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업체에 근무하는 이경웅씨(31)는 일주일에 두 번씩 미용실을 찾는다. 그것도 이름있는 '헤어 디자이너'만 고집한다. 면도 등 부가서비스도 받기 때문에 한 번에 최소 4만원 이상이 든다. 한 달에 두세 번 정도는 피부관리실에도 들른다. 최근에는 손톱관리도 시작했다.

대학생 박모씨(24)는 친구들 사이에서 '명품족'으로 통한다. 매주 백화점에 들러 최고급 브랜드인 '아르마니 진''씨피 컴파니' 등에 어떤 신상품이 나왔는지 살펴보는 것이 습관이다. 해외 쇼핑사이트를 통해 직접 명품을 구입하는 경우도 많다. 어렵사리 해외 인터넷쇼핑몰에서 사용할 수 있는 체크카드를 발급받은 것도 이를 위해서다.

패션과 미용에 아낌없이 투자하는 '그루밍(grooming)족'이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그루밍은 여성의 '뷰티(beauty)'에 해당하는 남성의 미용용어. 피부 두발 치아관리는 물론 성형수술까지를 포함하는 뜻으로 사용된다.

정진웅 한양대 교수(문화인류학과)는 "여권신장으로 상대적으로 남성의 사회적인 영향력이 약해지면서 남성들도 '신체자본'(외모)을 갖추고 있어야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며 "앞으로 그루밍족과 같이 꾸미는 남성들의 수가 더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인터넷 사이트에서도 남성 회원들이 패션과 미용에 관련된 정보를 교환하는 동호회가 점차 늘어나는 추세다. 네이버에 개설된 '디젤매니아'의 경우 회원수가 약 7만5000명에 달한다. 해외 매장 정보,명품 의류 수선법 등과 관련된 정보가 주종을 이룬다. '선크림 어디 거 쓰시나요'와 같이 화장품 브랜드에 대한 질문도 올라온다.

기업이 직접 남성 소비자 동호회를 만들어 운영하는 경우도 있다. 아모레퍼시픽은 남성 피부관리와 관련된 정보를 제공하는 인터넷 동호회인 헤라지엥을 운영하고 있다.

아모레퍼시픽 관계자들은 회원들로부터 사용후기를 듣고 사회 트렌드의 변화를 들어 새로운 제품에 반영하고 있다.

그루밍족의 최대 관심사는 피부다. 6개월 전부터 비비크림(잡티제거 등을 목적으로 한 기능성 화장품)을 바르기 시작했다는 한국외대 4학년 이승현씨는 "남자들도 남들보다 돋보이고 싶어하는 심리가 있다"고 말했다. 실제 피부관리실에는 젊은 남성들로 북적인다. 이지함 에스테틱 강남점의 조선영 홍보실장은 "하루에 10명 정도의 남자 대학생들이 찾는다"며 "스케일링,여드름 관리뿐 아니라 미백을 해달라는 남자 손님도 있다"고 전했다.

명품을 추구하는 만큼 씀씀이도 크다. 청바지의 경우 프리미엄진이라 불리는 디젤,트루릴리젼,세븐진 등 평균 30만~40만원대의 고가 제품이 큰 인기다. 장당 5만~11만원 하는 명품 브랜드 팬티도 필수 아이템이다. 골반에 걸쳐입는 청바지를 입을 경우 허리를 숙일 때 살짝 내비치는 팬티의 로고가 패션 아이템의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신세계백화점 강남점의 '돌체앤가바나' 숍매니저는 "직접 팬티를 사러오는 남성고객이 하루에 10명은 된다"며 "3분의 1 이상은 대학생"이라고 말했다.

송형석 기자/윤미로 인턴기자 clic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