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을 대표하는 리더 자리를 놓고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과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벌이는 선의의 경쟁이 언론의 주목을 받고 있다. 두 사람이야 의식하지 않을지 모르지만 외교적 행보와 경제 이슈 선점에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뉴스를 타고 있다.

사르코지 대통령이 선수를 쳤다. 그는 5월16일 대통령 취임식을 끝내자마자 바로 독일로 날아가 메르켈 총리와 정상회담을 가졌다. 트레이드 마크가 된 '빠른 행동'으로 새 리더십을 부각시킨 것. 두 사람은 좌초됐던 유럽 헌법을 되살리기로 합의했다. 당시 유럽연합(EU) 순번국 의장이었던 메르켈의 외교적 노력에 사르코지가 힘을 보탠 결과였다. 두 정상의 공조는 한 달여 후인 6월23일 '개정 조약'이라는 이름의 미니 조약으로 열매를 맺었다. 유럽 정치통합의 씨앗을 뿌린 셈이다.

순조로울 것 같았던 사르코지-메르켈 관계는 사르코지가 유로화 강세에 강한 거부감을 표시하면서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사르코지는 유로당 1.38달러까지 치솟았던 유로화 강세가 유럽 경제를 해칠 것이라며 유럽중앙은행(ECB)이 외환시장에 적극 개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CB의 독립성을 해칠 수 있는 발언이었다. ECB 본부는 독일 경제중심지 프랑크푸르트에 있다. 사르코지가 독일 심장부를 겨냥한 것이다.

메르켈이 즉각 반발했다. 메르켈은 유로화 강세가 유럽 경제에 큰 문제가 안 된다며 ECB의 독립성을 회원국들이 존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르코지에 직격탄을 날린 것이다. 설전의 수위가 높아지자 언론은 유럽의 간판 정치인 자리를 놓고 다투는 힘겨루기 같다고 표현했다.

두 사람이 '미니 헌법'을 탄생시키는 데 손발을 맞췄지만 속내까지 교감한 것도 아니었다. 사르코지는 헌법 조항 중 '자유롭고 제한받지 않는 경쟁조항' 삭제를 요구,확고한 개방경제를 지향하는 메르켈과 고든 브라운 영국 총리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사르코지와 메르켈의 갈등은 에어버스를 만드는 유럽항공방위우주(EADS)의 경영 주도권을 놓고 비등점까지 끌어올랐다. EADS는 프랑스 정부와 프랑스 기업 라가데르가 22.5%,독일 측에선 다임러 자동차와 일부 은행이 22.5%의 지분을 갖고 있는 프랑스·독일 연합회사다. 경영도 공동으로 이뤄진다. 에어버스380 출시가 늦어지면서 경영이 어려워지자 양국 정부는 서로를 손가락질했다. 급기야 두 정상은 지난달 16일 에어버스 공장이 있는 프랑스 남부 툴루즈에서 담판을 벌였다. EADS의 독일 측 공동 최고경영자(CEO)인 톰 엔더스는 에어버스의 CEO를 맡고 프랑스 측 공동 CEO인 루이 갈루아가 EADS의 단일 CEO를 맡는 방향으로 정리됐다.

어렵게 갈등을 봉합했지만 전문가들은 유럽의 2대 경제강국인 독일과 프랑스가 다툴 경우 EU 자체가 제대로 작동되지 못할 수 있다며 두 정상의 리더십 경쟁에 주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