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lobal Issue] 잊을만하면 나타나는 유령 '금융위기' … 서브프라임 또 '전주곡' 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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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없는 자본이동으로 빈발
제2, 제3 서브프라임 올수도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 파문으로 국제 금융시장이 앓아누웠다.
아시아 외환위기와 같은 '금융위기(financial crisis)'로 번질 것이라는 우려까지 나돌았다.
1636년 네덜란드가 '튤립 광풍'으로 쑥대밭이 된 이후 세계 경제는 여러 차례의 금융위기를 겪었다.
미국 경제사학자 찰스 킨들버거는 이런 '금융위기'를 '다년생 식물'에 비유했다.
잊을 만하면 다시 나타나는 질긴 생명력 때문이다.
그러나 긴 역사를 돌아보면 한 세대에 한 번 나타날까 말까 할 정도로 흔한 일은 아니었다.
'일본 부동산거품 붕괴''멕시코 위기''아시아 외환위기' 등 몇 년 단위로 금융위기가 반복된 '최근 30년'이 예외적인 케이스라는 게 킨들버거의 주장이다.
'최근 30년 금융위기'의 시발점은 일본이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한 일본은 1950년대부터 어금니를 물고 경제성장에 매진했다.
일본 대장성과 통산성 관료들은 싹수가 보이는 산업 부문을 집중 육성했다. 이 같은 노력은 1980년대 들어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도요타 닛산 혼다는 세계 자동차 산업의 선두 주자로 부상했고 소니 마쓰시타 샤프 등은 가전산업을 장악했다.
이제 살 만해졌다고 판단한 일본은 그동안 대장성 손아귀에 있던 금융산업을 자유화했다.
은행들이 업무용 빌딩이나 주거용 건물,쇼핑센터 등을 건설하려는 차입자들에게 대출을 늘려줄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막혀 있던 '돈맥'이 풀리면서 부동산 가격이 폭등하기 시작했다.
일본 황궁의 땅값이 미국 캘리포니아 전체의 부동산 가치보다 크다는 분석이 나올 정도였다.
일본 국내에 돈이 넘쳐 흐르자 대장성은 일본 기업과 개인들의 해외 투자 제한을 푸는 조치를 취했다.
일본 은행의 해외지사 및 자회사 설립도 허용했다.
진군 나팔이 울리자 제2차대전의 패배를 분풀이라도 하듯 일본 자본은 미국 본토 공습에 나섰다.
미쓰비시는 록펠러 센터의 50%를 매입했고 스미토모은행은 캘리포니아의 페블비치 골프장을 사들였다.
소니는 컬럼비아레코드와 컬럼비아영화사를 집어삼켰고 마쓰시타는 MGM유니버설 영화사를 인수했다.
심지어 미쓰이 부동산은 최초 호가가 3억1000만달러였던 뉴욕의 엑슨 빌딩을 구입하는 데 6억2500만달러를 지불,업무용 빌딩 최고가 매매로 '기네스북'에 오르기도 했다.
일본의 광기는 1989년 말 그 한계에 달했다.
미에노 야스시 신임 일본은행 총재가 너무 높은 주택 가격이 사회적 갈등을 야기한다는 이유로 부동산 대출에 제동을 걸고 금리를 올리면서 거품은 순식간에 꺼져버렸다.
은행 대출이 억제되자 돈을 빌려 부동산을 매입했던 기업들이 자금난에 빠졌다.
대출 이자를 신규 대출로 해결해 왔는데 이제 그 길이 막혀버린 것이다.
부동산 가격은 반의 반 토막으로 곤두박질쳤고 주가는 1990년과 1991년 2년 연속 30%씩 폭락했다.
'잃어버린 10년'의 시작이다.
몇 년 뒤 금융위기는 멕시코에서 다시 발화했다.
1990년대 초반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가입을 준비하던 멕시코는 놀랄 만한 경제적 성공으로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연 140%에 달했던 물가상승률은 10% 미만으로 떨어졌고 1980년대 말 1~2%에 불과하던 경제성장률도 4% 안팎으로 높아졌다.
이와 함께 수백 개의 국유기업이 민영화됐고 기업 규제도 대폭 완화됐다.
앞으로 멕시코가 미국과 캐나다 시장의 저임금 생산기지가 될 것이라는 기대가 높아지면서 해외 투자자금도 물밀듯 몰려들었다.
외화 유입으로 멕시코 페소화 가치가 상승(환율 하락),무역수지가 악화되는 부작용이 있었지만 새로 유입되는 투자자금이 이를 상쇄하고도 남았다.
이상 징후는 1994년 불거졌다.
멕시코 남쪽 지방에서 원주민 봉기가 일어났고 두 달 후에는 제1당의 유력한 대통령 후보가 암살당하는 사건이 터졌다.
정치적 불안정은 외국인 자금 이탈로 이어졌다.
결국 페소화는 수개월 만에 절반 이상의 가치를 날려버렸고 눈덩이처럼 불어난 해외 차입금을 갚지 못해 부도를 내는 기업들이 속출했다.
몇 해 전 민영화한 시중은행마저 줄줄이 파산했다.
이른바 '테킬라 위기(Tequila crisis)'가 터진 것이다.
금융위기는 1990년대 후반 들어 무대를 아시아로 옮겼다.
시작은 1997년 7월2일 태국이 대외채무의 지불 불능을 선언하면서부터.똑같은 대본을 사용하는 연극처럼 멕시코의 금융위기를 그대로 따라했다.
해외 투자자금의 갑작스러운 유출로 통화가치가 폭락하고 이로 인해 금융 시스템이 올스톱됐다.
태국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를 차례로 무너뜨린 금융위기는 아시아의 경제우등생이었던 한국마저 집어삼켰다.
아시아에서 튄 불똥은 곧장 러시아와 브라질로 옮겨 붙었다.
이들 나라 역시 거액의 채무를 안고 있고,통화가치가 고평가된 데다 금융시스템이 낙후됐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아시아에서 한번 크게 덴 투자자들이 앞뒤 가리지 않고 돈을 빼내갔다.
러시아의 루블화와 브라질의 헤알화는 추락했고 두 나라 정부는 손을 들어버렸다.
러시아발 금융위기는 당시 미국에서 가장 잘 나가던 사모펀드인 '롱텀캐피털매니지먼트(LTCM)'에 결정타를 날렸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마이런 숄스와 월가의 스타였던 존 메리웨더가 1994년 공동 설립한 이 회사는 러시아 국채 선물을 대거 매입하고 미국 국채는 공매도하는 차익거래에 집중했다.
그러나 러시아 경제가 무너지면서 러시아 국채는 휴지로 변했고 LTCM은 자본금의 50배에 가까운 1000억달러의 손실을 입었다.
투자은행들의 환매 요구가 빗발쳤고 미국 금융시장은 마비 상태에 빠졌다.
몇 해 잠잠하던 금융위기는 '정보기술(IT)'이라는 신무기를 달고 미국에서 다시 고개를 들었다.
벤처기업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났고 어떤 기업이라도 IT 냄새만 나면 '묻지마 투자자'가 몰려들었다.
이로 인해 1996년 6300 수준이던 다우존스지수는 2000년 초 11,700으로 뛰었고 신생 벤처기업의 요람이었던 나스닥지수는 같은 기간 1300에서 5400으로 치솟았다.
앨런 그린스펀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이 '비이성적 과열'이라며 경고 카드를 꺼내들었지만 이미 돈 맛을 본 투자자들의 눈엔 보이는 게 없었다.
결국 한계에 다다른 주가는 고꾸라지기 시작했고 나스닥 시장의 시가총액은 단기간에 80%나 줄어버렸다.
이처럼 1980년대 이후 금융위기가 빈발한 이유는 급속한 국제화로 세계 경제의 상호 연관성이 높아져 한쪽의 위기가 다른 쪽으로 빠르게 전이되기 때문이다.
킨들버거는 "최근 30년간 불거진 금융위기가 각각 독립적인 사건이었을 개연성은 매우 낮다"고 지적했다.
그는 국제 금융시장의 자금 흐름에 주목했다.
1990년대 초 일본의 거품 붕괴 이후 일본을 탈출한 투자자금이 태국 등 아시아와 러시아 브라질 등 신흥시장에 들렀다가 미국 주식시장으로 흘러들었다고 킨들버거는 주장했다.
과잉 유동성이 투자자들의 광기와 버무려지면서 자산 가격의 거품을 유발하고 거미줄처럼 연결된 각국의 금융시스템이 거품 붕괴의 충격을 연쇄적으로 받으면서 글로벌 금융위기라는 부작용을 낳게 됐다는 분석이다.
이런 점에서 최근 미국에서 불거진 서브프라임 모기지 파문도 잘못 대처할 경우 금융위기의 역사에 한 장을 새로 쓸 우려가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금융위기라는 달갑지 않은 유령이 앉을 자리를 찾고 있는 요즘이다.
안재석 기자 yag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