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2004년 8월 총리 직속으로 규제개혁기획단을 별도로 설치한 뒤 기업활동에 대한 규제개선 노력을 전개해 일부 성과도 냈으나 기업들이 느끼는 규제개혁의 체감도는 아직도 낮다.

기업 의욕을 북돋울 수 있는,제대로 된 개혁이 아니라 형식적인 생색내기에 급급했던 결과로 분석된다.

감사원은 13일 그 대표적인 예로 정부의 규제개혁 실적 부풀리기와 관련 제도의 부실한 운영을 꼽고 기업 현장에서 실감할 수 있는 핵심규제 중심의 개혁을 관련 행정 부처에 요구했다.


◆개혁과제 선정에서부터 부풀리기

규제개혁기획단은 규제개혁 대상과제를 선정하면서 기업활동을 제약하는 핵심규제와 관련이 적은 단순 정책지원성(비규제) 과제를 마구잡이로 끼워넣었다.

개선하겠다고 선정한 1309개 세부 이행과제중 49.4%인 647개가 그런 과제였다는 게 감사원의 지적이다.

예컨대 '관광진흥개발기금 항공부문 활용'의 세부이행과제는 규제를 개선한 것이 아니라 그저 인천공항 환승투어 활성화 사업 등에 7억원을 지원한뒤 완료처리해 버렸다.

'개발전문 기업의 기술료 부담완화' 과제의 경우,동일한 사안을 놓고 산업자원부 등 5개 부처 업무와 관련돼 있다는 이유로 5개 과제로 쪼개서 집계했다.

'단체 공무 국외여행 자율심사 실시' 과제는 벌써 개선된 과제였는데도 버젓이 대상과제로 올렸다.

감사원은 이렇다 보니 규제개혁기획단이 발표한 규제개혁 성과 790개 가운데 280개만 이행됐을 뿐 510개는 부풀려진 실적이라고 지적했다.


◆부실이행으로 기업들만 골탕

규제개혁 과제가 실제 실행이 되지 않으면서 골탕을 먹는 쪽은 기업들이다.

규제개혁기획단은 '공장설립 최소면적 제한완화' 과제가 대표적 사례.기업활동을 최일선에서 규제하는 지방 다치단체로까지 완전히 이행되지 않았는 데도 완료된 것으로 처리했다.

건설교통부는 2002년 12월 국토 난개발 방지를 위해 관리지역내 소규모 공장설립을 금지하는 '국토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 시행령'을 제정했다.

하지만 시행령 제정 이후 소규모 공장의 설립이 2285건에서 2004년 1787건으로 대거 줄어들자 2005년 9월 시행령만 개정하고 세부집행 내용은 자치단체에 위임해 버렸다.

문제는 2006년 12월 현재까지 조례개정 대상인 138개 지자체 중 102개에서 도시계획 조례개정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이 바람에 현장의 기업들은 소규모 공장 설립에 애로를 겪을수 밖에 없다.


◆이중으로 옥죄는 규제 여전

환경부는 공해를 유발할 가능성이 있는 79개 업종을 이미 '국토계획법 시행령' 제57조에 따라 관리지역 내에 입주할 없도록 규제하고 있는데도 규모와 상관없이 신규로 설립하는 모든 공장을 사전환경성 검토대상에 포함시켰다.

사전환경성 검토보고서를 작성하고 협의하려면 2개월이 소요되고 1500만원의 추가 비용이 발생하는데 기업들의 이같은 애로는 아랑곳하지 않는 이중 규제다.

정부는 그러면서도 사전환경성 검토제도를 완화할 경우 공장신설로 연간 300억원(1년 2000건 X 1500만원)의 사회적 비용을 절감하는 효과를 낼 것으로 기대만 하고 있다.

감사원이 환경부 장관에게 일정규모 이하의 공장 설립에 대해 최소한으로 이 제도를 운용하도록 통보한 이유다.


◆규제 등록·일몰제도 역시 말뿐

감사원은 대통령 직속 규제개혁위원회가 '행정규제기본법'에서 정한 규제등록 의무,규제일몰제,규제영향분석 등 규제 신설을 억제하기 위한 제도도 부실하게 운영된다는 점을 지적했다.

규제개혁위원회는 2003년∼2006년 6월 재정경제부 등 25개 부처 소관 131개 법률이 의원입법으로 제·개정되면서 신설·강화된 357개 규제 중 171개 규제가 등록되지 않고 있지만 이를 그대로 뒀다.

또 2000∼2005년 규제개혁위원회 심사를 거친 6567건의 규제 가운데 불과 0.6%인 39건만 존속기한이 설정됐을 뿐이다.

행정규제기본법 대로라면 존속시켜야 할 명백한 사유가 없는 규제는 5년 이내로 존속기한을 분명히 설정해야 한다.

이어 2003년 9월∼2006년 6월 건설교통부 등 4개 부처에서 중요 규제 109건에 대한 규제영향분석을 하면서 가능한 계량화된 분석을 실시하도록 했으나 무려 97.2%인 106건이 서술형식으로 처리됐다.

최근 3년간 신설·강화된 규제수가 1102건으로 폐지·완화된 규제 468건보다 훨씬 많다는 점을 감안하면 규제개혁 체감도가 낮은 이유는 말 뿐인 제도 운영에 있었던 것이다.


◆과도한 자산운용사 진입규제

재정경제부는 2003년 12월 자산운용업을 동북아 금융허브 구축의 선도산업으로 선정했다.

이를 위해 자산운용업 규제완화 방안 마련ㆍ자본시장통합법 제정 추진 등으로 나름대로 경쟁력 확보에 주력했다.

당시 다수의 국내외 금융기관도 자산운용업 진출을 희망하고 있었다.

하지만 금융감독위원회는 '간접투자자산 운용업법' 제5조 등 관련규정에서 정한 허가요건 가운데 자의적으로 운영될 가능성이 있는 주관적인 허가요건(사업계획의 타당성)을 넣었으나 내용은 구체화·객관화하지 않았다.

신규허가를 하면 과당경쟁의 소지가 있다는 막연한 사유로 자산운용 경험이 없는 경우에는 종합자산운용사의 허가대상에서 제외하는 것으로 방침을 정하고 2005년 이후 이를 엄격히 제한해 왔다.

반면 재경부는 신규 진입의 확대는 자산운용업 경쟁력을 높이는 긍정적 효과가 크다는 입장이었다.

금감위의 이 같은 과도한 진입규제로 신규 자산운용사 설립 실적은 미미했으며 오히려 자본 잠식된 회사가 시장에서 퇴출되지 않고 사업권이 고가에 매각되는 등 부작용이 발생했다.

G자산운용은 자본의 65%가 잠식돼 순자산이 43억원에 불과했으나 2006년 8월 2배 이상인 100억원에 매각되기도 했다.

김홍열 기자 com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