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마다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궁리하느라 초비상입니다."

6일 서울 종로구 법무법인 바른의 강북사무소에서 만난 홍일표 전 사법연수원장(2003년 3월~2004년 1월)은 인터뷰 서두부터 로스쿨(법학전문대학원)에 대한 걱정거리를 쏟아냈다.

행정법원장(2001년 2월~2002년 1월)과 특허법원장(2002년 2월~2003년 2월)까지 역임한 홍 전 원장은 로스쿨을 유치하기 위해 전국의 법과대학들이 앞다퉈 스카우트에 열을 올리는 실무 경력 교수 중 최고위직 출신.2005학년도 2학기부터 건국대에서 민사소송법 등을 가르쳐 온 그는 최근 로스쿨 법제가 마련되면서 구체적인 교수법 개발에 힘을 쏟고 있다. 사법연수원에서는 사법고시 합격생들에게 실무를 가르쳤고 미국의 하버드 로스쿨에서 공부했으며 예일대에서 방문 교수로 연구한 경험이 있는 등 누가 봐도 '준비된' 로스쿨 예비 교수인데도 "가르치는 게 겁난다"며 고개를 흔든다.

1년6개월만 지나면 법과대학이 로스쿨로 '명패'가 바뀌는 만큼 로스쿨에 걸맞은 교수법을 개발해야 하는데 시간이 너무 촉박해서다.

"강의 노트도 원점에서 새로 준비해야 한다"는 게 그의 솔직한 고백.안식년을 맞은 어떤 교수는 강의 계획을 구상하느라 쉬는 것을 사실상 포기했으며 방학 중인데도 건국대 법대에서는 거의 매주 교수단 회의가 열리고 있다고 한다.

홍 전 원장의 28년 전 유학 시절 얘기다.

하버드 로스쿨에서 학생들이 참여하는 모의 재판(Moot Court) 최종 경선이 열렸는데 당시 워런 버거 미국 연방대법원장이 심판장으로 참석,그의 눈을 의심케 했다.

더욱 놀라운 것은 로버트 클라크라는 교수의 회사법 강의에 큰 감동을 받았는데 학기가 끝난 뒤 다른 학생들의 평가는 냉정하더라는 것.하버드 로스쿨 교수진의 수준을 보여주는 한 단면이다.

12월 시험을 앞두고는 공부가 너무 힘들어 중퇴를 고민하는 학생들도 기숙사에서 적지 않게 목격했단다.

홍 전 원장은 "대학마다 건물도 새로 짓고 실무 교수들을 영입하느라 분주한데 준비가 잘 됐으면 좋겠다"고 우회적으로 우려를 표했다.

법학을 전공한 학생들과 다른 학과 출신 학생들을 한 강의실에서 가르쳐야 하는 것은 당장 그에게 닥칠 현실적인 문제다.

로스쿨법은 비법학 전공자들의 비율을 입학 정원의 3분의 1 이상으로 해야 한다고 규정했다.

이는 극단적으로는 로스쿨 학생의 3분의 2까지만 법학 전공자들로 메워질 수 있다는 얘기다.

"4년 동안 법을 전공한 학생들과 처음 법을 접하는 학생들을 한데 놓고 어떻게 가르쳐야 합니까.로스쿨 3년 뒤에 이들을 똑같이 줄세워 놓고 시험을 치르라는 것도 말이 안 됩니다."

그래서 변호사가 되려는 비법대생과 법대생들이 1년간 함께 교육받는 영국의 법학원(Inns of Court)을 연구해 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 그의 제안.그렇지만 판·검사와 변호사를 지낸 실무 경력자들이 전통적인 학자들과 교류하게 된 것은 로스쿨의 가장 긍정적인 측면이라고 홍 전 원장은 평가했다.

글=김병일 기자 kbi@hankyung.com

사진=김정욱 기자 hab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