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금융시장에서 돈줄이 말라가고 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 파문으로 야기된 신용경색 현상이 심화되고 있어서다.

투자자들은 서브프라임 모기지 등이 포함된 자산담보부증권(ABS)을 기피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대표적 안전자산으로 꼽히는 기업어음마저 인수를 꺼리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에 따라 자금을 구하지 못한 기업들이 줄을 잇고 있어 경제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코벤트리 등 캐나다의 17개 기업은 자산담보부 기업어음(ABCP)을 발행하려 했으나 인수자가 나서지 않아 14일(현지시간) 은행들에 긴급 자금 지원을 요청했다.

그러나 도이체방크 등 일부 은행들은 대출을 거부해 일부 회사는 파산에 내몰리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ABCP는 기업들이 단기 운전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발행하는 것으로 만기는 90일짜리가 일반적이다.

신용도가 좋은 기업만 발행하는 만큼 채권시장에선 가장 안전하고 현금화가 용이한 투자대상으로 꼽혀 왔다.

그러나 서브프라임 파문으로 ABCP시장마저 흔들리고 있어 채권시장 전체가 소용돌이에 휘말려 들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캐나다 ABCP시장은 1750억달러 규모로 발행이 제대로 안 될 경우 상당수 기업이 곤란할 지경에 빠지는 게 불가피하다.

그나마 2조2000억달러 규모인 미국 ABCP시장은 상대적으로 안전하다.

그렇지만 최근 들어 ABCP 금리가 가파르게 상승(채권값 하락)하고 있어 불안감은 갈수록 고조되고 있는 형국이다.

ABCP시장에 불똥이 튐에 따라 안전한 투자대상으로 꼽히던 머니마켓펀드(MMF)마저 환매에 시달리고 있다.

미국의 자산운용사인 센티넬 매니지먼트 그룹은 이날 감독당국인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에 투자자들의 환매 중단을 위한 승인을 요청했다.

이 회사는 16억달러에 달하는 펀드자금을 주로 ABCP 등 단기자산에 운용해 왔다.

MMF와 비슷하다.

이 회사는 투자자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환매 요구에 응하려면 보유 채권을 헐값에 팔아야 해 궁여지책으로 환매 중단 승인을 요청했다"고 밝혔다.

이어 "투자자들의 공포가 극에 달하며 파문이 다른 채권시장에 옮겨가고 있다"며 "월가에 유동성이 마르고 있다"고 호소했다.

물론 아직까지 MMF 전체가 불신받는 것은 아니다.

S&P도 이날 450개 MMF에 대해 신용등급을 조정할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그렇지만 가장 안전한 투자대상으로 꼽혀온 MMF에 이상징후가 발생한 것은 분명해 각종 펀드에 대한 환매 요구는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이미 헤지펀드는 물론 부동산과 정크본드 및 규모가 작은 회사의 채권에 투자한 일부 뮤추얼펀드에서도 자금이탈이 시작된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MMF마저 불신받을 경우 시중자금의 국채 쏠림현상은 더욱 가속화될 전망이다.

립 캐피털의 투자전략가인 피터 듀네이는 "지금 시장은 불확실성 그 자체"라며 "CP시장까지 서브프라임 파문이 미쳤다는 것은 기업들의 생존에 영향을 주기 시작했다는 의미로 고용과 소비 등 경제 전반도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한마디로 서브프라임 파문이 신용을 기반으로 하는 채권시장 전체에 빠른 속도로 옮겨붙는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는 진단이다.

뉴욕=하영춘 특파원 hayoung@hankyung.com

-----------------------------------------

[ 용어풀이 ]

◆기업어음(CP)=기업들이 운전자금조달과 원자재 구입 등을 위해 단기로 발행하는 채권. 30일과 90일짜리가 보통이다. 신용이 상대적으로 좋은 기업이 발행,안전자산으로 분류된다. 머니마켓펀드(MMF) 등에서 매입한다. 일부 CP는 주택담보대출이나 신용카드채권 등을 담보로 발행돼 자산담보부 기업어음(ABCP)으로 불린다. CP시장규모는 미국이 2조2000억달러,유럽이 8000억달러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