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신용경색→해외 경기위축→수출타격 가능성
금융시장 모니터링..일부 해외자금 조달계획 보류


산업팀 =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 사태와 엔캐리 트레이드 청산 우려로 16일 주가가 폭락하고 환율이 급등하는 등 국내 금융시장도 큰 혼란에 빠지자 산업계는 우려 속에 대책마련에 분주한 모습을 보였다.

주요 기업들은 국내외 금융시장의 혼란으로 대규모 사업에 필요한 자금조달이 차질을 빚을 가능성도 있을 것으로 보고 비상대책을 마련중이며 기존 사업 및 투자계획을 재점검하고 있다.

또 일부 기업은 해외자금 조달계획을 금융시장이 안정될 때까지 잠정 보류하기도 했다.

삼성, 현대.기아차, LG, SK 등 대기업들은 지금까지 자금조달에 큰 어려움이 없고 내부 유보금 등 '실탄'도 넉넉해 걱정할 단계는 아니지만 서브프라임 부실 등에 따른 금융시장의 혼란이 장기화할 경우에 대비해 모니터링을 강화하는 등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삼성은 대규모 해외 신규자금 조달 필요성이 크지 않은데다 신용도가 높아 자금조달 측면에서 그룹이 큰 영향을 받지는 않을 것으로 보고 있으나 수출물량이 많은 만큼 이번 사태가 세계 경기에 미칠 영향을 주시하고 있다.

삼성 관계자는 "서브 프라임 모기지 충격이 금리, 환율, 유가 상승 등의 측면에서 우리에게 미칠 단기적 충격은 그리 크지 않을 것"이라며 "다만, 이번 충격이 미국을 포함한 세계 경기의 위축으로 이어질 경우 우리 경제의 버팀목인 수출 환경 악화로 이어질 수 있고, 경제의 불확실성이 높아지고 있다는 점에서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대.기아차그룹의 입장은 좀더 심각하다.

기아차는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사태로 자금조달 계획을 수정했다.

당초 5억 달러 규모의 달러표시 해외채권 발행을 추진했으나, 서브프라임 사태로 이 계획을 잠정 유보한 것이다.

대신 기아차는 국내에서 2천억원 규모의 회사채를 발행, 내달 만기 도래하는 2억 달러의 회사채 상환에 대비하는 등 자금조달에 문제가 없도록 대비책을 마련해놓은 상태다.

다만 기아차는 '해외에서의 신인도 제고' 차원에서 5억 달러 규모의 해외채권 발행을 추진했던 만큼, 해외시장에서 신인도를 개선해 보려던 노력에 일단 제동이 걸리게 됐다.

이와 함께 현대제철은 일관제철사업 진출을 선언하며 2012년까지 5조2천400억원의 자금을 조달해야 한다.

따라서 회사 국제금융팀을 중심으로 현재 금융시장을 주의깊게 지켜보고 있다.

현대제철은 전체 투자금액 가운데 절반인 2조6천400억원은 내부자금으로, 나머지 절반인 2조6천억원은 외부자금으로 조달할 계획이므로 국제 금융시장의 요동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현대제철 관계자는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사태에 따른 현재의 금융시장 상황은 일시적인 현상일 수 있다"며 "이 파동이 지나가면 다시 금융시장은 안정화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나아가 외부자금중 1조5천억원은 공적 수출신용금융(ECA Loan)을 통해, 나머지 1조1천억원은 국내 회사채를 통해 각각 마련할 계획인 만큼 현 상황에서는 비교적 자유롭다는 게 현대제철의 설명이다.

이 관계자는 "고로사업을 위한 자금조달은 계획대로 진행되고 있으며, 서브프라임 사태로부터 이렇다할 영향을 받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LG전자는 이미 지난 5월 차환과 운영자금 마련을 위해 5억 달러 규모의 유로채권을 발행했기 때문에 이번 금리 상승 우려에 따른 영향은 상당히 제한적이라고 밝혔다.

LG전자 관계자는 환율급등 문제에 대해서도 "최근 환율 상승은 일시적인 것으로, 장기적으로는 환율 하락을 전망하고 있다"고 전하고 "수출입 결제 통화를 다변화하는 방식 등을 통해 헤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최근 잉거솔랜드(Ingersoll Rand)사의 건설장비 3개 사업부문을 49억 달러에 인수하는 계약을 체결한 두산 인프라코어는 미국의 서브프라임 부실문제로 자금 조달에 차질이 있을까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두산 인프라코어는 그러나 인수 자금 조달 계획에 별다른 문제가 없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두산 인프라코어는 자사와 두산 엔진 등을 통해 19억 달러를 마련하고 나머지 30억 달러는 신디케이트론과 LBO를 통해 조달한다는 계획이다.

박용만 두산 인프라코어 부회장은 최근 2분기 IR에서 "자금 조달에는 별 문제가 없으며 금리에 대해서도 우려하지 않고 있다"며 "올해 안에 인수 대금을 완납하겠다"고 말했다.

박 부회장은 또 서브프라임 부실로 인해 현지 주택시장이 침체돼 이번에 인수한 건설 장비 사업이 타격을 입을 가능성에 대해서도 "주택 공급과 관련된 장비 매출 보다는 AS나 부착 기기 매출이 대세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걱정하지 않고 있다"고 덧붙였다.

지난해 대우건설을 인수했던 금호아시아나그룹은 최근 대우건설 사옥 등을 매각하면서 충분한 유동성을 보유하고 있어 서브프라임 모기지론 부실 사태에 대해 느긋한 입장이다.

금호아시아나는 연초부터 축적된 자금을 바탕으로 올 하반기 대한통운 인수를 준비하고 있으며, 금융 시장 불안과 상관없이 지속적으로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금호아시아나 관계자는 "우리 그룹의 펀더멘털이 기본적으로 좋은 상황이라 이 정도 사태에 흔들리지 않는다"면서 "또한 각 계열사 실적이 좋기 때문에 올해 사업도 차질없이 진행될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그룹 또한 이번 사태에 대해 그다지 신경쓰지 않는 눈치다.

올해 현대상선 등 각 계열사가 순항 중인 현대그룹은 이번 사태로 증시 조정기가 오더라도 그룹에 미치는 영향이 없으며 현대건설 인수전 또한 이미 내년으로 넘어가 큰 의미가 없다는 판단이다.

현대그룹측은 "이번 사태로 주가가 장기적인 조정기에만 들어가지 않는다면 기업 운영에는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지금 상황으로 볼 때는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과 엔캐리 트레이드 청산 가능성이 실물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을 것"이라면서도 "그러나 금융시장 불안이 계속되고 주요국의 경기위축으로까지 이어진다면 글로벌 의존도가 큰 우리기업들에게 큰 충격이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고 밝혔다.

(서울=연합뉴스) cwhyna@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