 위원장이라고 한다.

윤 위원장은 퇴임에 즈음해 지난 3년을 반근착절(盤根錯節)이라고 회고했다.

금융 관련 현안들이 아주 복잡하게 얽혀 있어 이를 정리하는 게 매우 힘들었다는 뜻이다.

오랜 시간 끌어 온 생보사 상장문제,자본시장통합법 제정 등을 성공적으로 처리한 것은 대단한 일이다.

그러나 우리 금융 산업의 본질적인 문제인 금산(金産) 분리 해결에 아무런 진척을 보지 못한 점이 가장 아쉽다고 했다.

금산 분리로 국내 산업자본의 활용이 불가능해 외환위기 이후 많은 국내 은행이 외국자본으로 넘어갔다.

우리 스스로 대못을 박은 것이라며 안타까움을 표했다.

현재 쟁점이 되고 있는 론스타의 외환은행 '먹튀'(먹고 튀는) 논란도 부분적으로는 금산분리의 산물이다.

우리는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힘든 강력한 금융과 산업(비금융 기업)의 분리정책을 고수하고 있다.

현재 금산분리 정책을 유지하고 있는 국가는 미국,캐나다,이탈리아,호주 등 일부 국가에 지나지 않는다.

그나마 이들 국가도 금산분리가 아니라 은산(銀産)분리 정책을 채택하고 있다.

은행(상업은행)과 산업만을 분리하고 있지,우리처럼 모든 금융기관과 산업 사이에 제한을 가하지는 않는 것이다.

이들 국가가 은산분리를 채택하고 있는 이유는 자금 배분의 왜곡 우려 때문이다.

은행은 대부분의 자금을 예금을 통해 조달하고 있다.

그런데 예금은 예금자보호법에 따라 상환이 보장돼 있으므로,예금자의 은행 경영에 대한 감시기능은 미흡하다.

이런 상황에서 은행이 부실화되면 국민의 세금으로 예금을 보전해 주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가 비은행 금융기관까지 분리대상에 포함시킨 이유는 재벌에 의한 불공정한 경제력 집중을 방지하기 위해서이다.

지난번 논란 끝에 개정된 금융산업구조개선법(금산법) 24조의 취지도 재벌기업이 계열 금융기관의 고객예탁금으로 산업체를 인수해 자신의 영역을 확장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이다.

그런데 금산법에서는 금융기관의 범위에 은행,증권,보험은 물론 심지어는 신용카드사와 같은 여신(與信) 전문회사까지 포함하고 있다.

여신 전문기관은 말 그대로 여신 전문이기 때문에 수신(受信)이 없다.

따라서 자금조달은 다른 일반기업과 마찬가지로 회사채 발행이나,금융기관으로부터의 차입에 의존해야 한다.

따라서 금산분리의 대상으로 삼을 이유가 없다.

그래도 막무가내로 금산분리대상에 포함시켰다.

논리와 원칙보다는 재벌규제라는 국민정서법에 기초해 법이 개정된 것이다.

지난 3년간 금산분리에 관한 한,얽힌 것을 푼 것이 아니라 더 얽히게 만들어 놓은 셈이다.

금융과 산업의 분리는 금융지주회사법에도 나타나 있다.

금융지주회사는 원칙적으로 비금융기업을 소유할 수 없다.

한편 어떤 회사의 금융회사주식 소유액이 총자산의 50% 이상인 경우는 금융지주회사로 신고해야 하며 산업 투자분은 처분해야 한다.

삼성에버랜드가 소유한 삼성생명 주식의 가치상승으로 겪는 고초(苦楚)는 여기서 기인한다.

우리 제도를 적용하면 GE도 GE캐피탈 부문의 시장가치가 높아지면 산업부문을 매각해야 한다.

한편 증권,보험회사 등 비은행 금융기관의 고객은 자신의 투자자산에 대한 안전성과 수익성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따라서 자신의 투자자산이 다른 목적으로 사용될 때는 자금이탈 등을 통한 시장에서의 견제가 가능하다.

1997년 말 외환위기 이후 금융감독 제도의 강화로 계열회사에 대한 자금 공여(供與)가 엄격히 제한돼 있다.

또한 대기업들은 투자할 곳을 찾지 못해 수십조원의 잉여(剩餘) 자금을 쌓아 놓고 있는 실정이다.

한편 일부 기업은 회사 자체의 신용으로 금융기관보다 저렴한 비용으로 자금조달이 가능하다.

금산분리 완화는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볼 수도 없으며,가시적인 정책 효과도 없이 부작용만을 초래하는 비은행 금융기관의 산업체 소유 제한을 철폐하는 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