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일 발생한 제주항공의 김해공항 활주로 이탈 사고로 인해 저가 항공사의 '안전 불감증'이 또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국내에 저가 항공 시대가 열린 지 2년 만에 다섯 차례 이상 안전 사고가 발생하면서 승객들의 불안감도 커지고 있다.
항공업계에서는 저가 항공사들의 취약한 인력 및 장비 문제가 개선되지 않는 한 유사한 사고가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특히 2010년까지 중부항공 영남에어 등 새로운 저가 항공사가 4개 이상 새로 생기는 데다 제주항공 등이 국제선 취항도 추진하고 있는 만큼 차제에 강력한 안전운항 규제가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도 일고 있다.
지난해 6월 출범한 제주항공의 안전사고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2월에는 김포공항에 착륙해 유도로에 진입하던 중 뒷바퀴 두 개 묶음 가운데 하나가 빠지면서 활주로에 멈춰섰고,작년 8월에는 김해공항 착륙 도중 비행기 꼬리 부분이 활주로에 부딪치는 사고가 일어났다.
또 다른 저가항공사인 한성항공은 지난해 11월 제주공항에 착륙하던 중 앞바퀴가 부러지면서 6명이 다치는 사고를 일으켰다. 한성항공은 앞서 2005년 10월에 제주공항 활주로에 도착한 후 왼쪽 타이어 2개가 펑크나는 사고 등의 여파로 한동안 항공기 운항을 중단하기도 했다. 반면 사우스웨스트 등 선진국의 저가항공사들은 안전 및 정시율 측면에서 기존 프리미엄 항공사들을 능가한다는 평을 듣고 있다.
항공업계에서는 저가 항공사들의 잇따른 안전사고가 단순한 '경험 부족' 이상의 문제에서 발생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항공료를 대한항공 및 아시아나항공보다 30%가량 저렴하게 책정한 만큼 이를 만회하기 위해 조종사에 대한 교육훈련 및 정비 관련 비용을 지나치게 줄였을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에서다.
김웅이 한서대 항공학과 교수는 "해외 저가항공사들은 값싼 외곽 공항을 이용하고 각종 서비스를 없애는 방식으로 항공료를 낮췄지만 국내 저가항공사들의 비용구조는 대한항공과 다를 바가 없는 상태"라며 "현 시스템에선 요금을 올리지 않는 한 안전에 대한 투자가 위축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우수 인력 확보 및 훈련 시스템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것도 안전을 위협하는 요소 가운데 하나라는 게 항공업계의 분석이다. 후발업체인 데다 대한항공 및 아시아나에 비해 임금도 상대적으로 낮은 만큼 우수 조종사 및 정비인력을 확보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 또 저가항공사들은 국적 항공사처럼 항공기 운항 시뮬레이터와 격납고 등 각종 안전 관련 장비를 자체 보유할 정도로 '규모의 경제'도 이루지 못한 상태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저가항공사 조종사 및 정비인력의 상당수가 양대 국적항공사 출신인 만큼 제트기 경험은 풍부하지만 터보프롭 기종에 대한 경험은 부족하다"며 "항공기 통제 시스템 측면에서도 기상,화물,정비 등 각 분야 전문가들이 조종사들의 의사결정을 지원하는 기존 항공사에 크게 못미치는 상태"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에 대해 제주항공 측은 "현재 75명의 정비인력이 항공기 5대를 돌볼 정도로 인력과 장비를 충원하고 훈련시간도 늘린 상태"라며 "운항 편수도 출범 당시 하루 46회에서 현재 42회로 줄이는 등 안전을 강화하기 위해 가능한 모든 조치를 취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유병선 항공대 교수도 "저가 항공 태동기에 나타난 경미한 사고일 뿐"이라고 말했다.
건설교통부는 이번 제주항공 활주로 이탈 사건을 계기로 저가항공사에 대한 안전 전검을 한층 강화한다는 계획이다. 건교부 항공안전본부 관계자는 13일 "사고조사위원회 조사를 통해 조종사 과실 또는 기체 결함 등 문제점이 발견될 경우 저가 항공사에 대한 집중 점검을 실시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건교부는 또 현재 정기선ㆍ부정기선으로만 구분된 항공사 운송면허 체계를 개편,국제선 운항 및 대형 항공기 운항을 심사를 거쳐 면허로 내주는 방안을 추진키로 했다. 예컨대 제주항공이 대형 항공기를 이용해 김포와 일본을 오가는 국제선을 띄우려 할 경우 국제선 운항 면허와 대형 항공기 운항 면허를 따야 한다는 얘기다.
건교부 관계자는 "새로운 항공사 운송면허 체계는 안전을 최우선에 두고 시행할 것"이라며 "조만간 공청회를 거쳐 확정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오상헌 기자 ohyea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