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디자인학교' 명문대 졸업자 '입학 줄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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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절인 15일.서울 강남구 논현동에 위치한 삼성디자인학교(SADI·Samsung Art&Design Institute)의 작업실은 팀 프로젝트를 준비하는 학생들로 가득하다.
휴일이 아니냐고 묻자 "기업에서 부탁받은 산학 프로젝트를 마치기 위해서는 휴일이나 방학을 챙길 수 없다"는 답이 돌아온다.
작업실 벽에는 수십 장의 포스트잇과 디자인 스케치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포스트잇에는 '아줌마의 전유물''기계와 싸움''어머니' 같은 단어들이 적혀 있다.
이주석씨(24·패션디자인학과 3학년)는 "디자인에 담고 싶은 이미지를 글로 적어 벽에 붙이는 것이 습관"이라며 "손정의 일본 소프트뱅크 회장도 사업 아이디어를 생각해 낼 때 이 같은 방법을 썼다"고 말했다.
삼성전자가 운영하는 SADI는 디자인을 전공한 학생들 사이에서 '디자인 전문대학원'으로 불린다.
디자인을 비롯 공학 경영학 등을 전공한 다양한 배경의 대졸자들이 입학을 위해 줄을 서기 때문이다.
입학생 중에는 서울대를 포함한 명문대 졸업자들도 상당수 섞여 있다.
일례로 디자이너들의 올림픽으로 불리는 '레드닷 어워드'에서 지난해 대상을 받은 제품디자인학과 3학년 박상현씨(28)와 김지애씨(27)는 각각 서울대 기계공학과와 생물학과를 졸업한 후 SADI에 입학했다.
매년 100명의 신입생을 선발하는 SADI의 입시는 일반 대학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학교 졸업장,내신·수능 성적 등은 전혀 반영되지 않는다.
고졸 학력이라 하더라도 능력만 있으면 입학생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미술 전공자일 필요도 없다.
오히려 공학이나 경영학 전공자 등을 '개성 있는 디자인을 만들 수 있다'는 이유로 선호한다.
심지어 한의대 출신까지 있다.
창의력 테스트를 치른다는 점도 독특하다.
'데생 실력'은 입학 후 교육을 통해서 기를 수 있지만 창의력은 타고난다고 보기 때문이다.
SADI는 학위를 주는 제도권 교육기관이 아니다.
때문에 졸업해도 국내 대학원 석사 과정에 진학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하지만 해외로 나가면 상황은 달라진다.
미국 파슨스 디자인스쿨,카네기멜런대 등 디자인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미국 대학들은 SADI 졸업생을 대학 4학년이나 석사 과정으로 받아 준다.
원대연 학장(전 제일모직 사장)은 "정부에 대학원대학 인가 신청을 할 수도 있지만 규제가 부담스러워 직업학교 형태를 고집하고 있다"고 말했다.
SADI는 철저히 기업에서 활동할 디자이너를 양성한다는 목적에 맞춰 학생들을 교육한다.
기업에 소속돼 제품을 디자인하려면 소비자 수요 조사,마케팅 등에 대한 지식이 필요하다고 보고 경영학 과목을 정규 커리큘럼에 집어 넣었다.
3년 이상의 기업 경력을 갖춘 교수만 임용하는 것도 실무 중심 교육을 위해서다.
SADI의 교수 1인당 학생 수는 2~3명 선.
박영춘 제품디자인학과장은 "최근 삼성전자로부터 인턴으로 간 학생들이 현업 디자이너들이 2년간 풀지 못한 문제를 2주 만에 해결했다는 얘기를 했다"며 "주요 대학 산업디자인과 출신보다 SADI 출신들이 업계에서는 한 수 위"라고 말했다.
SADI가 현재의 명성을 쌓을 수 있었던 밑바탕에는 삼성전자의 전폭적인 지원이 있었다.
매년 학교 예산의 80%가량을 삼성전자가 댄다.
전재경 대리는 "1인당 교육비가 학기당 1000만원 이상씩 들지만 학생들의 부담은 300만원 선"이라고 말했다.
송형석 기자/윤미로 인턴기자 clic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