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 열리는 남북정상회담의 의제 조율 과정에서 적잖은 진통이 예고되고 있다.

남북이 급작스럽게 정상회담 개최에 합의는 해놨지만 어떤 의제를 다룰지에 대해선 남북이 협의를 한 적이 없는 데다 우리 사회 내의 여론도 갈려있다.

이런 상황에서 서해 북방한계선(NLL)이 "영토가 아니라 안보 개념"이라는 이재정 통일부 장관의 국회 발언이 논란에 불을 지폈다.

청와대와 통일부가 여론에 반해 북측 입맛에 맞는 의제들을 다룰지 모른다는 불신이 저변에 자리하고 있다.


◆서해 NLL 논란

NLL은 유엔이 휴전 체결 당시 국군의 북진을 막기 위해 그었지만 이후에는 우리 측에서 남북 해상 분계선으로 받아들여졌다.

특히 국방부 입장에선 사실상 국경이었기 때문에 1999년 북한 함정과 벌인 연평해전에서 NLL을 사수하느라 장병 6명이 전사했다.

그런데 이 장관은 국회 통외통위에서 "NLL은 영토의 개념이 아니라 군사적 충돌을 막는 안보적 개념에서 설정된 것"이라며 "안보상 충돌을 막는 구체적 장치가 필요하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국방부는 펄쩍뛰었다.

이 장관의 말은 NLL이 국경이 아니고 유엔의 일방 주장이기 때문에 없애야 한다는 북한 입장을 감안한 발언으로 해석됐고 정상회담에서 의제로 다루려는 게 아니냐는 의혹도 낳았다.

남성욱 고려대 교수는 "국민적 합의도 없이 서해 NLL 등 북한이 주장하는 의제를 정상회담에서 다뤄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북·미 주초 북핵 사전조율

북한의 핵문제가 중요 의제로 다뤄질 것으로 보이지만 6자회담이 진행되고 있는 과정이라 정상 회담이 어느 선에서 이 문제를 다뤄야 할지 조율하기가 쉽지 않다.

북·미는 일단 속도를 내려는 듯 보인다.

김계관 북한 외무성 부상이 11일 베이징에 도착했고 크리스토퍼 힐 미국 국무부 차관보도 13일 올 것이라고 교도통신이 보도했다.

두 사람은 13일 또는 14일 양자 회동을 가질 것으로 알려졌다.

16~17일 선양에서 열리는 6자회담 비핵화 실무그룹 회의를 앞두고 사전 조율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비핵화 실무그룹에서는 북한이 신고할 핵물질의 대상을 결정하고 영변 핵시설을 어떻게 불능화할 것인지를 결정한다.

이번 실무그룹의 성과에 따라 북핵 문제가 얼마나 속도를 낼지를 가늠할 수 있다.

북한이 어느 정도나 전향적인 태도를 보일지가 관건이다.


◆부처 간 갈등 예고

정부 내에서도 정상회담 의제의 속도와 범위를 놓고 이견이 표출되고 있다.

한반도 평화 정착이 의제로 예고된 만큼 상당히 급진적인 논의가 필요하나 기술적 전쟁 상태라는 한계가 있는 데다 국방부와 외교부,보수여론과의 합의 과정이 쉽지 않다.

부처 간 혼란은 급작스레 정상회담이 성사된 데 따른 것이다.

정부는 서훈 국정원 3차장을 중심으로 팀을 꾸려 북측에 몇 달째 정상회담 의사를 타진했으나 반응이 없자 7월에는 포기 상태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이 막상 7월 말 김만복 국정원장을 초청했을 때는 후보 의제 선별도 못한 상태였다.

정지영 기자 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