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에서는 하이힐을 신지 말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사막지대의 모래만 파면 석유가 쏟아져 나오기 때문에 뾰족한 뒷굽이 자칫 유전지대에 구멍을 낼 수 있다는 것이다.

카스피해와 인근 지역을 가면 '시추공만 뚫으면 석유가 나온다'는 농담을 흔히 듣게 된다.

중동보다는 못 하지만 그만큼 석유가 엄청나게 매장되어 있어서다.

우리 정부가 지정한 철 유연탄 아연 구리 우라늄 희토륨 등 6대 전략광물의 보고이기도 하다.

카자흐스탄의 경우 200여개 유전지대 중 실제 개발에 들어간 곳은 40% 정도에 불과해 개발 여지가 큰 것 또한 장점이다.

김남원 대한광업진흥공사 카자흐스탄 사무소장은 "자원개발권만 주면 미국도 머리를 숙인다.

장기 독재와 인권 탄압 같은 얘기는 자원부국에는 해당되지 않는 게 현실"이라고 전했다.

자원의 자주개발권 확보가 시급한 우리나라도 중앙아시아 유전지대에서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한국석유공사를 중심으로 LG상사 SK에너지 삼성물산 경남기업 GS홀딩스 현대중공업 등이 유전별로 컨소시엄을 구성해 잠빌 아다 사우스카르포브스키 카작에기즈카라 블록8 등 5개 지역에서 석유 탐사 또는 개발 작업을 진행 중이다.

매장량이 가장 클 것으로 예상되는 잠빌유전은 이달 말께 카자흐스탄 국영 카즈무나이가스(KMG)와 탐사계약을 마무리지을 것으로 알려졌다.

우즈베키스탄의 경우도 아랄해 가스전 개발이 검토되는 상황이다.

이를 위해 베트남 유전 개발의 주역들이 카자흐스탄과 카스피해 연안으로 대거 이동하고 있다.

곽정일 한국석유공사 사무소장과 장현식 LG상사 중앙아시아지역본부 상무는 한 건물에 사무실을 차려놓고 정보 수집도 공동으로 하고 있다.

하지만 중앙아시아가 한국 기업에 자원 확보의 블루오션이 되기에는 여러가지 한계를 안고 있다.

우선 카자흐스탄의 4대 대형 유전인 카샤간 텡기스 쿠르만가지 카라차가나크는 이미 쉐브론텍사코 엑슨모빌 브리티시페트롤리엄(BP) 루크오일 등 석유 메이저와 KMG가 지분을 분점한 상태다.

미국 에너지정보청이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이들은 추정 매장량이 최소 20억배럴에서 최대 700억배럴에 달하는 거대 유전이다.

중앙아시아와 국경을 맞댄 중국도 중국석유천연가스공사(CNPC)를 통해 5억배럴 규모의 페트로 카자흐스탄 지분 67%,10억배럴 규모의 악토베 지분 63%를 확보했다.

이에 비하면 우리가 확보한 유전은 '틈새' 수준이다.

가채매장량 기준 5억배럴 이상을 '자이언트급'으로 분류하면 잠빌만이 개발 여하에 따라 그 범주에 속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도 한국 측 컨소시엄 지분은 27%에 불과하다.

이 같은 현상은 우리 정부의 자원 자주개발권 확보에 대한 인식이 선진국이나 중국 등에 비해 그만큼 낮았기 때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1990년대 말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그동안 확보해 놓은 우라늄 개발권을 모두 매각한 게 단적인 예이다.

정부는 세계 6위의 소비국이어서 언제든 시장에서 좋은 가격에 구매가 가능하리라는 잘못된 계산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한때 파운드당 12달러에서 오르내리던 우라늄 가격이 지금은 10배가 넘는 130달러까지 치솟으며 가격결정권이 공급자로 넘어갔다.

자본 회임 기간이 짧아야 5년,길면 10년이 걸리는 자원 개발의 속성과 우리의 '빨리빨리' 문화가 상충된 결과라는 분석도 있다.

유전사업은 그야말로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구조다.

남재구 한국석유공사 탐사개발팀장은 "10군데를 뚫어 한 곳만 기름이 솟아도 대성공"이라며 "실패를 두려워하면 이 분야에서 살아 남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베팅 규모에 큰 차이가 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카샤간의 개발 비용은 최소 100억달러,우리 돈으로 9조원을 웃돈다.

하지만 우리의 베팅 수준은 한 지역에서 10억달러 정도라고 곽 소장은 전한다.

중앙아시아에 자원민족주의 바람이 거세지면서 수익 배분 조건이 날로 악화되고,개발에 성공한 생산유전의 매입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는 것도 큰 부담이다.

중국은 2년 전,당시 전문가 분석 적정가격이 22억달러인 페트로 카자흐스탄을 41억8000만달러에 매입했다.

경제성보다는 일단 에너지 확보가 더 중요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자원의 자주개발권 확보는 발등의 불이다.

산업자원부는 얼마 전 현재 3.2%에 불과한 석유·가스 자주개발률을 28%로 확대하는 청사진을 내놓았다.

그러나 15조원이란 예산으로 이 같은 성과를 얻을 것으로 생각하는 전문가는 많지 않다.

중앙아시아가 자원의 보고란 사실에 흥분하기에는 걸림돌이 너무 많은 실정이다.

알마티=김영규 기자 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