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비엔날레 감독을 맡았던 신정아 전 동국대 교수, 유명 인테리어 디자이너 이창하씨, 공연계의 '큰손' 김옥랑 동숭아트센터 대표 등 허위 학력으로 물의를 빚은 인사들은 모두 문화예술계 출신이다.

이처럼 문화예술계에 유독 허위 학력자들이 집중된 이유는 무엇일까.

공연예술계 관계자들은 이들이 전통적으로 현장 경험과 실적을 중시하는 예술계의 허점을 파고들었다고 지적한다.

예술분야는 교수 임용시 현장에서의 업적과 능력이 두드러지는 사람을 우선적으로 임용한다.

물론 거장급 예술인이 아닌 경우 임용시 기본적으로 석사 이상의 학위는 필수이고, 같은 조건이라면 외국 유명 대학의 학위를 갖고 있는 것이 경쟁자를 물리치는데 유리하다.

이런 까닭에 현장에서 충분한 경험을 쌓았지만 탄탄한 학력이 뒷받침되지 않을 경우 학력을 부풀리고, 위조하려는 유혹에 쉽사리 빠질 수 있다는 것이다.

큐레이터로서 능력을 인정받은 신정아씨가 미국 예일대 박사 학위를 받았다고 속여 대학 교수로 임용되고, TV 프로그램을 통해 유명세를 얻은 인터리어 디자이너 이창하씨 역시 미국 대학에서 학위를 땄음을 내세워 대학 강단에 서고, 막대한 재력을 앞세워 순수 예술을 후원하던 김옥랑씨가 '졸업장 공장'(diploma mill)로 알려진 퍼시픽 웨스턴대 학사학위를 토대로 국내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딴 뒤 대학 교수가 된 것은 모두 이런 맥락이다.

공연계의 한 유력 인사는 "국내 예술가의 경우 궁극적인 목표가 결국 생계가 확실히 보장되는 대학 교수인 경우가 많다.

때문에 학위에 집착하게 된다"면서 "현장 경험은 많은데 학력이 받쳐주지 않는 사람은 결국 (위조의) 유혹을 받게 되는 게 아니냐"고 씁쓸해했다.

현행 예술 관련 학과의 교수 채용 시스템도 문제점으로 꼽았다.

그는 "예술 대학의 교수 채용은 현장에서 얼마나 창조적인 실적과 업적을 냈느냐로 이뤄져야 하는데, 이를 평가하는 시스템이 없다"면서 "따라서 다른 대학과 마찬가지로 학위라는 규격화된 자격증에 매달릴 수 밖에 없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예술인들도 결국 '레테르' 중심 사회의 일원이다 보니 학력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덧붙였다.

공연단체 회장으로 있으면서 대학강단에도 서고있는 한 관계자는 "유명 예술가들 중에 무명 시절 학력을 속였다가 이름을 얻고 난 뒤 들통난 경우가 꽤 있다"면서 "콤플렉스에서 그랬다면 애교로 봐줄 수도 있겠지만 허위학력으로 교수까지 됐다면 윤리적으로 문제가 아닐 수 없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교수 임용시 철저한 학력 검증 시스템이 가동되지 않는 것도 문제"라면서 "러시아나 동구권 같은 경우엔 학위를 따왔다면서 러시아어를 한 마디도 못하는 사람도 있는 실정"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사실상 예술계는 이론 분야를 제외하면 학력보다는 현장 경험과 실력이 중시되는 분위기"라면서 "예술계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교수 임용 시스템을 점검하고 현실에 맞게 개선하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연극협회 한 관계자는 "이 모든 것이 학벌 위주의 사회에서 실력 위주의 사회로 가는 과도기적 현상이 아니겠냐"고 진단했다.

그는 "특히 예술계의 경우 죽은 지식을 가르치는 사람보다는 현장 위주의 생생한 교육을 할 수 있는 사람이 교수가 돼야 한다"면서 "각 분야 최고의 실력을 갖고 있는 사람도 학위가 없다는 이유만으로 교수에서 탈락하는 사례를 종종 목격하면 화가 난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현윤경 기자 ykhyun14@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