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참여 유도...민간경협 효과 기대

정부가 북한에 구속성 차관 제공을 검토하는 이유는 북한 경제를 회생시키려면 사회간접자본(SOC)에 투자해야 하고,인도적인 무상 지원으로는 이 같은 장기적인 대규모 사업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북한 경제는 전력망,도로,항만시설이 낙후해 총체적 난국이다.

전기가 없어 공장가동률이 30%에 머물러 있고,공장을 지으려 해도 항만과 도로가 낡아 설비 자재 운반부터 어렵다.


◆구속성 차관 활용 유력 검토

정부가 검토하는 구속성 차관(Tied Loan)은 정부가 후진국에 개발 원조를 주며 노하우를 쌓은 방식이다.

돈을 빌려주는 국가가 수혜국과 함께 사업대상을 결정하고 구매 조달 과정에도 개입한다.

우리 기업들이 사업자나 공급자로 참여한다는 점에서 민간 경협의 효과도 크다.

저리 이자는 안 받을 때도 있지만 원금은 25~30년에 걸쳐 회수한다.

정부는 구속성 차관의 현실성을 검토하기 위해 일본의 대중국 지원 사례를 연구한 것으로 전해진다.

일본은 중국에 1994~98년 3조엔을 집중적으로 제공했으며,이 중 10% 정도만 무상지원했고 나머지는 구속성 차관을 줬다.

중국이 이 기간 정비한 도로,철도,통신망,항만 중 4분의 1은 일본이 돈과 자재를 댔다.

통일부는 지난해 '북한의 희망경협사업'이라는 보고서를 만들고 남포항만 현대화,개성~평양 구간 고속도로 개보수,농업·임업·수산업 경협,200만kW 송전 사업 비용을 총 10조원 안팎으로 추산한 적이 있다.


◆국내·국제법 개정 선행돼야

문제는 국내외의 현행 법규다.

장형수 한양대 국제금융 교수는 "북한에 대한 SOC 건설은 당연히 유상차관이 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장 교수는 "정부가 북한에 구속성 차관을 주면 프로젝트 선정과 구매조달을 직접 감독해야 하는데 남북 간에 그럴 만한 행정시스템이나 법률적 기반이 구축돼 있느냐"고 의문을 제기했다.

실례로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법률은 남북 간 금융 거래를 금지해 놔 차관 제공에 기본인 계좌 개설조차 할 수 없게 해놨다.

또 미국은 수출입관리법에서 386컴퓨터를 포함한 광범위한 IT품목을 '전략물자'로 규정하고 북한에 들여가면 미국과의 거래에서 제약을 받도록 해놨다.

미국은 북한을 테러지원국과 적성국으로 규정,국제금융기관에서 돈을 빌리는 것도 원천봉쇄했다.

금융권 관계자는 "산은의 국가경제개발 노하우를 북한에 적용할 수 있으나 차관을 회수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지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북,개혁개방 의지 있나

장 교수는 북한의 핵문제가 완전히 해결돼 북·미 관계가 정상화되고 제도적 걸림돌이 없어진다는 것을 전제로,차관 제공을 위한 준비를 갖추는 데 최소 1~2년이 걸릴 것으로 전망했다.

그런 후에는 북한이 개혁개방 의지를 입증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동용승 삼성경제연구소 경제안보팀장은 "북한은 대외원조를 적극적으로 끌어들이겠다는 결단을 내린 것으로 보이지만 목적은 계획경제를 복구해 체제에 대한 장악을 높이는 데 있다.

북한이 중국처럼 개혁개방에 나설 것으로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미국은 중국이 1980년 국제금융기구(IMF)에 가입해 국제적 원조를 확보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도왔으나,그때는 덩샤오핑 전 국가주석이 개혁개방의지를 갖고 있었기에 가능했다.

김석진 산업연구원 북한팀 연구위원은 "북한이 대규모 원조를 수용할 능력이 있는지 의문이다.

북한이 개성에 이어 남포를 개방할 전제가 있을 때 남포 현대화와 단천 지하자원 개발 등을 현실적으로 검토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정지영 기자 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