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 파문으로 원·달러 및 원·엔 환율이 급등(원화 약세)하자 현대자동차 삼성전자 LG전자 등 수출 주력 기업들이 '환율악몽'에서 깨어날 수 있을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이들 기업에선 '환율 상승=매출·이익 증가'라는 공식이 성립하는 만큼 상당히 반기는 분위기다.

다만 환율 상승이 단기적 현상에 그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데다,신용 경색이 심화돼 국내 기업들의 유동성 위기와 소비 위축으로 이어질 경우 더 큰 위기에 직면할 수 있어 금융시장 동향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환율 상승은 일단 호재인데…

"표정 관리해야 할 판이다." 현대·기아자동차의 한 임원은 환율 급등 현상에 대한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수출 비중이 70%를 웃도는 현대·기아차로선 증시 대폭락 등 신용 경색의 파장에도 불구하고 환율 급등세만 놓고 보면 반갑기만하다.

삼성전자와 LG전자 등도 원화 약세로 해외시장에서의 가격경쟁력이 높아질 것으로 보고 싫지 않은 표정이다.

일본 업체들과 직접 경쟁해온 현대차 삼성전자 LG전자 등은 그동안 '원고-엔저' 탓에 고전을 면치 못했다.

환율 하락 손실분을 만회하기 위해 수출가격을 계속 올리다 보니 미국시장에서 현대의 엑센트(국내명 베르나)가 도요타의 경쟁 모델(야리스)보다 비싸지는 '가격 역전현상'까지 벌어졌다.

엔저를 등에 업은 일본 샤프는 작년 말 미국에서 32인치 LCD TV를 삼성전자의 같은 제품(1362달러)보다 177달러나 싸게 출시했다.

이렇다 보니 현대차와 삼성전자 등의 수익성은 크게 악화됐다.

현대·기아차는 환율이 10원 떨어질 때마다 2000억원의 매출 손실을 입는다.

수출 비중이 80%에 달하는 삼성전자도 환율이 10원 하락하면 이익이 3000억원 줄어드는 구조를 갖고 있다.

현대차의 경우 환율 하락으로 영업이익률이 △2004년 7.2% △2005년 5.1% △2006년 4.5%로 계속 낮아졌다.

연평균 환율이 전년보다 6.7%(68.8원) 하락한 지난해 삼성전자의 영업이익도 6조9300억원으로 전년(8조600억원)보다 14% 감소했다.

이 때문에 이번 환율 상승세가 장기간 지속되면 수출기업들의 수익성 개선에 큰 도움이 될 전망이다.

현대·기아차 관계자는 "하반기 평균 환율이 상반기보다 10원 상승한다고 가정할 경우 하반기에만 현대차 400억원,기아차 300억원의 영업이익 증대 효과가 나타날 것"이라고 예상했다.

초호황을 구가하는 조선업체들도 마찬가지다.

수주협상 시점의 환율로 계약하기 때문에 환율이 오르면 앉아서 추가 이익을 얻는다.

삼성중공업 관계자는 "엔화 강세가 대세로 굳어진다면 일본 조선업체들의 가격경쟁력이 크게 떨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독(毒)될지,약(藥)될지 두고봐야

수출 기업들은 환율 상승 자체는 달가워하면서도 향후 나타날지 모르는 부작용에 대해서는 우려와 불안감을 드러냈다.

이번 환율 상승이 글로벌 금융시장의 신용 경색과 유동성 감소로 촉발된 것인 만큼 유동성 위기나 소비 위축이라는 복병을 만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어서다.

이번 사태가 진정되면 환율이 다시 하락세로 돌아설 것이라는 예상도 기업들의 운신의 폭을 좁게 만든다.

주우식 삼성전자 부사장(IR팀장)은 "현재의 달러 강세와 원화 약세는 실물경기 위축을 전제로 한 것인 만큼 금융시장과 소비심리를 얼마나 위축시킬지 잘 따져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사태가 심화되면 하반기 이후 내년까지 소비심리 위축이 계속될 가능성이 있다"며 "일단 현행 환관리 구조는 그대로 가져갈 방침"이라고 설명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환율 하락에 대비,60%를 웃돌던 달러화 결제 비중을 40∼50% 안팎으로 낮추고 유로화 비중을 25% 이상으로 늘린 상태다.

현대차와 LG전자 등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해결되면 결국 환율이 다시 하락세로 돌아설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현대차 재무팀 관계자는 "이번 신용 경색 위기가 1~2개월 정도 지속되면서 단기적으로 원화가 약세를 보이겠지만 위기가 진정되면 달러가 약세로 반전돼 원·달러 환율이 다시 930원대로 떨어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LG전자는 장기적으로 원·달러 환율이 800원대까지 하락할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이건호/이태명 기자 leek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