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도 회복...외국인 투자 늘면서 '귀하신 몸'

1弗=25.42루블 가치 급등 … 8년 만에 최고

러시아 루블화가 오랜 잠에서 깨어나고 있다.

석유를 팔아 벌어들인 오일달러와 경제성장에 기반한 외국인 투자자금이 밀려들면서 루블화 가치가 급등세를 이어가고 있는 것.루블화가 러시아 경제의 부활을 알리는 바로미터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뉴욕타임스는 9일 러시아 국내에서조차 외면받던 루블화가 국제 금융시장의 새로운 강자로 탈바꿈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한때 러시아에선 배관공조차 루블화 대신 보드카를 달라고 했을 정도로 천덕꾸러기 신세였던 루블화가 이젠 미국 달러보다 찾는 사람이 많은 인기 화폐가 됐다는 설명이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이날 미국 달러 대비 루블화 가치는 달러당 25.42루블로 1999년 9월 이후 근 8년 만에 최고 수준으로 높아졌다(환율은 하락).루블화 가치가 바닥을 쳤던 2002년 말(1달러당 약 32루블)에 비해서는 20% 이상 비싸진 것이다.

루블화는 달러뿐만 아니라 유로화와 엔화 등 세계 주요 통화에 대해 모두 강세를 띠고 있다.

루블화 가치가 이처럼 높아진 것은 러시아에 흘러들어오는 달러가 그만큼 많기 때문.러시아 외환시장에 달러를 루블화로 바꿔 가려는 수요가 급증하면서 상대적으로 루블화가 귀한 대접을 받게 된 것이다.

생필품 몇 가지를 사는 데 루블화를 몇 다발씩 줘야 했다는 얘기는 이제 전설이 된 셈이다.

러시아의 가장 큰 달러 공급원은 석유대금.2002년부터 유가가 오르기 시작하면서 산유국인 러시아에 달러가 쌓이기 시작했다.

현재 러시아로 유입되는 오일달러 규모는 하루 평균 5억3000만달러.고유가 시대가 급격히 와해되지 않는 한 루블화 강세는 지속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탄탄한 경제 성장세도 루블화 가치를 높이는 요인이다.

1990년대 후반까지 마이너스 성장에 허덕이던 러시아 경제는 2003년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이 7.3%로 높아진 이후 줄곧 7% 안팎의 빠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러시아 경제가 올해 들어 1990년 구소련 붕괴 직전의 GDP 수준을 넘어서기 시작했다"며 "완연한 경제 회복세가 루블화 가치를 끌어올리는 기본 동력"이라고 분석했다.

이로 인해 러시아에 투자하려는 외국 자본도 늘어 올 상반기 중 유입된 외국인 투자자금은 1년 전 같은 기간에 비해 360% 급증했다.

이 같은 달러 공급 확대는 러시아 외환보유액의 증가로 이어졌다.

지난 6월 말 기준 러시아 외환보유액은 4058억달러로 1년 전(2506억달러)에 비해 62% 급증했다.

중국 일본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많은 수준이며 인구 1인당 외환보유액 규모는 세계 1위다.

러시아의 대외신인도가 높아진 주 원인이다.

루블화 가치가 높아지면서 러시아 국민들의 구매력도 커졌다.

수입물가는 예전보다 크게 하락했다.

벤츠 등 고급 차와 평면TV 등 고가 가전제품에 대한 수요가 빠르게 느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뉴욕타임스는 "루블화의 강세가 기본적으로 오일달러 유입에 기초하고 있어 오래 지속되기 힘들다는 견해도 있지만 다른 산유국들과 달리 유가 하락에 대비한 안정화기금을 조성하고 있다는 점 등을 감안할 때 루블화의 강세 기조가 쉽게 무너지진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안재석 기자 yag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