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의 단기적 충격이 있을 것이다.복지혜택이 줄고 임금이 오르지 않으면 소비가 둔화될 수 있다.독일 슈뢰더 정부가 경제사회개혁 프로그램에 시동을 건 2004년이 그랬다.국민 대다수가 개혁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동참해야 한다."

(랄프 솔빈 코메르츠방크 경제 및 상품조사 담당)

프랑크푸르트에서 만난 솔빈 박사는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의 리더십으로 개혁에 시동을 건 프랑스의 경제전망을 묻자 단기적 충격을 감내하는 게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사르코지 대통령이 추진하려는 대중교통 노조의 파업 제한과 공무원 감축 등의 개혁 조치에 대한 당사자들의 인내와 동참이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앞길은 그리 순탄치 않아 보인다. 노조는 휴가철이 끝나면 거리로 나서겠다고 위협하고 있다. 빈번했던 파업이 사르코지가 5월16일 취임한 후 사라져 '허니문'을 실감케 했지만 100일이 채 되지 않아 또다시 흔한 풍경으로 되살아날 조짐이다. 개혁의 앞날이 그만큼 험난하다는 뜻이다.

사실 유럽경제가 살아났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유로화를 쓰는 13개국 기준 실업률이 지난 6월 6.9%로 낮아졌음에도 여전히 미국보다 높다. 개별 국가만을 놓고 보면 개선 조짐이 확실하다. 독일 실업자는 지난 5월 385만명에서 6월에 382만명으로 줄었다. 작년 월평균 실업자 448만명에 비하면 상당한 개선이다. 실업률도 12년 만의 최저수준으로 떨어졌다. 요즘 독일 자동차 회사들은 양질의 노동력을 구하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 하지만 미국보다는 고용사정이 좋지 않다.

노동력 활용도 미국보다 낮다. 노동생산성도 미국의 절반 수준이다. 1995년 이후 10년간 유럽의 노동생산성은 연간 1.2% 향상되는 데 그쳤다. 같은 기간 중 미국은 연평균 2.5% 높아졌다. 1980년대만 해도 정반대였다. 미국이 1990년대 후반 들어 놀라운 속도로 정보기술(IT)을 산업에 활용한 반면 유럽은 더디게 적용,생산성 역전이 일어난 것이다. 개혁의 발걸음도 더뎠고 국내총생산(GDP)의 70%를 차지하는 서비스업의 자유화 역시 미국에 비하면 게걸음이었다. 2000년 유럽연합(EU) 회원국 정상들이 포르투갈 리스본에 모여 2010년을 목표로 세계에서 가장 경쟁력 있는 국가로 바꾸겠다며 10가지 실행계획에 합의(리스본 전략)했지만 진척은 기대만큼 빠르지 않았다. 올해 성장률이 10년 만에 미국을 앞지르지만 내년에 바로 뒤집힐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개혁의 전도를 진단하는 외부의 시각도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노동시장을 둘러싸고 있는 각질이 워낙 두껍기 때문이다. 프랑크푸르트에 있는 현대자동차 유럽법인의 인사담당자인 더크 무링거는 "아프면 의사의 처방없이도 전화 한 통만으로 사흘간 쉴 수 있다"며 "이를 악용하는 못된 직원이 있어도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직원 해고도 미국이나 스칸디나비아 3국에 비하면 정말 까다롭다"고 덧붙였다.

장클로드 트리셰 유럽중앙은행(ECB) 총재는 "독일이나 프랑스가 지속성장을 위해서는 개혁의 기치로 내건 노동시장 유연화 조치를 국민들의 동의 아래 꾸준하게 실행할 수 있는 실천능력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특히 다른 선진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서비스업의 자유화도 획기적으로 높여 상품시장과 똑 같은 수준으로 교역이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프랑스 등이 불만을 제기하고 있는 유로화 강세도 구조적인 이슈에 비하면 지나가는 바람이다. 유로화는 사상 최고 수준인 유로당 1.38달러 언저리를 맴돌고 있지만 유럽 역내 교역이 많은데다 중국 인도 동유럽 등의 수입 수요가 폭발, 유럽 주요국의 수출에 별다른 충격을 주지 못하고 있다. ECB 기준금리도 연 4.0%로 2005년 말의 배 수준으로 올라 소비 위축 우려가 제기되고는 있지만 구조조정 과제의 무게에 비할 게 못 된다.

이선인 KOTRA 구주지역본부장은 "미국의 경기부진 같은 외생변수에 흔들리지 않기 위해서도 유럽의 경제대국인 독일과 프랑스가 실용적이고 성장 중심적인 리더십을 지속적으로 발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금이 바로 성장동력의 기어를 높일 때다. 유럽의 경제개혁은 상황이 어려울 때 타개책으로 시작된 경우가 많았다. 영국이 1979년에 그랬고 네덜란드는 1982년,아일랜드는 1987년,덴마크 핀란드 스웨덴은 1990년대 초반 개혁의 시동을 걸었다. 이코노미스트지는 그러나 "힘겨울 때 시작한 개혁의 고통은 상상하기 어렵다"며 "독일과 프랑스는 경기호전의 햇빛이 비치는 지금 구조개혁의 고삐를 더 죄야 한다"고 지적했다.

런던·파리·프랑크푸르트=고광철 국제부장 gw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