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형래 감독의 SF영화 '디 워'는 한 편의 흥행 영화 이상으로 큰 논란을 낳고 있다. 그러나 건강한 비평과 반비평 없이 욕설과 비방만 난무하는 수준이라면 이 같은 논란은 그야말로 소모전으로 끝날 뿐이다. 충무로,더 나아가 한국 사회 전체가 한 단계 더 성숙해질 수 있는 고민의 계기가 되어야 한다. 토론 문화의 성숙이 필요하다는 점 외에 '디 워' 논란이 던져준 가장 큰 시사점과 과제는 기존 영화계를 대변하는 충무로의 변화와 애국주의 마케팅의 득실을 따져보는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하고 있다.


◆충무로 이제는 변해야

올해 최고 흥행 영화가 될 것으로 보이는 '디 워'는 한국 영화계에 암묵적으로 크나큰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한국 영화계는 아직까지 스타급 감독 등 몇몇 인사에 의해 좌지우지되고 있다. 투자자와 배급사,즉 자본의 영향력은 아직 할리우드 등에 비해 턱없이 떨어진다. 점차 달라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대부분 '시장원리'보다는 감독·제작자 등의 '주관'에 의해 영화 제작이 이뤄지고 있다. 물론 감독의 주관에 따라 창작물인 영화가 만들어져야 한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그러나 영화도 분명 관객들에게 '표'를 팔아야 하는 상품이라는 것을 부인하기 힘든 만큼 '시장원리'가 현재처럼 계속 외면당해서는 곤란하다.

올해 한국 영화 가운데 최고의 작품성을 가졌다고 평가받는 이창동 감독의 '밀양'은 관객 167만명을 동원하는데 그쳤다. 통상 한국영화 세 편 정도를 만들 수 있는 제작비 100억원을 들인 장윤현 감독의 '황진이'는 관객 112만명에 머물렀다. '황진이'의 경우 제작비를 댄 투자·배급사 입장에서는 본전도 건지기 힘든 초라한 흥행 실적이다.

이런 상황에서 충무로에서 제대로 된 '영화인' 취급조차 받지 못했던 코미디언 출신 심형래 감독의 '디 워'는 1000만명 관객을 바라보고 있다. '디 워' 같은 흥행 영화가 나오지 않으면 투자자금을 회수하지 못한 투자·배급사들이 재투자에 나서기 힘들다. 실제 올 들어 한국 영화 제작은 작년에 비해 눈에 띄게 줄어들고 있다. 실제로 올 하반기 개봉 예정작 가운데 제작비 100억원대의 대작은 찾아보기 힘들다. '너희들이 영화(예술)를 알아'식의 고고한 자세를 견지했던 충무로가 이제 '디 워' 흥행에 자극받아 새로운 변화를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애국주의 마케팅 득실도 따져봐야

투자·배급사를 포함한 관계자들이 의도했던 의도하지 않었던 '디 워'가 애국주의 마케팅에 득을 본 것은 부인하기 힘들다. 한국 영화 최초로 미국 전역에서 1500개 이상의 스크린에서 대규모 개봉한다는 사실은 대중의 애국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이런 자랑스러운 한국 영화를 왜 헐뜯는가''한국에서 성공해야 미국에서도 통한다''극장에 가서 한 명이라도 더 봐줘야 한다' 등의 심리가 팽배해진 게 사실이다.

그러나 이 같은 애국주의 마케팅은 심각한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 한국에서 '대박'을 터트렸기 때문에 '디 워'는 미국에서도 더 높은 관심을 받을 가능성이 높아졌다. 미국에서는 더 많은 관객들이 '디 워'를 보기 위해 극장을 찾을 것으로 보인다. 이 경우 한국인이 아닌 미국인들이 냉정한 시각으로 바라본 '디 워'에 대한 평가는 한국 영화 전체에 대한 평가가 될 수도 있다는 위험이 있다. 즉 '한국에서 최고 흥행작이라는 영화가 이 정도 수준이구나'라는 평가를 받을 경우 다른 작품까지 도매금으로 저평가될 위험이 있다는 말이다. 물론 '디 워'가 좋은 평가를 받으면 상관 없겠지만 컴퓨터 그래픽 외에 작품 전체로 큰 호평을 받기는 힘들 가능성이 높은 게 엄연한 사실이다. 또 국내에서도 과거 '조폭영화 만들기' 열풍처럼 '디 워'의 흥행을 모방해 비슷한 아류작들이 쏟아진다면 한국 영화계 전체가 한 발 후퇴하는 불행한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1980년대 아시아 시장을 휩쓸었지만 아류작을 양산하다가 몰락의 길을 걷게 된 홍콩 영화의 전철을 밟을 수도 있다는 말이다.

서욱진 한국경제신문 기자 ventur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