南成旭 < 고려대 북한학과 >

참여정부 최후의 정책은 2차 정상회담으로 종결될 것 같다. 권력의 최고지도자만이 추진할 수 있는 고도의 통치행위인 정상회담은 한여름 정국의 뜨거운 감자로 부상했다. 최고권력자가 자신의 임기 중에 정상회담을 실기하지 않으려는 노력은 당연지사다. 전임자는 정상회담으로 노벨상도 받았으니 노무현 대통령 역시 임기 말 치적으로 놓치기 싫을 것이다.

이제 남은 임기 동안 이만한 메가톤급 정책 소재를 찾기는 어려울 것이다. 2차 정상회담은 학습효과로 인해 1차와 같은 '북한'이나 '김정일'신드롬은 없겠지만 그래도 남북관계 및 국내 정치에 미치는 효과는 대형재료임에 틀림없다.

이제는 1차와 달리 정상회담이 분단의 모든 문제를 푸는 만병통치약이 아니라는 경험이 축적된 만큼 차분하게 대응해야 한다. 정상회담이 난관을 해결하는 도깨비 방망이가 아니라는 것은 북한의 미사일과 핵실험으로 경험한 바 있다. 우선 북한의 입장부터 분석하자.

북측이 발표한 정상회담 합의문은 "북남관계를 보다 높은 단계로 확대 발전시켜 조선반도의 평화와 민족공동의 번영,조국통일의 새로운 국면을 열어 나가는 것"이라고 이번 회담의 의의를 정리했다. 그러나 북한이 정상회담에 전격 합의한 배경엔 2·13합의와 그 이행을 통해 최근 호전되고 있는 북·미관계가 큰 고려 요소였을 것으로 보인다. 또한 참여정부 초기부터 계속돼온 남북정상회담 제의에 미지근한 태도를 보여온 북한이 이번에 적극적인 호응으로 태도를 바꾼 데는 남측의 경제적·정치적 지원이 절실하기 때문이다. 경제난을 구조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대규모적인 사회간접자본 지원이 불가피하고 이를 담당할 자본은 한국경제 이외에는 적임자가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미 2000년 3월 베를린 정상회담에서 항만,철도,전력 등 사회간접 인프라 개발지원을 약속한 바가 있기 때문에 북한의 기대는 적지 않을 것이다. 정치적 지원은 6자회담 비핵화 프로세스에서 한국의 지지와 연계되어 있다. 평양으로서는 한·미·일 공조를 이탈해 서울이 자신들과 코드를 맞추는 것이 워싱턴을 압박하는 데 필수적이라고 판단을 한 것이다.

다음으로는 북한의 반한나라당 입장이다. 북한은 올해 공동사설에서 "남조선의 각계각층 인민들은 반보수 대연합을 실현해 대통령 선거를 계기로 친미보수 세력을 매장해 버리기 위한 투쟁을 더욱 힘있게 벌여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이 정상회담을 결심한 것은 상대적으로 진보성을 갖고 민족문제에 관심이 큰 현 정권 지도부를 지원함으로써 지지율 10% 미만의 여권후보를 밀어주려는 의도로 관측된다. 8월을 넘기지 않으려는 남북 양측의 의지는 8월이 한국의 민족주의(nationalism)가 최고조에 달하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시베리아에서 찬바람이 불어오면 정서적으로 남북관계는 동면상태로 전환되는 습관이 있다. 오히려 대선정국에서 먹기 살기 힘든 세상에 웬 정상회담이냐는 역풍이 불기도 한다.

다음은 의제 분석이 중요하다. 청와대는 개성 예비 접촉에서 이 문제를 논의할 예정이라고 밝혔지만 신빙성은 없는 것 같다. 사전에 의제 합의가 없는 정상회담은 상상하기 어렵다. 논의되어야 할 의제와 논의되지 말아야 할 의제로 구분하면 다음과 같다. 전자는 2·13합의에 따른 비핵화,납북자 및 국군포로 송환,이산가족 상봉,대북지원 등이다. 반면 후자는 국가보안법 철폐,주한미군 철수,연방제 등 통일방안,서해북방한계선(NLL) 재조정 등 북한이 줄기차게 주장해온 '근본문제'들이다. 어느 일방이 선호하는 주제만을 논의할 수 없지만 국민의 동의와 지지를 받지 못하는 주제를 집중적으로 논의하는 것은 정부에 부메랑이 될 수밖에 없다. 정상회담에 대한 평가는 국민들의 냉정한 판단에 달려 있다. '묻지마 정상회담'은 더 이상 호재가 아니다. 두 번째 하는 회담인 만큼 시행착오를 최소화하면서 국내 정치에 정략적인 이용을 자제한다면 역사적인 평가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이제 한여름 뜨거운 밤 쏟아지는 충격적인 남북관계 뉴스에 국민들이 잠을 설치지 않도록 정부의 세심한 준비가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