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일벗은 세계최대 전자제품 OEM업체 '훙하이' 궈타이밍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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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선전시 룽화과학기술단지 안에는 인구 27만명의 '소도시'가 있다.
가로 1.2km,세로 3.1km의 이곳은 중국 최대 수출기업인 훙하이(鴻海)그룹의 생산기지.이 회사는 대만의 최대 갑부인 궈타이밍(郭台銘·56) 회장이 이끌고 있다. 본사는 대만에 있지만 선전 생산기지에서 휴대폰부터 게임기까지 웬만한 전자제품을 모조리 OEM(주문자상표부착) 방식으로 만든다. 회장 이름을 따 '궈타이밍 성(城)'으로 불리기도 한다. 은둔의 경영자로 불리던 궈 회장의 경영 스타일과 회사의 급성장 배경이 최근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을 통해 전해졌다.
훙하이그룹의 작년 매출은 406억달러에 달한다.
지난 10년간 연평균 50% 이상 매출이 늘어났다.
대만 증시에 상장된 훙하이의 시가총액은 430억달러.외국 경쟁 업체 10곳의 시가총액을 합한 것보다도 많다.
중국에만 16개의 생산기지를 갖고 있고 헝가리 체코 멕시코 등 6개 나라에서도 공장을 가동 중이다.
특이한 것은 철저하게 OEM을 고집한다는 것.애플의 아이팟부터 모토로라의 휴대폰,소니의 게임기,델과 휴렛팩커드의 컴퓨터 등 내로라하는 글로벌 업체는 거의 대부분 훙하이의 고객이다.
한국으로 수입되는 글로벌 기업의 전자제품 중 상당수는 훙하이가 만든 것이다.
훙하이가 외주기업이라는 한계를 딛고 급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은 의외로 단순하다.
철저하게 고객과의 약속을 지키는 것.궈 회장은 "신뢰가 생명"이라는 한마디 말로 경영철학을 설명했다.
고객사 간은 물론 종업원과의 약속을 철저하게 지켜온 게 성장의 비밀이라고 털어놨다.
"고객이 원하는 제품의 질과 가격을 맞추기 위해 최대한 노력한 결과"라고 그는 설명했다.
궈 회장은 종업원들에게 "개인보다는 회사의 이익이 더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회사의 영속성과 성장이 없으면 종업원도 없다는 단순한 사실을 망각하는 게 가장 큰 문제라는 것이다.
그의 오른쪽 팔에 채워진 염주는 칭기즈칸을 기리는 사원에서 얻은 것으로 강력한 카리스마를 상징한다. 회사의 간부들은 '궈 회장의 어록'을 읽고 암기해야 하며 그의 자서전도 공장 내 서점에 진열돼 있다.
골프카를 타고 종일 공장을 돌면서 큰 목소리로 현장을 감독하는 게 중요한 일이다.
원가 절감의 귀신이라는 소리를 들을 만큼 현장에 밝다.
생산직 종업원들은 대개 최저임금 수준의 돈을 받는다.
하지만 주택보조금 등을 따로 지급하고 생산단지 내에 수영장과 영화관 등을 갖춰놓는 등 높은 복지 수준을 유지한다.
몇 년 전엔 원청업체인 미국 애플이 훙하이의 노동 실태를 조사한 적이 있다.
영국의 한 타블로이드 신문이 최저임금만을 지급하는 노동자 착취 기업이라고 보도한 데 따른 것이었다.
그러나 결과는 '이상 없음'이었다.
무리하게 초과근무를 하는 경우가 발견됐지만 자발적 의사에 따른 것인 만큼 큰 문제를 삼지 않았다.
오히려 법과 고객사와의 약속을 철저하게 지켜 다른 중국 업체와는 다르다는 게 알려지는 계기가 됐다.
궈 회장은 1974년 어머니한테 빌린 7500달러로 대만 타이베이 인근에서 흑백TV 부품을 생산하는 공장으로 사업을 시작했다.
1980년대 초 퍼스널 컴퓨터가 유망하다는 것을 간파하고 무작정 미국으로 달려갔다.
"80년대는 미국의 도시를 돌아다는 데 다 보냈다"는 그는 "미국 대중음식점인 데니스의 메뉴를 거의 다 외우고 다녔다"고 말했다.
그는 대만의 임금이 급상승하자 1988년 인건비와 땅값이 싼 중국 선전에 공장을 세웠다.
컴퓨터 외에 휴대폰과 게임기 등으로 제품군을 확대하며 성장의 속도가 빨라졌다.
현재는 중국 전역에 약 45만명의 노동자를 거느리고 있다.
베트남과 인도 공장이 완공되면 중국 외에 6개 생산기지가 가동되는 셈이다.
궈 회장의 개인자산 규모는 알려져 있지 않다.
약 100억달러는 쉽게 넘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는 2005년 부인과 사별했다.
자식들은 회사 경영에 뜻이 없어 후계자를 물색 중이다. 그는 "아무리 훌륭한 왕도 너무 오래 집권하면 나중에 총기가 흐려지는 법"이라며 "더 늙기 전에 경영권을 물려주고 봉사하는 삶을 살겠다"고 말했다.
베이징=조주현 특파원 forest@hankyung.com
가로 1.2km,세로 3.1km의 이곳은 중국 최대 수출기업인 훙하이(鴻海)그룹의 생산기지.이 회사는 대만의 최대 갑부인 궈타이밍(郭台銘·56) 회장이 이끌고 있다. 본사는 대만에 있지만 선전 생산기지에서 휴대폰부터 게임기까지 웬만한 전자제품을 모조리 OEM(주문자상표부착) 방식으로 만든다. 회장 이름을 따 '궈타이밍 성(城)'으로 불리기도 한다. 은둔의 경영자로 불리던 궈 회장의 경영 스타일과 회사의 급성장 배경이 최근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을 통해 전해졌다.
훙하이그룹의 작년 매출은 406억달러에 달한다.
지난 10년간 연평균 50% 이상 매출이 늘어났다.
대만 증시에 상장된 훙하이의 시가총액은 430억달러.외국 경쟁 업체 10곳의 시가총액을 합한 것보다도 많다.
중국에만 16개의 생산기지를 갖고 있고 헝가리 체코 멕시코 등 6개 나라에서도 공장을 가동 중이다.
특이한 것은 철저하게 OEM을 고집한다는 것.애플의 아이팟부터 모토로라의 휴대폰,소니의 게임기,델과 휴렛팩커드의 컴퓨터 등 내로라하는 글로벌 업체는 거의 대부분 훙하이의 고객이다.
한국으로 수입되는 글로벌 기업의 전자제품 중 상당수는 훙하이가 만든 것이다.
훙하이가 외주기업이라는 한계를 딛고 급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은 의외로 단순하다.
철저하게 고객과의 약속을 지키는 것.궈 회장은 "신뢰가 생명"이라는 한마디 말로 경영철학을 설명했다.
고객사 간은 물론 종업원과의 약속을 철저하게 지켜온 게 성장의 비밀이라고 털어놨다.
"고객이 원하는 제품의 질과 가격을 맞추기 위해 최대한 노력한 결과"라고 그는 설명했다.
궈 회장은 종업원들에게 "개인보다는 회사의 이익이 더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회사의 영속성과 성장이 없으면 종업원도 없다는 단순한 사실을 망각하는 게 가장 큰 문제라는 것이다.
그의 오른쪽 팔에 채워진 염주는 칭기즈칸을 기리는 사원에서 얻은 것으로 강력한 카리스마를 상징한다. 회사의 간부들은 '궈 회장의 어록'을 읽고 암기해야 하며 그의 자서전도 공장 내 서점에 진열돼 있다.
골프카를 타고 종일 공장을 돌면서 큰 목소리로 현장을 감독하는 게 중요한 일이다.
원가 절감의 귀신이라는 소리를 들을 만큼 현장에 밝다.
생산직 종업원들은 대개 최저임금 수준의 돈을 받는다.
하지만 주택보조금 등을 따로 지급하고 생산단지 내에 수영장과 영화관 등을 갖춰놓는 등 높은 복지 수준을 유지한다.
몇 년 전엔 원청업체인 미국 애플이 훙하이의 노동 실태를 조사한 적이 있다.
영국의 한 타블로이드 신문이 최저임금만을 지급하는 노동자 착취 기업이라고 보도한 데 따른 것이었다.
그러나 결과는 '이상 없음'이었다.
무리하게 초과근무를 하는 경우가 발견됐지만 자발적 의사에 따른 것인 만큼 큰 문제를 삼지 않았다.
오히려 법과 고객사와의 약속을 철저하게 지켜 다른 중국 업체와는 다르다는 게 알려지는 계기가 됐다.
궈 회장은 1974년 어머니한테 빌린 7500달러로 대만 타이베이 인근에서 흑백TV 부품을 생산하는 공장으로 사업을 시작했다.
1980년대 초 퍼스널 컴퓨터가 유망하다는 것을 간파하고 무작정 미국으로 달려갔다.
"80년대는 미국의 도시를 돌아다는 데 다 보냈다"는 그는 "미국 대중음식점인 데니스의 메뉴를 거의 다 외우고 다녔다"고 말했다.
그는 대만의 임금이 급상승하자 1988년 인건비와 땅값이 싼 중국 선전에 공장을 세웠다.
컴퓨터 외에 휴대폰과 게임기 등으로 제품군을 확대하며 성장의 속도가 빨라졌다.
현재는 중국 전역에 약 45만명의 노동자를 거느리고 있다.
베트남과 인도 공장이 완공되면 중국 외에 6개 생산기지가 가동되는 셈이다.
궈 회장의 개인자산 규모는 알려져 있지 않다.
약 100억달러는 쉽게 넘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는 2005년 부인과 사별했다.
자식들은 회사 경영에 뜻이 없어 후계자를 물색 중이다. 그는 "아무리 훌륭한 왕도 너무 오래 집권하면 나중에 총기가 흐려지는 법"이라며 "더 늙기 전에 경영권을 물려주고 봉사하는 삶을 살겠다"고 말했다.
베이징=조주현 특파원 fore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