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德培 <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 >

지난 10일부터 국내 외국환은행의 외화대출이 제한을 받고 있다.

한국은행이 '외국환거래업무 취급세칙'을 개정해 외화대출에 대한 용도를 제한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외국환은행들도 해외에서 사용할 실수요 목적의 자금과 제조업체의 국내 시설자금을 제외하고는 외화대출을 할 수 없다.

사실 그동안 외화대출의 용도제한이 없던 가운데 원화가 지속적으로 절상(切上)되고 있는 틈을 타 지난해부터 국내은행들의 외화대출이 급증하고 있다.

외화대출을 위한 은행들의 외화 유입(流入) 증가는 단기외채 급증으로 나타나면서 우리 경제에 적지 않은 부담을 주고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 경제상황에 맞지 않는 원화 절상의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리고 이렇게 유입된 외화가 원화로 전환되면서 나타나는 통화량 증가는 부동산 주식 등으로의 자산쏠림 현상을 심화시키고 있다.

더욱이 최근에는 운전자금 용도로 대출된 자금이 본연의 목적보다는 투기적 목적으로 사용되면서 국가경제 질서를 어지럽히고 있다.

작년 하반기 금융감독당국의 강화된 원화 주택담보대출 규제를 피해 외화대출이 투기자금을 조달하는 창구로 악용되기도 했다.

적지 않은 법인들이 저금리 엔화대출을 받아 본연의 사업 활동과는 무관하게 부동산 매입,주식 투자,사적인 주택 구입 등 편법적으로 사용한 사례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따라서 이번 한국은행의 조치는 단기외채를 줄이고,원화가치의 급등 현상을 억제하며,국내 유동성 증가 속도를 늦출 수 있다는 취지에 대해서는 모두 수긍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이 조치가 굳이 지금과 같이 국내외 금융시장이 매우 혼란스러울 때 취해졌다는 데 대해서는 납득하기 어렵다는 분위기다.

현재 전 세계 금융시장이 서브프라임 모기지 문제가 몰고 올 신용경색 현상에 잔뜩 긴장하고 있다.

국내 KOSPI도 2000이라는 전인미답의 신기원을 달성하자마자 불과 2주일여 만에 10% 가까이 빠졌다.

잠시 잊고 있었던 엔 캐리 트레이드 자금의 청산 문제가 다시 우려되고 있다.

오랫동안 긴축정책으로 일관했던 미 연준(聯準)마저 시장에 긴급 유동성을 수혈할 정도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번 외화대출 규제가 자칫 국내 금융시장을 혼란시킬 수 있다.

만일 은행들이 단기 외화차입금에 대한 상환자금 마련을 위해 경쟁적으로 콜자금 차입,CD(양도성예금증서) 발행 등 단기 유동성 확보 노력을 할 경우 국내 단기금리가 급등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CD금리 상승은 대부분 이에 연계돼 있는 주택담보대출 금리를 즉각 상승시키면서 서민들의 이자부담을 가중시킬 것이다.

더욱 유의해야 할 것은 최근 우리 정책당국이 부동산시장의 연착륙과 과잉유동성 흡수를 위해 뒤늦게 동시다발적인 긴축정책을 펼치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은행은 지난 6월 중소기업의 총액대출한도를 전 분기보다 축소했고,7월에 이어 8월에도 콜금리 목표금리를 0.25%포인트 인상했다.

금융감독원은 증권사의 신용융자까지 규제하고 있다.

여기에다 이번에 외화대출까지 규제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전방위적 긴축정책을 쏟아낸다면 시장에 필요 이상의 충격을 주면서 예기치 않은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과거 일본의 사례처럼,현재 미국의 경우처럼 부동산시장이 경착륙할 가능성을 전혀 배제할 수 없다는 말이다.

따라서 이번 조치가 과연 현 상황에서 최선인가 한번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2006년 중 국내 외국환은행의 외화대출 증가액은 163억달러에 이르렀지만 작년 말 한국은행의 창구지도로 인해 2007년 상반기에는 21억달러로 급감했다.

즉,창구지도 자체가 상당한 효과가 있다는 말이다.

획일적인 규제보다 선의의 기업에 피해를 주지 않는 창구지도를 강화하되,그래도 미흡한 부분은 철저한 감독과 벌칙 강화로 대응하는 것이 최선책이 아닐까 싶다.

자산가치가 부풀대로 부풀려진 상황에서 갑자기 긴축정책으로 급선회할 경우 나타나는 부작용에 대한 책임은 누구의 몫인가.

지금은 모든 상황을 고려한 세심하면서도 탄력적인 정책이 필요할 때라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