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5년 콜레라가 창궐했다.

아침까지 멀쩡하던 사람이 점심 때 죽었으며 하루 만에 한 집안 식구 두세 명이 들것에 실려 나가기도 했다.

한성에서는 '쥐 귀신'이 몸에 들어와 병을 옮긴다며 방마다 고양이 그림을 붙여 놓는 집이 많았다.

전 국토가 두려움에 떨자 서양식 의료기관인 제중원(濟衆院)에서는 다음과 같은 내용의 포스터를 거리에 붙이고 대대적인 방역을 실시했다.

'콜레라는 귀신이 옮기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병균이라 불리는 아주 작은 벌레가 위 속에 들어가 번식하여 생긴다.

그러므로 음식물은 완전히 익혀 그 벌레를 죽인 이후 먹어야 한다.'

하루 600명 이상의 생명을 앗아간 이 병은 6주 만에야 물러갔다.

발병 당시 '사망률 100%'가 퇴치될 때 '완쾌율 65%'를 보였는데 여기에는 파란 눈의 선교사들과 기독교인들의 헌신적 간호가 큰 힘이 됐다.

이들이 벌인 합동 의료 사업은 이후 세브란스 병원과 의학교 건립의 초석이 되었다.

'세브란스 드림 스토리'(이철 지음,꽃삽)는 조선 최초의 서양 병원 탄생에서부터 2005년 뉴세브란스로 다시 태어나기까지의 과정을 온전히 담았다.

저자는 40년간 연세의료원에 몸담아 온 현직 소아과 교수.생명의 최전선에서 사랑의 인술을 펼친 사람들의 삶을 생생하게 들려준다.

우리 땅에 3개월밖에 머물지 않았지만 당시 천문학적 액수였던 4만5000달러라는 거금을 기부해 현대식 병원을 짓게 해준 세브란스,첫 서양의사 알렌과 에비슨 부부의 활동 등 헌신과 봉사의 역사는 감동적이다.

'1904년 문을 열자마자 수많은 환자들이 몰려들었다.

그 중에는 무료로 진료받은 사람도 많았다.

찢어질 듯 가난한 이들은 너무나 고마운 나머지 자기 집에서 기르던 닭을 한 마리씩 들고 왔다.

그런 사람이 너무 많아 병실 한 개를 닭장으로 사용했을 정도였다.'

지금은 한 해 예산 1조원,직원 수 8000명의 거대 조직으로 성장한 연세의료원.새 건물에 마트를 입점시킨 발상의 전환,전 직원을 주인으로 만든 책임경영제,병원 임기가 끝나면 의대 평교수로 돌아가는 인사 제도 등 세브란스만의 독특한 시스템은 신선하다.

의료기기 시스템의 표준화,X레이 필름을 추방한 대용량 팩스,종이 차트를 없앤 의무기록 전산화,ERP 도입 같은 행정의 혁신도 여과 없이 보여준다.

이 책을 관통하는 보편적 정서는 결국 '생명을 살리는 투자'에 이른다.

'헌신은 물꼬를 튼다.

서로 하나가 되어야 한다.

작은 틈새를 조심하라.사랑은 돌려주는 것.기본에 충실해야 최고가 된다.

자신의 분야에서 프로가 되어라.'

자기 눈은 노을을 한 번도 본 적 없는 사람에게,피는 죽음을 기다리는 청년에게 주고 나머지 몸은 재로 태워 들꽃이 무성하게 자라도록 뿌려달라고 말한 로버트 테스트처럼 '줄 수 있어 행복한' 사람들의 이야기다.

288쪽,1만2000원.

김홍조 편집위원 kiruk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