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수료율 담합 혐의로 최근 공정거래위원회의 조사를 받은 은행 업계는 금융감독 당국의 창구지도가 있었다며 담합은 어불성설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공정거래법상 담합 판정을 내리려면 공동행위를 하겠다는 '사업자 간의 합의'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이를 입증해내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따라서 공정위는 가격 등이 서로 비슷하고(외형의 일치),그것이 경쟁을 제한하는 요인이 됐다면(경쟁 제한성) 합의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은행권은 그러나 공정위의 담합 판정 기준을 금융 업계에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무리라고 주장한다.

은행연합회 관계자는 "제도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금융감독 당국에 건의해도 경쟁 정책에 관해서는 입안하는 곳도,집행하는 곳도,그에 따른 결론을 내리는 곳도 모두 공정위라서 어찌할 방법이 없다는 답변만 되돌아온다"며 답답해 했다.

공정위가 막강 파워를 휘둘러도 견제할 방법이 없다는 얘기가 곳곳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지금과 같은 구조 아래에서는 어떤 불합리한 제도도 공정위의 허락 없이는 바로잡기가 어렵다는 얘기다.

이는 입법-사법-행정 등 국가기관이 행사할 수 있는 여러 가지 권력을 한 곳으로 모아 놓은 기형적 구조에서 비롯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공정위는 1994년 당시 경제기획원에서 국무총리 소속 기관으로 독립해 나왔다.

경제부처가 국가 경제적 관점에서 정책을 펼치다 보면 개별 기업 간의 경쟁 촉진을 추구해야 할 공정위의 역할이 퇴색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1996년에는 위원장을 장관급으로 격상시키고 공정거래 정책을 직접 입안할 수 있는 중앙행정기관의 지위까지 부여했다.

산업자원부 농림부 정보통신부 등 각 업종을 끼고 있는 관계부처로부터 경쟁 촉진 정책에 대한 충분한 협조를 이끌어내기가 어렵다는 이유에서였다.

공정위는 이로써 정책을 입안하고 법을 집행하면서 법 위반에 대한 판단까지 하는 막강한 권한을 부여받았다.

금융감독에 관해서는 재정경제부가 정책 입안을,금융감독원이 행정지도 등 집행을,금감위가 의결을 하도록 나뉘어져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재경부 관계자는 "공정위가 하는 일을 보면 마치 검찰청에서 일하는 검사가 도둑을 잡다가 구성 요건이 허술하다고 생각되면 형법 개정안을 내고 범인에 대한 판결까지 내리는 것과 같다"며 "이같이 막강한 권한을 가진 곳은 정부 어느 부처에도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공정위는 이에 대해 "최종 결정을 내리는 위원회 회의와 그를 보좌하는 사무처 조직으로 이원화돼 있어 문제가 없다"고 해명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사무처의 실무국장이 조사 과정이나 정책 수립 과정 등에서 모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4명의 상임위원들 모두 사무처에서 승진해 올라왔다.

사실상 하나의 조직이라는 얘기다.

권오승 공정거래위원장도 과거 교수 시절 "현재의 제도 아래에서는 공정거래위원회의 무게 중심이 합의기구인 위원회로부터 보좌기구인 사무처로 이전될 우려가 있다"며 "장관급 중앙행정기관으로의 격상이 과연 필요했는지는 의문"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공정위가 마련해 놓은 이의신청 등 불복 절차에 별다른 실익이 없는 것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공정위 처분에 대한 이의신청을 또다시 공정위에 내도록 해놨기 때문이다.

이는 국세청의 과세 처분에 대해서 별도의 국세심판원을 심판 기관으로 두고 있는 것 등과는 대조적이다.

지난해 4월 소비자원(당시 소비자보호원)은 '은나노 젖병'을 제조하는 18개 업체에 대해 상품 포장지에 "항균 보존력이 뛰어나다"고 써놓은 것이 효능 효과에 대한 과대광고라며 문제를 제기하고 나섰다.

은나노 젖병을 판매하던 유통업체들은 소비자원의 문제 제기에 따라 즉각 해당 제품의 포장지에 적힌 문구가 바뀔 때까지 판매 중단 및 패키지 수정 작업을 실시했다.

그런 다음 납품업체에 요구해 '위생력이 강화됐다'는 내용으로 문구를 바꾸도록 하고 소비자원의 검증까지 받았다.

하지만 공정위는 1월부터 이 사안과 관련해 한 유통업체에 자료 제출을 요구해 7일 시정명령을 내렸다.

해당 유통업체 관계자는 "이미 바로잡은 사안에 대한 공정위의 시정명령이 대대적으로 언론에 보도되면서 기업 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었다"며 "하지만 단순히 '하지 말라'는 내용의 시정명령에 이의신청을 내봤자 별다른 실익이 없을 것 같아서 대응을 포기했다"고 밝혔다.

공정위는 1984년 이후 접수한 533건의 이의신청 중 19건(2.9%)만을 인용했다.

일부 인용(16.2%)까지 모두 합쳐도 공정위는 10건 중 8건을 원래 결정한 대로 밀어붙였다는 얘기다.

차기현 기자 khc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