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는 해외 IT기업, 중공업은 대우조선해양 '사냥' 채비

삼성그룹은 최근 10년간 단 한 차례도 기업 인수·합병(M&A)에 나서지 않았다.

1990년대 후반 이후 제너럴일렉트릭 도시바 등이 M&A를 통해 미래 성장을 도모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삼성은 대신 '독자 성장 전략'을 채택했다.

다시 말해 M&A를 통해 외부에서 성장 동력을 끌어오기보다 내부에서 연구개발(R&D) 투자와 핵심 인재 확보를 통해 신수종 사업을 발굴하는 데 주력해 왔다.

이런 전략으로도 삼성은 반도체 휴대폰 LCD 등에서 세계 최고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하지만 2004년 이후 '성장 정체'에 직면하자 삼성은 이 같은 성장 전략에 변화를 가하기 시작하는 모습이다.

'M&A 금기'에서 '계열사 특성에 맞는 선별적 M&A 추진'으로 전략을 수정한 것.이에 따라 삼성전자를 시작으로 화학 및 중공업 계열사들이 M&A에 뛰어들 준비를 하고 있다.

◆삼성은 왜 M&A를 안 했나

삼성이 최근 10년간 M&A를 안 했지만 사실 삼성은 M&A를 통해 기반을 다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주력 계열사인 삼성전자가 그렇다.

삼성전자의 현재 주력 사업인 반도체와 통신사업은 1974년과 1980년 각각 인수한 한국반도체와 한국전자통신을 모태로 하고 있다.

이 두 개 회사를 M&A하면서 삼성전자는 반도체와 휴대폰을 중심으로 한 지금의 '5개 사업 편대'를 완성할 수 있었다.

이후 한동안 뜸했던 삼성의 M&A는 1995년 한 차례 더 있었다.

삼성전자가 당시 미국 3대 PC회사 중 하나였던 AST를 인수한 것.이는 PC사업 기반이 전혀 없었던 삼성전자가 AST 인수를 통해 미국과 중국 시장 점유율을 일거에 끌어올린다는 전략에 따라 이뤄졌다.

하지만 AST 인수는 실패로 끝났다.

미국과 한국의 기업 문화 차이를 극복하지 못한 상황에서 이뤄진 M&A로 AST의 연구개발 인력들이 대거 이탈하자 삼성전자는 5년 만인 1999년 총 5억6000만달러의 투자 자금을 포기하고 AST 경영권을 버렸다.

이때 이후 삼성그룹에서 'M&A를 하지 않는다'는 것은 불문율로 자리 잡았다.

◆M&A를 재개하는 까닭은?

그렇다면 왜 삼성은 M&A 카드를 다시 꺼냈을까.

가장 큰 이유는 '내부 동력만을 이용한 성장에는 한계가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실제 삼성은 그동안 줄곧 조 단위 투자를 통한 성장을 추진해 왔지만 2004년 이후 그룹의 실적은 정체 국면에 접어들었다.

지난해 그룹 전체 매출은 141조원으로 10년 전인 1987년(13조5000억원)에 비해 10배 이상 늘었지만 최근 3년간은 제자리 걸음을 면치 못하고 있다.

주력 계열사인 삼성전자조차 반도체와 휴대폰에 이은 성장동력 발굴에 한계를 맞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기존 주력 사업을 이을 5~10년 후의 신수종 사업 발굴이 여의치 않고 성장성이 큰 시장은 이미 해외 선진 기업들이 선점하고 있어 새 성장 동력을 찾기가 힘들다는 점에서다.

여기에 해외 선진업체들이 보유한 특허 기술을 피해 새로운 기술 개발로 활로를 뚫는 데도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결국 '자금+기술'을 통한 자체 동력만으로는 지속적인 성장을 담보할 수 없다는 점이 삼성그룹이 M&A 전략을 채택하게 된 이유라고 할 수 있다.


◆현재 M&A 진행상황

삼성이 M&A를 새 성장 전략의 하나로 채택했지만 아직까지 가시적인 성과는 나오지 않고 있다.

하지만 일부 계열사를 중심으로 M&A를 하려는 움직임은 점점 구체화되고 있다.

가장 먼저 삼성전자가 M&A에 나설 전망이다.

삼성전자는 조만간 원천 특허 기술을 보유한 해외 정보기술(IT) 기업 인수에 나설 것으로 알려졌다.

인수 대상은 최근 삼성전자가 신수종 사업으로 정해 놓은 시스템LSI(비메모리) 반도체 회사나 휴대폰 관련 회사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선 미국의 CPU(중앙연산처리장치) 제조업체인 AMD를 삼성전자가 인수한다는 설도 흘러 나오고 있다.

삼성중공업도 M&A에 뛰어들 가능성이 높다.

세계 3위인 대우조선해양 인수전에 뛰어들어 선조 설비를 확충할 것이란 분석이다.

최근 대산석유화학단지 내실화 작업을 서두르고 있는 삼성토탈도 공격적인 M&A에 나설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이태명 기자 chihir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