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인 한 사람이 머리에 물동이를 이고 손에 등불을 든 채 걸어오고 있었다.

마주친 사람이 말했다.

"보지도 못하면서 등불은 왜 들고 다니는 건가요?" 맹인이 대답했다.

"당신이 제게 부딪힐까봐요. 이 등불은 나 아닌 당신을 위한 것입니다."

'배려란 무엇인가'의 예로 자주 인용되는 얘기다.

'배려'란 이처럼 상대방을 생각하고 그 마음씀을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다.

고객관계관리(CRM)의 핵심은 시스템 구축이나 데이터 분석이 아니라 고객 개개인에 대한 배려라는 주장이 나왔다(LG경제연구원 '배려 마케팅의 성공포인트').당연한 내용이 연구결과로 보고되는 걸 보면 현실은 안그런 모양이다.

실제 수많은 기업에서 고객 만족이니,고객 감동을 외치지만 여전히 말뿐인 경우가 많다.

툭하면 판매하기 전까지와 계산이 끝난 다음의 태도가 확연히 다르다.

구두나 옷을 팔 땐 "발이 정말 예쁘다,진짜 날씬하다"며 치켜세우곤 제품에 문제가 생겨 교환을 요구하거나 애프터서비스를 받으러 가면 "발 모양 혹은 몸매가 이상하다"는 식이다.

떨떠름하거나 시큰둥한 표정을 짓는 일도 적지 않다.

고객만족도 조사도 대부분 형식적이다.

불만스러웠다고 해도 후속조치에 대한 설명이나 연락은 없다.

왜 묻는지 의아할 정도다.

고객이 원하는 건 조사요원의 '죄송합니다'라는 입에 발린 답변이 아니라 어떻게 하겠다는 구체적 대안이다.

대다수 매장이 고객관리용이라며 신상정보를 요구하지만 정작 고객 배려용으로 쓰는 일은 적다.

마케팅 기법의 흉내만 내는 것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배려의 요체는 돈보다 마음이다.

'나를 잊지 않고 챙길 때,내 말에 귀 기울일 때,선택권을 최대한 줄 때' 배려받는다고 느낀다는 얘기다.

'불만을 제기하면 어떻게든 개선 노력을 할 때'도 있다.

이런 배려가 어디 기업의 고객관리에만 필요한 요소랴.친구 애인 부부 직장상사와 부하직원 심지어 부모자식 간 거리를 좁히기 위해서도 꼭 필요한 대목들이다.

'작고 평범한 일을 꼼꼼히 챙기는 디테일 경영이 블루오션의 열쇠'라는 진단도 나와 있다.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