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발 서브프라임 위기 여파로 주식시장이 폭락하고 원·달러 환율이 급등하는 등 금융환경이 악화되는 상황에서 거액자산가들은 리스크를 어떻게 관리할까.

16일 은행 PB들에 따르면 서브프라임 사태가 장기화될 조짐을 보이자 일부 발빠른 고객들은 금과 외화 등 대체 투자 수단에 관심을 갖거나 보유 자금을 머니마켓펀드(MMF),기업어음(CP) 등 단기 상품으로 옮겨놨다.

하지만 대부분의 부자들은 이날 주가 폭락이 또 다른 기회라고 보고 현금을 보유하면서 저점 매수할 시기를 저울질하고 있다.

재테크 전문가들은 "과거 외환위기나 9·11테러 등의 경험으로 '위기가 기회'라고 생각하는 거액 자산가들이 많다"며 "펀드를 서둘러 환매하려는 자산가들은 아직 많지 않다"고 전했다.


◆주식 대체할 투자 수단 어떤 게 있나

최근 들어 은행 PB고객들의 관심이 주식 대체 투자 수단에 쏠리고 있다.

주식이나 펀드 투자의 리스크가 커졌다고 판단하는 PB고객들은 금 투자를 적극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유유정 신한은행 상품개발실 과장은 "지난주까지만 해도 금에 대한 문의가 전무했지만 이번주 들어 PB고객 중심으로 수십명이 금 투자 상품에 대해 물어오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최근 강세를 보이고 있는 엔화와 달러화에 투자하려는 사람들도 조금씩 늘고 있다.

50만달러나 100만달러씩 구매 요청이 들어오고 있다는 것이 은행 PB들의 전언이다.

최철민 하나은행 선릉역지점 PB팀장은 "수출업자나 해외 유학 자녀가 있는 고객을 중심으로 달러를 사려는 경우가 늘고 있다"며 "하지만 외화가 직접 필요하지 않은 사람이 투자하기에는 환리스크가 너무 크다"고 지적했다.

이 밖에 안전하게 돈을 묻을 수 있는 외국환평형기금채권(외평채)도 주목받고 있다.

외평채는 금리가 연 4.2%에 불과하지만 비과세 혜택이 있는 데다 분리과세 대상이어서 소득 노출을 꺼리는 거액자산가들에게 적당한 상품이다.


◆주가 폭락이 저점 매수 기회

원금 보장이 될 가능성이 높은 ELF(주가연계펀드)나 복합예금도 부자고객들로부터 인기를 얻고 있다.

정병민 우리은행 대치역지점 PB팀장은 "주가지수가 기준지수보다 10% 이상만 빠지지 않으면 일정한 수익률을 보장하는 ELF나 예금과 펀드에 50%씩 투자해 원금 보장 가능성을 높인 복합예금이 많이 팔리고 있다"고 전했다.

또 MMF나 CP 등에 추가로 투자하는 부자 고객들도 늘고 있다.

심우성 국민은행 PB팀장은 "3개월물 CD금리보다 높은 금리를 주는 자산담보부 기업어음(ABCP) 등을 고객들에게 많이 권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부자들은 주가가 급락하는 지금이 오히려 투자 기회라고 받아들이고 있다.

김성호 하나은행 재테크팀장은 "부자들은 중장기적으로 세계 증시가 상승기조에 있다고 보고 기존에 가입한 펀드를 환매하지 않고 주가 지수 추이를 보면서 현금을 보유했다가 적정 시점에 분할 매수를 하려는 경향을 보인다"고 말했다.

특히 거액자산가들은 여전히 국내 주식형 펀드나 아시아 지역에 투자하는 펀드의 수익률이 괜찮을 것이라고 보는 편이다.

심기천 외환은행 압구정 WM센터 재테크 팀장은 "이번 서브프라임 위기는 미국과 유럽에서 시작돼 이머징마켓으로 확산되고 있다"며 "국내 주식과 아시아 시장은 펀더멘털 상 문제가 없어 이 지역을 중심으로 국내 펀드와 해외 펀드 비중을 5 대 5로 가져가는 게 일반적인 추세"라고 설명했다.

정인설 기자 surisu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