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17.8년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영화 '베사메무쵸'(2001년)의 주인공 영희와 철수는 결혼 10년차 부부.반지하 단칸방에서 시작,세상 떠난 형의 아이까지 자식 넷을 키우며 죽자고 노력한 끝에 18평 아파트를 장만한다.
하늘이 보인다는 사실에 온 식구가 마냥 행복해할 즈음 증권사 직원이던 남편 철수가 작전을 거부하다 잘린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보증섰던 친구가 파산,한 달 안에 1억원을 갚지 못하면 아파트에서 쫓겨나 다시 지하방으로 가야 할 처지에 놓인다.
어떻게든 돈을 마련하기 위해 강직하던 철수는 후배에게 작전종목을 알려달라 사정하지만 외면당한다. 다른 수가 없자 영희는 1억원에 선배의 잠자리 요구를 받아들인다.
영희에게 이 집은 이렇게 해서라도 지키고 싶은 보금자리다.
여섯 식구가 살기엔 턱 없이 좁지만 그래도 아이들이 주인집 눈치 안보고 마음대로 드나들면서 웃고 떠들 수 있는 '내 집'이기 때문이다.
영희에게만 그러랴.이땅 중장년 부부 상당수는 셋방을 얻기 위해 첫째 둘째는 골목 어귀에 두고 막내만 데리고 주인집에 들어갔던 시절을 겪었다.
오죽하면 '배 고픈 설움 다음이 집 없는 설움'이라고 했을까.
영화는 최악의 상황을 가정한 것이고 대부분은 일단 집을 사면 한숨 돌리게 된다.
영희네의 경우 결혼 10년 만에 18평짜리를 샀으니 10년 뒤쯤엔 30평대로 늘릴 수 있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서울 아파트값에 관한한 2001년만 해도 옛날이다.
서울에서 110㎡(33평)짜리 아파트를 사자면 '봉급을 한 푼도 안쓰고' 17.8년동안 모아야 한다는 분석이 나왔다.
봉급 절반을 저축해도 35년은 걸린다는 얘기다.
도시 근로자가구가 서울에서 25평 아파트를 마련하려면 23.2년,33평형은 30년 걸린다던 재작년의 한 조사결과보다 더 길어진 셈이다.
스물여덟에 취업하고 결혼해서 맞벌이를 한다고 쳐도 누가 도와주지 않는 한 50세 전에 30평대 집 장만이 어렵다는 계산이다.
게다가 퇴직연령은 자꾸 빨라져 평균 53세라는 마당이다.
이러니 집 얘기만 나오면 너나할 것 없이 마음이 무겁다. 세계 최저 출산율도 이런 사정과 무관하지 않을 게 틀림없다.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
하늘이 보인다는 사실에 온 식구가 마냥 행복해할 즈음 증권사 직원이던 남편 철수가 작전을 거부하다 잘린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보증섰던 친구가 파산,한 달 안에 1억원을 갚지 못하면 아파트에서 쫓겨나 다시 지하방으로 가야 할 처지에 놓인다.
어떻게든 돈을 마련하기 위해 강직하던 철수는 후배에게 작전종목을 알려달라 사정하지만 외면당한다. 다른 수가 없자 영희는 1억원에 선배의 잠자리 요구를 받아들인다.
영희에게 이 집은 이렇게 해서라도 지키고 싶은 보금자리다.
여섯 식구가 살기엔 턱 없이 좁지만 그래도 아이들이 주인집 눈치 안보고 마음대로 드나들면서 웃고 떠들 수 있는 '내 집'이기 때문이다.
영희에게만 그러랴.이땅 중장년 부부 상당수는 셋방을 얻기 위해 첫째 둘째는 골목 어귀에 두고 막내만 데리고 주인집에 들어갔던 시절을 겪었다.
오죽하면 '배 고픈 설움 다음이 집 없는 설움'이라고 했을까.
영화는 최악의 상황을 가정한 것이고 대부분은 일단 집을 사면 한숨 돌리게 된다.
영희네의 경우 결혼 10년 만에 18평짜리를 샀으니 10년 뒤쯤엔 30평대로 늘릴 수 있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서울 아파트값에 관한한 2001년만 해도 옛날이다.
서울에서 110㎡(33평)짜리 아파트를 사자면 '봉급을 한 푼도 안쓰고' 17.8년동안 모아야 한다는 분석이 나왔다.
봉급 절반을 저축해도 35년은 걸린다는 얘기다.
도시 근로자가구가 서울에서 25평 아파트를 마련하려면 23.2년,33평형은 30년 걸린다던 재작년의 한 조사결과보다 더 길어진 셈이다.
스물여덟에 취업하고 결혼해서 맞벌이를 한다고 쳐도 누가 도와주지 않는 한 50세 전에 30평대 집 장만이 어렵다는 계산이다.
게다가 퇴직연령은 자꾸 빨라져 평균 53세라는 마당이다.
이러니 집 얘기만 나오면 너나할 것 없이 마음이 무겁다. 세계 최저 출산율도 이런 사정과 무관하지 않을 게 틀림없다.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