趙俊模 < 성균관대 교수·경제학 >

비정규직 보호법이 발효된 지 한 달이 훌쩍 지났다.

혹자는 최근 이랜드사태와 같은 노사갈등이 비정규직 보호법에서 기인했다고 주장하지만 필자는 법은 갈등의 불쏘시개를 제공했을 뿐 근본적으로는 노사관계 실패에서 기인했다고 평가한다.

비정규직 문제는 노사 간 협력을 통해 해결하고자 하는 상생의지 없이는 법을 백 번 고쳐도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먼저 노사관계의 한 쪽 주체인 노동조합의 실패를 살펴보자.비정규직 근로자 다수는 사용자로부터 차별받는 아픔보다 더 큰 아픔은 정규직 노동조합으로부터의 차별이라고 말한다.

비정규직 근로자들은 올해 복수노조가 허용되면 노조를 설립해 별도 교섭을 통해 자신들의 근로조건을 개선해 가려고 했으나 사업장 내 정규직 노조와 비정규직 노조의 양립을 금지하는 복수노조 금지조항이 2009년까지 유지됨으로써 스스로의 이익을 위한 교섭이 불가능하게 됐다.

정규직 노조는 비정규직 근로자의 조합가입 혹은 협약적용을 배제해 가는 이중적(二重的) 태도를 보여 밥그릇을 챙기기 위해 비정규직 근로자를 희생했다는 비판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설상가상으로 중앙단위 노조는 비정규직 문제를 비정규직 근로자와 개별 사업장의 사정에 맞게 고민하기보다는 총자본 대(對) 총노동의 투쟁으로 갈등을 확대생산한 측면도 있다.

노동조합이 국민을 감동시킨 사례가 없는 것은 아니다.

보건의료 산별노조에서 정규직의 양보를 전제로 모여진 재원(財源)을 비정규직의 근로조건 향상을 위해 투입하는 산별협약을 체결한 것이다.

부산은행 노조의 경우는 '정규직의 희생 없는 비정규직 보호는 없다'고 선언해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달성한 감동사례다.

이 밖에도 비정규직 근로자의 능력개발을 위해 용접훈련 프로그램을 마련해 제공한 울산 플랜트 지역노조도 높이 평가할 만하다.

사용자가 주도하는 비정규직 정규직화 제안을 노동조합이 수용한 우리은행의 경우도 좋은 사례로 꼽을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사례들은 소수에 불과하며 보다 많은 사례가 확산됐더라면 현재의 비정규직 갈등은 상당 부분 해소됐을 것이다.

한편 노사갈등을 유발한 사업장에서 사용자들의 모습은 어떠했는가? 이랜드의 경우 비정규직 임금이 정규직 임금의 절반에 불과하고 이직률이 높은 비정규직 근로자들을 모두 정규직화해 주다가는 유통 경쟁력을 잃을 것이 자명하다.

이랜드 사태의 본질은 아웃소싱 자체에 있다기보다는 아웃소싱을 해 가는 과정에서 노동조합이 배제됐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이랜드의 경우 1년 전쯤으로 거슬러 올라가 사용자가 인사관리 계획에 대해 당시까지는 타협적이었던 노동조합과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해 노력했다면 현재와 같은 극렬한 노동조합의 투쟁을 자초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노동 배제적 인사관리가 초래한 소탐대실의 결과인 것이다.

현재와 같은 노사관계 갈등구조가 유지된다면 비정규직 법은 2차 후폭풍을 몰고 올 것이다.

바로 정규직화된 비정규직 근로자(노동계에서는 중규직 혹은 반쪽짜리 정규직이라 칭함)와 기존의 정규직 간 차별시비 분쟁이 그것이다.

후폭풍은 지금의 임단협이 만료되는 2009년께부터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특히 인력조정이 필요한 기업들 가운데 신(新)정규직 혹은 구(舊)정규직 간에 퇴출 순위라도 정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갈등의 골은 더욱 깊어질 것이다.

이제라도 늦지 않았다.

합리적인 비정규직 해결을 위해서는 개별사업장 노사는 한발 다가서서 열린 마음으로 타협하는 협치(協治) 능력을 쌓아나가야만 한다.

협치는 다름 속의 조화를 추구하는 데서 달성된다.

사용자는 비정규직 인사관리상의 변화를 사전적으로 협의하고 노동조합은 회사의 생존 없는 고용안정은 없음을 인지해야 한다.

중앙단위 노사는 개별사업장 노사의 협치 후원자가 되어야지 대정부 정치공세의 희생양으로 삼아서는 곤란하다.

대안(代案) 없는 법 개정만을 요구할 것이 아니라 울산 플랜트 노조와 같이 비정규직 능력개발을 위한 산별,지역별 프로그램 형성과 운영에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만 한다.

비정규직 문제가 전적으로 비정규직 악법 때문이라는 노사의 주장에 대해 국민들은 공감하지 않을 것이다.