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삼성동 코엑스(COEX),학여울 서울무역전시컨벤션센터(SETEC),일산 킨텍스(KINTEX) 등은 각종 전시회나 박람회 행사로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는다.

일정이 없는 전시장 안은 텅 빈 공간에 불과하지만 아트 디렉터(art director)의 손길이 닿는 순간 사람들에게 많은 정보를 쏟아내는 흥미로운 세계로 탈바꿈한다.

아트 디렉터를 우리말로 풀이하면 미술감독.황준호씨(47)는 주로 엑스포,전시회,축제 등의 전체적인 컨셉트를 잡아 콘텐츠를 기획·연출하는 프리랜서 아트 디렉터다.

그는 롯데월드 민속관·대전 엑스포 대전시관과 재생조형관·이천 도자기축제 환경전시관 전시 연출,삼성전자 신생활초대전 로드쇼,제1회 서울불꽃축제 기획,2005 부산 APEC 미술감독 등을 맡으며 22년째 전시 기획 분야에 몸을 담고 있다.

그는 "전시 기획은 감각보다 경험이 우선인 직업"이라고 정의했다.

한 분야의 타고난 재능으로 역량을 발휘하는 다른 디자이너들과 달리 매번 다양한 주제로 새로운 이벤트를 기획하고 전시에 관한 총괄 책임을 지기 때문에 아트 디렉터의 많은 경험은 능력을 평가하는 기준이 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박람회 같은 전시 공간을 새롭게 구성하기 위해 창의성이 필요한다는 점에서는 아트 디렉터가 아티스트와 비슷하지만 너무 시대와 동떨어져 한발 앞서 나간 방향을 제시하기보다 있는 사실을 전제로 클라이언트와 관람객을 이해시키고 만족시켜야 한다는 점에서 다르다"고 말했다.

전시 기획 디자이너는 일단 하나의 프로젝트를 맡으면 관련 분야의 모든 정보들을 수집해 그 분야 전문가가 돼야 한다.

전시의 목적에 맞는 '적확(的確)한' 내용들로 전시장을 채우기 위해 경제,사회,문화 등 각 분야의 전문가를 끌어 모으고,사람들이 무엇에 집중하는지를 찾아내 이보다 반보 앞선 내용들로 전시장을 디자인해 내야 하기 때문.그는 "아트 디렉터는 전시될 콘텐츠에 대한 모든 책임을 져야 한다"며 "전시의 시의성과 전시 의도가 많은 관람객들에게 얼마나 제대로 전달됐는지로 성과를 평가받는다"고 말했다.

또 전시 기획 총괄 감독에게는 인맥 네트워크의 역량도 중요한 자질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전시에 대한 총괄 감독으로서 창의적인 생각을 펼쳐낼 사람들을 발굴해 내는 것도 실력"이라며 "아트 디렉터에게는 노하우(know-how)보다는 노웨어(know-where)가 중요하게 작용한다"고 설명했다.

이렇게 끌어 모은 사람들을 이끌고 프로젝트를 완성해야 하기 때문에 리더십도 필수 자질이라고.

그는 엑스포나 모터쇼,생활가전쇼 등은 시의성 있는 이벤트이기 때문에 시대의 흐름을 민감하게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는 틈날 때마다 트렌드를 읽을 수 있는 최신 영화와 서적들을 섭렵한다.

이런 경로를 통해 프로젝트에 필요한 유용한 정보들을 얻는 경우가 많다고.

황씨는 현재 연봉 3억원을 받는 유능한 아트 디렉터이지만 학력은 대학 중퇴다.

1979년 부모님의 뜻에 따라 성신대학교 신학대학에 들어갔지만 3학년 때 중도 하차하고 교회 홍보나 옷가게 운영을 하면서 방황의 시간을 보냈다.

평소 미술분야에 관심을 두고 있던 중 1986년 친구의 소개로 '안건사'라는 전시 기획 회사에 들어가면서 그의 능력은 빛을 발했다.

황씨가 처음 참여한 작업은 롯데월드 민속관 전시 연출.그는 "1990년만 해도 전시 기획에 대한 전문적인 개념이 없었기 때문에 공식적인 박물관이 아닌 민간업체에서 만드는 전시관은 대부분 건축설계사무소에서 맡았다"며 "당시 롯데월드의 민속전시관 기획은 민간 주체였지만 제법 큰 프로젝트였기 때문에 전시 기획 전문 회사인 안건사에 맡겨졌다"고 회상했다.

1993년 대전엑스포를 계기로 1990년대 중반부터 전시 컨벤션 기획 분야가 활성화됐지만 아직까지 이쪽 분야에서 전문가로 통하는 사람은 100여명에 불과하다.

수요에 비해 공급이 적은 편이지만 그는 항상 공모 준비로 바쁘다.

박람회나 전시회는 언제나 경쟁 공모전을 통해 1등으로 뽑혀야만 실질적인 기회를 얻을 수 있기 때문.그는 "모든 공모전에서 항상 1등을 하는 건 아니기 때문에 하는 일의 양에 비해 아트 디렉터의 수입은 적은 편"이라고 말했다.

또 "전시 기획은 야구처럼 3할대만 성과를 내도 잘 한다는 소리를 듣는다"고 덧붙였다.

현재 그는 1700억원의 예산이 들어가는 약 49만5000㎡(15만평) 규모의 인천 세계도시 엑스포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그는 "이번 엑스포는 역동적인 변신을 시도하는 인천시 이야기와 앞으로 인류에게 펼쳐질 미래의 세계 도시상을 보여주는 전시가 될 것"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이벤트,컨벤션,영상,도시설계,광고 분야 등의 전문가 300여명을 총괄 지휘하며 전시장 내부를 디자인하고 있다.

여기서 그는 전문가들의 의견을 수렴,이번 박람회가 가야 할 종합적인 방향을 제시하는 역할을 맡았다.

직접 전시 공간에 들어갈 내용들을 구상하며 전시관 구성도를 그리기도 한다.

그는 "아트 디렉터도 기사 작성의 기본 원칙인 6하원칙을 늘 염두에 두면서 작업을 진행한다"고 말했다.

왜(why) 이것을 디자인해야 하는지,무슨(what) 디자인을 해야 하며,누가(who) 이 전시를 보고,언제(when),어디서(where) 어떻게(how to) 전개해야 할지를 풀어가는 과정이 바로 그가 하는 일이라고.

안상미 기자/이정민 인턴기자 saram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